*취미 번역. 정식번역판이 나오면 삭제합니다.

 

 

 

청의 궤적 上

 

쿠노 치아키

 

 

 

4. 엠파스

 

 

“――그래서 뭐, 그렇게 됐어.”

 

로드와 산드라의 당직이 끝나기를 기다려 두 사람과 레크리에이션 덱에서 합류한 산시로는 카이와의 경위를 간추려 설명했다.

지금 쥘 베른은 그들 네 명의 감시 하가 아니라 컴퓨터의 자동제어에 의해 날고 있다. 궤도가 빗나가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 뒤로 한 번도 같은 이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 연방에 낸 조회에 아직 회답이 오지 않는 것 등을 이유로 그들은 현재 컴퓨터를 포함한 3교대제를 이어가고 있다.

 

“정말이지, 당신들도 참…….”

 

싫어하는 카이를 끌어안고 열이 있는지 확인한 것, 그 산시로에게 카이가 해치운 호된 반격 이야기를 들은 산드라가 관자놀이를 누르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이 크루 중에서는 유일한 정규 군인으로, 연방군에 네 명의 근무상황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

 

“왜 이렇게 문제만 일으키는 걸까.”

 

크게 한숨을 쉬고 곤란한 듯한 쓴웃음을 띠면서 산시로를 살짝 노려본다. 그 상냥한 질책에 약간 기쁜 듯한 얼굴을 한 뒤 산시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내가 한 짓은 틀리지 않았어. 오히려 친절할 정도인 것 같은데.”

“방식이 문제야. 카이 같은 타입한테 억지를 쓰면 반발이 돌아올 뿐이라는 걸 모르겠어?”

“딱히 내가 그 녀석한테 데이트를 신청하려는 것도 아닌데, 업무 파트너의 비위를 일일이 맞춰야 해?!”

 

비치된 의자의 등받이를 앞쪽으로 하고 앉아 삐친 듯이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첫 버디 항행의 상대가 이래서야 불운하기 짝이 없다고 산시로는 거듭 한탄한다.

 

“모처럼 내가 저자세로 나가주는데 그 녀석은 말도 안 되는 앙갚음을 했다고. 대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일순 숨이 멈췄어.”

 

그때 그 산시로의 태도 중 어디가 저자세인지는 둘째 치고, 그때의 격통을 떠올리며 크게 눈살을 찌푸리고 목을 쓰다듬는 산시로에, 지금껏 산드라와 산시로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로드가 몸을 내밀었다.

 

“그 일 말인데, 어쩌면 카이는 엠파스일지도 모르겠어.”

“엠파스?”

“그게 뭔데.”

 

생소한 단어에 산드라와 산시로가 얼굴을 마주 본다. 설명을 구하며 그를 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 로드는 책상 위에 깍지 낀 손을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엠파스. 초능력이라 불리는 것의 일종인데, 그렇지, 감정 감응자라고 하는 편이 알기 쉬우려나.”

“감정 감응? 점점 더 모르겠어.”

“그럼 고도로 감정이입 하는 능력이라고 할까. 순수한 루난 중에는 드물게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과연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군.”

 

혼자 납득하는 로드에 산시로가 답답한 듯이 끼어든다.

 

“로드, 감탄할 때가 아니라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주지 않겠어? 학식이 없어서 미안하지만, 난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영문 모를 설명에 안달해서 빤히 자신을 노려보는 산시로에 쓴웃음을 흘리며 로드는 단어를 골라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마 카이의 신경계는 극도로 민감하게 되어 있을 거야.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응력도 대단히 높지. 더 쉽게 말하면 다른 인간의 희로애락 같은 감정적 반응이나 통증이나 쾌감 같은 육체적 반응을 자기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봐. 그와 동시에 자기 감정이나 육체로 느낀 감각을 상대에게 전할 수도.

요컨대 감정이입과 감정방출이 가능하지 않나 싶어. 이해가 됐을까.”

 

자신의 설명이 전해졌는지 큰 몸을 숙이고 들여다본 로드에 못마땅한 얼굴을 한 산시로가 생각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면 그걸 자기 아픔으로 느낄 수 있고, 자기가 아프다고 생각하면 그걸 그대로 나한테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건가?”

“맞았어. 사고를 읽어내는 텔레파스와 좀 비슷한데 엠파스는 상대의 생각이 아니라 날것의 감정을 읽어내는 거지. 이것만 해도 충분히 특이한 체질이지만, 자네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그뿐만이 아닌 것 같군. 카이는 자기 감정을――이 경우 분노라고 생각하지만――증폭해서 산시로에게 쏟아부은 걸 테지.”

“감정을? 화가 난 것만으로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산시로에 자리에서 일어난 로드가 느릿느릿 다가선다. 근육이 불거진 팔을 그의 어깨에 대고 굵은 손가락으로 산시로의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갈랐다.

 

“실제로 자네 목덜미에는 아무 흔적도 없어. 카이는 신체적으로는 아무 상처도 남기지 않고 자네의 신경에 전류를 흘려 넣듯이 자신의 분노를 주입한 거야.”

“전기뱀장어 같은 녀석일세.”

 

고개를 저어 로드의 손가락에서 벗어난 산시로가 화가 치미는 듯이 낮게 신음한다.

 

“그렇게 치면 꽤나 예쁜 뱀장어겠네.”

 

말없이 로드와 산시로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산드라가 재미있는 듯이 끼어든다. 그리고 산시로가 좋아하는 봉긋한 가슴에 달라붙은 가슴 주머니에서 메모를 한 장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로드가 그걸 손에 들고 산드라를 본다. 산시로도 맞은편 책상에서 몸을 내밀었다.

 

“게다가 무섭게 똑똑한 뱀장어이기도 해.”

“이건?”

“카이의 약력이야. 좀 전에 조회한 건에 대해서 회답이 왔어.”

“과연. 달에서 태어나 자람. 호오, 어릴 때는 모친 손에, 14살 때부터는 지구인 양부 손에 길러졌군. 그래서 저렇게 루난 같지 않은 건가.”

 

말하면서 메모를 눈으로 좇는 로드의 등 뒤로 산시로도 들여다본다.

 

“결론만 말하면, 그는 터무니없는 수재야.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같은 현실적인 것부터 수학, 물리학 같은 이론적인 것까지. 하여간 딸 수 있는 학점은 전부 땄다는 느낌이야.

봐, 의학까지 약간 배웠어. 그리고 컴퓨터 조작에 우주선 조종 어느 쪽 자격도 특A야. 이걸 전부 18살 때까지 땄어.”

“게다가 학점을 딴 게, 그 어렵다는 혹성대학인가. 못 당하겠는걸, 이건 우수한 정도가 아니야.”

“이 배에 타기 전에는 대학 연구소의 강사 겸 연구원이었네. 전문은 이론 경제학과 식민지 평가, 분석. 저 젊은 나이에 강사를 맡았다니.”

“머리가 좋은 것 치고는 대인관계가 글렀네. 아니,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런 건 상관할 수 없었나.”

 

감탄하는 로드와 산드라를 제쳐두고, 산시로는 카이의 화려한 학력에 대해서는 지극히 퉁명스럽다.

그에게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뭘 배웠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실제로 얼마나 실전에서 움직일 수 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 점에서 산시로는 철저한 능력 우선주의자라 할 수 있다. 산시로 식으로 말하면, 이론밖에 모르는 수재 따윈 쓸모없는 녀석이다.

 

“그나저나 이 경력으로 딥 스페이스의 크루가 되다니 확실히 특이하긴 해. 굳이 고르자면 정치가라도 되는 게 좋을 듯한 커리어잖아.”

 

언짢은 산시로는 내버려 두고, 로드와 산드라는 감탄하면서 출력된 메모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딥 스페이스의 문관은 꽤 특이한 사람이 많아. 산시로 같은 예외는 있지만, 어느 정도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 무관의 대부분이 군인인 것에 비해 문관 쪽은 그때그때 임무의 종류에 따라 선택되기도 하니까.

성격적으로도 특이한 사람이 많지만, 직업적으로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어. 전 정치범이거나 망명자거나. 그러는 로드도 훌륭한 괴짜 부류에 들어가잖아.”

 

산드라가 장난스럽게 회색 눈동자를 반짝인다. 고개를 들어 산드라를 본 로드도 맞다고 하고 싶은 듯한 쓴웃음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로드도 대학 강사였던가. 분명히 이론 수학이랬나 뭐랬나…….”

 

이른바 맺어진 사람들끼리의 친밀한 분위기를 띠고 마주보는 로드와 산드라를 재미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산시로가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가담했다.

 

“교수가 자기 딸이랑 결혼하라고 강요해서 황급히 도망쳐 왔댔지.”

 

먼 옛날 북유럽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는 바이킹을 먼 선조로 둔 근육이 울퉁불퉁한 로드이지만, 그의 전문은 뜻밖에도 그 체격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분야였다. 이론 수학이란 새로운 공식을 찾아서 종일 컴퓨터를 노려보는,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질 듯한 분야로 산시로는 몇 번 설명을 들어도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카이의 언동은 일단 제쳐두고 이로써 그의 경력에는 흠잡을 데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 산시로가 말하는 의심이 풀린 건 아니지만, 우선 수상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근거도 발견되지 않았잖아.”

 

슬슬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하는 산드라의 말에 산시로는 아직 수긍하고 싶지 않은 듯, 반론하는 대신 불쾌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있어 지면상의 경력 따위는 확인에 지나지 않고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우수한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 산시로의 마음을 읽어냈는지 산드라가 그를 향해 몸을 내민다.

 

“당신들 둘의 조합에 대해서도 회답이 왔어. 『선택 방법에 이상 없음』이야. 아무래도 컴퓨터는 당신들의 심층 심리를 읽어내서…….”

“웃기지 마!”

 

산드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산시로가 산드라의 결론을 거칠게 가로막았다. 짜증 난 그대로 기세 좋게 일어나서 산드라와 로드에게 불온한 시선을 향한다.

 

“내 심층 심리라고? 제법 재미있는 소릴 하네.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내자식을 안은 적도 없고, 안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어안이 벙벙하게 올려다보는 두 사람을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보며 으르렁대듯이 그렇게 말한 뒤 산시로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나갔다.

 

“어디 가는 거지?”

 

한 번 화내기 시작하면 손쓸 수 없는 산시로의 성격을 잘 아는 로드가 황급히 일어선다. 그 말에 돌아보지도 않고 산시로가 소리쳤다.

 

“카이 방에.”

“카이의?! 산시로!”

 

산시로의 말에 그런 험악한 표정으로 그의 방에 가는 건 곤란하다고 산드라도 일어선다. 당장이라도 팔을 잡고 만류하려는 듯한 두 사람을 거칠게 손을 흔들어 제지하고, 산시로는 벽에 설치된 알람을 턱으로 가리켰다.

 

“밥 시간이라고. 카이 방으로 가져간다고 내가 그랬어. 환자가 밥을 굶으면 나을 것도 안 낫잖아. 그럼, 컴퓨터 체크 건은 내 말대로 한동안 상황을 보기로 하면 되겠지?”

 

할 말만 하고 산시로는 온몸에 노기를 품은 채 문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여느 때처럼, 거친 동작에도 불구하고 전혀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후우. 얘기를 잘못 이끌었어.”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 산드라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나간 산시로의 분노 입자가 아직 여기저기에 떠도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째서 저렇게 걸핏하면 화를 내는 건지 난 전혀 모르겠어.”

 

의자에 도로 털썩 앉은 로드가 고개를 갸웃대며 어깨에 손을 댔다. 아무리 봐도 북유럽 바이킹 같은 외견의 로드이지만, 실은 산시로의 고함에는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산시로와는 정반대의 극히 평온한 학구생활을 보낸 로드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용병이라는 위험한 일을 한 산시로를 아주 약간 거북해했다.

산시로 곁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산시로와 단둘이거나 아까처럼 소리치거나 하면 몸이 굳어져버린다.

 

“느낌만 통하면 남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 안 맞는 사람도 있어. 저이처럼 험한 일을 하는 사람 중에는 특히 많다고 하고.”

 

이건 로드보다도 산시로에 대한 공포심이 옅은 산드라다. 떼고 있던 궁둥이를 도로 붙이고 머리를 흔들어 타는 듯한 빨간 머리를 살짝 펼친 뒤, 표정을 다잡고 옆에 앉은 로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카이에 관한 보고는 우선 끝났지만, 조회한 경력은 한 명분 더 있어.”

“산시로 말이군.”

 

그다지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는 로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산드라가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또 한 장의 메모를 꺼냈다. 평소에는 나른한 회색 눈동자가 유능한 무관의 매서운 빛을 밝히고 있다.

 

“맞아, 산시로야. 실은 그의 경력은 구멍투성이야. 요컨대 연방 컴퓨터에도 기록으로 남지 않을 만한 일을 꽤 많이 했다는 뜻이지.”

 

얘기하면서 산드라는 기관실에서의 위압감 있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 그녀를 뒷걸음치게 한 그의 기척은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다.

 

“호오, 태어난 것도 자란 것도 운송선 호위함 안인가. 여기 따르면 기록에 남을 만한 교육은 받지 않았네. 그냥 시험만 쳐서 자격을 땄어.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무법자로군. ……, 당신 말대로 확실히 그의 기록에는 공백이 많아.”

“카이가 수상하다고 한 건 산시로이지만, 이것만 보면 산시로 쪽이 훨씬 수상해.”

 

못마땅한 얼굴로 메모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산드라가 로드를 본다. 평소에는 쾌활하고 대하기 쉬운 남자이지만, 순식간에 그 인상이 변하는 걸 봐버린 산드라는 산시로라는 용병 출신의 젊은 무관에게 바닥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로드 또한 뚫어지게 그 메모를 보고 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카이와도 상담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얼굴을 마주보고 끄덕인 산드라와 로드는 맞춘 듯이 한숨을 쉬고 산시로가 나간 문 쪽을 주시했다.

 

 

“――잠그지 말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인터컴에서 언짢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흐르고 방 주인이 손을 뻗어 버튼을 조작하자, 슉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식사를 담은 식판을 들고 입을 시옷 자로 앙다문 산시로의 장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싫으면 전 직접 식사를 하러 가겠다고 몇 번 말하면 알아듣겠습니까.”

 

버튼을 조작하는 동시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가운 대신 슈트를 걸친 카이가 여전한 바이저 모습으로 답했다.

몇 번이나 되풀이된 이 물음은 또다시 산시로가 뚱하게 입을 다무는 형태로 끝났다. 산시로도 멋대로 하라고 소리치고 더는 상관하지 않고 싶은 게 본심이지만, 카이의 극단적인 편식에 놀라 우선 몸이 회복될 때까지 감시하면서 식사하게 하기로 했다.

산시로는 식판을 카이의 코앞에 불쑥 들이댄 뒤 다짜고짜 침대 옆에 끌어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가 보는 데서 식사하는 걸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카이의 마음을 모른 척하고, 산시로는 쏘아보듯이 카이의 손을 바라보며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좀 전의 기분을 질질 끌고 있는 산시로의 험악한 침묵에 약간 눈살을 찌푸리고, 그러면서도 그 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이는 식사를 입가로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 산시로가 방으로 식사를 가져왔을 때 카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랐다.

화가 나서 산시로를 혼쭐내준 직후이자, 그가 열 받아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다음에 만날 때는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전에 한 약속 따위는 지켜질 리 없다고 보았고, 산시로와 단둘이서 한 방에 있는 건 솔직히 사양하고 싶었다. 굶주린 맹수와 우리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런 카이의 우려는 좋은 의미로 배신당했다. 산시로는 지금처럼 언짢은 오라를 뿌려대면서도 식사를 들이대고, 그의 편식에 불평하면서 끝까지 같이 있었던 것이다.

 

“잘도 해주셨겠다.”

 

그렇게 툭 중얼대고 번뜩이는 눈으로 카이의 바이저를 노려봤을 뿐, 이후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카이에게 손을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은 주의하고 있었지만, 산시로는 그가 가한 일격에 대해 아무 응어리도 갖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카이는 요새 간신히 어깨 힘을 뺐다.

한동안 산시로를 자세하게 관찰해보고, 카이는 산시로라는 남자에 관해 그 나름의 평가를 하고 있었다. 말보다 손이 먼저 나오는 타입으로, 하는 일마다 거칠고 방약무인, 금세 열 받았다며 눈을 치뜨고 고함치는 주제에 얼마 안 가 그 일을 깨끗이 잊어버린다. 그의 정신은 그 체격과 마찬가지로 터프하고 유연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단순하다는 건가.

힘으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기에 일단 경계는 해야 하지만, 고도의 비밀 사항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정신구조가 복잡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게 카이의 평가였다.

험한 말투와 거친 행동거지도 불쾌하고 방약무인한 언동에는 도저히 호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이번 임무에 중대한 마이너스가 될 정도의 일을 꾀할 수 있는 타입은 아니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요컨대 로드와 산드라가 산시로에 대해 수상함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카이는 그에 대한 경계심을 아주 약간 누그러뜨린 게 된다. 그것도 로드 일행보다도 산시로를 과소평가했다는, 산시로가 들으면 몹시 분개할 만한 이유이긴 했지만.

그런 걸 생각하면서 흘긋 산시로를 살핀다. 그는 여전히 언짢은 듯, 사람이 사는 기척을 느끼게 하지 않을 만큼 신경질적으로 정리된 방을 달갑지도 않은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

곱슬기 없는 흑발이 그가 머리를 저을 때마다 서늘한 소리를 낸다.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슈트가 그의 슬림한 몸매에 잘 어울렸다. 아무렇게나 꼰 긴 다리가 침대와 의자 사이에서 답답해 보인다.

서로서로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느 쪽이나 이미 알고 있고, 그러면서도 대놓고 상대에게 그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런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한방에 틀어박혀 있는 건 상당히 재미있는 시추에이션이라고, 카이는 희미하게 입술에 웃음을 띠었다.

아무리 경계했어도 둘이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상대의 기척이 자신의 공기에 녹아 들어버리는 모양이다. 시선을 맞추지 않아도 전신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던 카이의 주의가 아주 약간 그에게서 벗어났다.

 

“당신, 엠파스라며?”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움찔해서 고개를 들자 시시한 듯이 방안을 둘러보는 줄 알았던 산시로가 바로 정면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건…….”

“『당신하고는 관계없다』는 소린 하지 마. 난 당당한 피해자니까.”

 

카이가 태세를 갖추기 전에 기선을 제압한 산시로가 말한다. 말문이 막힌 카이는 식사하던 손을 멈추고 산시로가 자신에게서 무슨 말을 들으려 하는지 살피려고 그의 칠흑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로드한테 들었어. 순수한 루난 중에는 아주 드물게 있다고.

그……, 신경계가 극도로 민감하게 돼 있어서 감정이입이랑 감정방출을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다나 뭐라나 성가신 소릴 했는데……, 쉽게 말하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도, 자기가 어떻게 느끼는지 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지?”

 

입술을 깨물고 몸을 뻣뻣하게 굳힌 카이의 모습에는 완전히 무관심하게, 산시로의 어조에는 조금도 악의가 없다.

 

“까놓고 말해서 무지무지 감도가 좋다는 거겠지. 굉장하네,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면 그만큼 자기도 좋다니. 게다가 자기 몸에서 증폭된 쾌감을 상대가 느끼게 해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숙인 얼굴에 파란색이 도는 회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불투과 바이저에 거의 가려진 얼굴에서 겨우 카이의 마음의 움직임을 드러내던 뺨 선이나 입술의 희미한 표정이 딱딱히 굳어지고, 핏기가 가실 정도로 꽉 움켜쥔 주먹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래서야 루난이 남자나 여자나 섹스에 열중할 만하고, 어디서나 군침을 흘리면서 갖고 싶어 할 만도 해.”

 

잔혹할 정도로 명랑하게 말하고 고개를 젖히며 웃는 산시로의 햇볕에 그은 목덜미에, 채찍처럼 낭창하게 카이의 손가락이 뻗었다.

움직였다고 하기보다 춤췄다고 표현하고 싶을 만한 카이의 손끝이 산시로의 몸에 닿기 직전, 그 순간까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웃고 있던 산시로의 몸이 문득 카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목표를 잃고 아주 약간 몸을 비틀거린 카이의 등 뒤에서 갑자기 팔이 뻗어온다.

그걸 눈치챈 카이가 자세를 바로잡을 틈을 주지 않고, 그 팔은 카이의 바이저를 스치듯이 뺏은 뒤 홱 물러서서 그에게서 멀어졌다.

 

“두 번이나 같은 실수는 안 하지.”

“큭…….”

 

산시로는 의자 등받이를 잡고 그 팔심과 몸의 탄력을 이용해 카이의 몸을 침대째로 뛰어넘어서 소리도 없이 반대쪽에 선 듯하다.

말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기에는 보통이 아닌 반사신경과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 그 동작을 어렵지 않게 해낸 산시로는 카이의 손가락이 닿지 않는 아슬아슬한 곳에 섰다. 바이저를 손끝으로 만지작대며 카이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를 들여다 본다.

 

“역시 눈 안쪽이 빨갛게 빛나고 있어. 나, 당신의 그 눈 색 비교적 좋아해.”

 

심각한 척 그렇게 말한 산시로를 루비처럼 딱딱하게 빛나기 시작한 카이의 눈이 번뜩 올려다보았다.

 

“넌 날 화나게 해서 어쩌려는 거지?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싶어?!”

“헤, 더럽게 진지한 경어보다 그 말투가 당신한테 더 어울려. 나 참, 나도 어지간히 성질이 급하지만, 당신의 그 성급함에는 못 당하겠어.”

“네가 화나게 하고 있잖아!”

 

상의를 움켜쥐고 외친 카이를, 의외일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산시로가 응시했다.

 

“왜 화내는데?”

“왜냐니…….”

 

정색하고 되물어서 말이 막힌 카이에, 지금까지와는 싹 달라진 조용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당신은 항상 그래. 업무 얘기일 때는 좀 봐주라 싶을 정도로 끈질기게 말하는데, 자기 일이면 입을 딱 다물어버려. 그렇긴커녕 살짝 닿기만 해도 털을 곤두세우고 화내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서 말없이 눈을 휘둥그레 뜬 카이의, 미묘하게 반짝임을 바꾸면서 조금씩 붉은 기가 옅어지기 시작한 컬라이더스코프 아이를 산시로가 신기한 듯이 들여다본다.

 

“이렇게 예쁜 눈알을 왜 숨겨? 왜 남이 손대는 걸 그렇게 싫어해? 그리고 우리가 루난 얘기를 하면 굴욕 그 자체라는 얼굴로 몸을 굳히지. 당신은 루난이란 게 창피해?”

“……딱히 창피한 건 아니야. 그저 호기심 어린 눈이 성가실 뿐이지.”

 

들여다보는 산시로의 강한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중얼댄다. 눈을 보고 얘기하려 하지 않는 카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산시로의 눈썹이 짜증을 드러내며 희미하게 올라간다. 다시 한번 캐물으려고 입을 열다가, 마치 산시로의 다음 말에 겁먹은 듯이 몸을 긴장시킨 카이의 상태를 눈치챘다.

아무래도 카이가 제일 건드리기 바라지 않는 부분을 건드려버린 모양이다. 어째서 그렇게나 자신을 부정하려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물어버리는 카이의 태도는 못 견디게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일에 관해서 물어봤자 카이를 한층 완고하게 할 뿐인 걸 알고 있었으므로 산시로는 우선 그 건에 대해서 캐묻는 걸 포기했다.

 

“――뭐 됐어. 당신한테는 그것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나 묻고 싶은 게 산더미거든.

당신이 날 위험인물로 보는 건 잘 알고, 내가 당신을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알잖아. 속내를 살피는 것도 슬슬 질렸어.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답해줘야겠어.”

 

좋다 싫다 말도 못 하게 하는 고압적인 어조에, 숙이고 있던 카이의 고개가 훌쩍 들린다. 턱을 당겨 차갑게 다듬어진 얼굴에 도전적인 표정을 띠고, 부드럽게 스러지는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 말을 입에 담았다.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봐. 납득이 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카이의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진 산시로는 다음 순간 정말 재미있는 듯이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 세게 나오네, 마음에 들었어. 괜히 싫은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이쯤 되면 대단해.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하면 당신이랑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말이야.”

“쓸데없는 참견하지 마. 자, 나한테 뭘 묻고 싶어.”

 

완전히 퉁명스러운 카이의 대답에도 기분 좋게 끄덕인 산시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당신 경력이야.”

“경력?”

“그래. 확실히 말해서 너무 대단해. 당신도 딥 스페이스 우주선 크루에 대한 평가는 알지?”

 

산시로가 하려던 말을 제지하고 카이가 입을 연다.

 

“『프로는 있으나 엘리트는 없다』.”

“맞았어. 내가 그 전형적인 케이스인데, 당신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야. 어째서 딥 스페이스의,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콜드 슬립 타입의 배 같은 걸 탔지?”

“양부의 권유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답할 생각 없어.”

 

어조는 쌀쌀맞지만, 카이의 눈동자는 똑바로 산시로를 바라본 채 피하지 않는다. 산시로에게는 은근히 무례한 경어보다 완전히 시비조인 지금 말투가 훨씬 친근했고, 사적인 이야기가 되면 바이저 안에서조차 피했던 시선이 똑바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게 카이라는 미청년을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게도 했다.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하고 싶지만, 뭐 됐어. 지금의 당신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럼 다음이야. 내가 안정하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이 방에서 메인 컴퓨터를 불러내는 콜이 너무 많아. 모처럼 내가 혼자서 당직을 처리해주고 있는데, 얌전히 누워 있으면 될 걸 대체 뭘 조사했어?”

“알고 있었나…….”

 

이번엔 카이가 놀랄 차례였다. 눈을 크게 뜬 카이에, 기막힌 목소리의 산시로가 답한다.

 

“나도 프로야. 일반 작업에 뒤섞어서 흔적을 지우려 한 모양인데, 그런 잔재주에 넘어갈 만큼 만만하진 않다고. 당신, 용병은 덩치랑 완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말도 안 되는 인식 부족이야. 우리처럼 자기 기술과 몸만이 자본인 인간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모처럼 묶여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곱슬기 없는 머리카락을 굳이 흐트러뜨리면서, 극히 가벼운 태세로 계속 얘기한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다고 호언장담하는 머리 나쁜 녀석은 막상 사건이 일어나면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죽어버리는 게 고작이야. 진짜로 쓸만한 놈은 남의 배로 경계심이 강하고 주의 깊은 법이라고. 당신이 날 모니터로 감시한 것처럼 나도 당신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단 말씀이지.”

 

그 가벼운 어조와는 모순된 산시로의 용의주도한 경계심과 메인 컴퓨터에 대한 간섭을 발견한 그의 역량에, 카이는 눈앞에 편하게 선 장신의 남자를 새삼스럽게 다시 보았다.

카이는 아무래도 자신이 산시로를 만만하게 본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 사나운 외견과 거친 말투에 숨겨진 그의 프로로서의 확실한 기량, 만사를 지켜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놓칠 뻔한 것이다.

산시로는 잔재주라고 했지만, 일반 작업에 섞어 넣은 메인 컴퓨터에 대한 접촉은 그리 쉽게 파악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같은 작업을 교대로 했던 로드와 산드라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교묘한 것이다.

정보조작을 들킨 것만 해도 놀라운데, 자기 방에서 모니터를 조작해서 그의 행동을 감시했던 걸 알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컴퓨터 조작은 내 나름대로 궤도의 오차에 대해 조사했기 때문이야. 감시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자기 눈으로 보는 편이 내가 수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대로 둔 거야. 그런데 아직도 궤도의 오차에 얽매여 있다니 당신도 어지간히 끈질기네.”

“납득이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내 나름의 결론이 필요할 뿐이야.”

“그래서? 뭔가 찾았어?”

“현재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혼잣말처럼 읊조린 뒤 카이는 입술에 댄 주먹에 가만히 이를 세웠다. 카이는 자신이 산시로에게 경어를 쓰지 않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 이외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지만, 첫만남부터 지금껏 완전히 자연체를 관철하는 산시로의 페이스에 어느샌가 말려 들어 버린 듯하다.

 

“고생이 많으시네. 뭐, 한가할 때 하는 건 상관없지만, 당신은 아직 환자란 걸 잊지 마.”

 

그런 것에는 전혀 무관심하게, 생각에 빠진 카이를 내려다본 산시로가 어깨를 으쓱하고 그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먼저 환자라는 말을 입 밖에 냄으로써 카이가 아직 안정 중이라는 걸 떠올린 모양이다.

 

“아직 더 묻고 싶은 게 있지만, 자세한 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당신 의견을 들려줘.”

 

그렇게 말한 뒤 산시로는 화가 난 듯한 난처한 듯한, 정말 신기한 얼굴로,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리는 카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일이야. 버디 체크에 대한 회답이 왔거든. 선택 방법에 이상 없다나. 연방의 마더 컴퓨터, 정신 나간 거 아니야?”

“그래서?”

 

컴퓨터에 화를 내봤자 소용없다고 하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카이가 다음 말을 재촉한다. 거기에 산시로는 싫어하는 음식을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 듯한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한심해하는 것처럼 카이를 보았다.

 

“당신을 앞에 두고 이런 소릴 하는 건 면목 없지만, 난 도무지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산드라는 심층 심리가 어쨌다느니 했는데……, 이봐, 항상 생각하는 거랑 심층 심리는 그렇게 다른 거야?”

 

산드라와 로드에게는 위세 좋게 고함을 남기고 온 산시로이지만, 내심으로는 상당히 동요했던 모양이다. 실수라면서 화낼 수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그의 입장에서는 터무니 없는 회답이 나와버린 지금 그의 사고회로는 입력된 정보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한 모양이다.

조용히 올려다보는 카이를 빤히 들여다보면서 정말 곤란하다는 얼굴로 난폭하게 머리카락을 휘젓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무섭게 터프하고 카이에 비하면 훨씬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산시로이긴 하지만, 이 건에 대해서 고민하는 데에 완전히 지쳐버린 것 같다.

드물게 노골적으로 축 늘어진 산시로에 웃음을 억지로 참고, 카이는 침대에 앉은 채 무릎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아무래도 버디 시스템의 진짜 의미를 잊은 모양이군. 연방은 이상적인 무관과 문관 조합을 검색하고 있어. 딱히 너에게 연인을 제공하려는 건 아니라고.”

“그렇다 쳐도 당신이랑 내가 이상적인 조합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데.”

 

산시로는 그런 우등생 같은 답변에는 아무리 해도 납득할 수 없다. 확실히 누가 봐도 그들의 조합이 성공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루난과 전 용병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색적인데, 두 사람 다 뭔가 석연치 않은 걸 가졌고 서로를 수상쩍게 여기는 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성격적으로 봐도, 산시로는 너무 제멋대로고 카이는 너무 성실하다. 이래서는 완전히 불과 물이다.

콜드 슬립에서 깨어난 지 열흘 이상 지났는데, 시비조의 언쟁은 지겹도록 해왔지만 제대로 된 대화는 손꼽을 정도밖에 없다. 빈말로라도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긴……. 하지만 서로가 가진 기술의 조합이 이번 임무에 딱 좋았을지도 몰라. 기술과 상성을 저울질한다면, 연방으로서는 기술적인 면을 우선하고 싶어 할 게 당연하지 않을까.”

“으…….”

 

그 추론은 산시로에게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싸한 소릴 들어봤자, 머리로는 납득할 수 있어도 도저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아니라면 단독임무를 희망한 내가 누군가와 짝이 된 이유를 모르겠어…….”

“단독임무라고?! 당신, 실수로 남자인 나랑 짝지어진 게 아니야?”

 

무릎 위로 깍지 낀 두손에 시선을 떨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카이의 말에 산시로는 얼빠진 소리를 질렀다.

 

“남자나 여자나……, 그런 것 이전에, 난 아무하고도 같이 할 생각이 없었어――”

 

그렇게 말한 뒤 겨우 시선을 든 카이는 멀뚱멀뚱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산시로와 눈이 마주치자 그 지나치게 반듯한 얼굴에 희미한 주저 같은 색을 띄웠다. 아무래도 말할 생각이 없었던 걸 저도 모르게 입 밖에 내버린 듯하다.

미묘하게 계속 색을 바꾸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에 그늘이 지고 마치 투명한 가면을 쓴 것처럼 카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어깨선이 약간 올라가고, 힘을 빼고 편하게 있던 몸에 평소의 딱딱한 긴장이 돌아왔다.

 

“바이저를.”

 

일순이라도 산시로에게 경계심을 푼 것을 후회하는지, 평소보다 더 억양이 없는 목소리가 카이의 급격한 변화에 눈을 휘둥그레 뜬 산시로에게 들려온다. 어둡게 그늘진 컬라이더스코프 아이가 산시로가 만지작대던 바이저에 집중되었다.

카이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던 산시로는 내밀어진 손을 달갑지 않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의외로 얌전히 손끝에 걸려 있던 바이저를 카이를 향해 가볍게 던져올렸다.

카이의 반격이 어지간히 타격이었으리라. 카이의 손끝이 닿지 않는, 이른바 사정거리 밖에 서 있는 산시로가 던진 바이저는 카이의 손에 도착하기까지 체공 시간이 있었다.

자연히 카이의 눈이 그 바이저를 쫓아 산시로에게서 떨어진다. 아주 약간 그의 손에서 벗어난 바이저를 향해 내민 카이의 손가락은, 바이저에 닿기 직전 갑자기 뻗어온 산시로의 손에 붙잡혔다.

 

“무슨 짓을……?!”

“그런데 당신, 이 수법에 몇 번이나 당하네. 기습에 약하다고 할까 경계하는 법이 서툴다고 할까……, 딱히 난폭한 짓은 안 할 테니까 예의 전격은 참아줘.”

 

노기를 훅 품고 그를 올려다본 카이에, 산시로는 침착하게 카이의 손목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카이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는다.

그 자세로는 바닥에 무릎 꿇은 산시로를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카이가 내려다보는 형태가 된다. 한 번은 손을 뿌리치려 한 카이지만, 자신을 올려다보는 산시로의 생각지도 못한 진지한 표정에 움직임을 멈췄다.

 

“별로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날 계속 의심할 거잖아.”

 

카이의 손이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걸 그만둘 때까지 단단히 손목을 구속하고 있던 산시로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읊조린 뒤 잡고 있던 손목을 가만히 자기 목덜미에 댔다.

 

“맥박이 있는 곳인가? 아니면 머리에 가까운 곳이야? 어떤 데가 느끼기 쉬워?”

“뭐, 를……?”

 

카이는 산시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둔하긴. 당신 엠파스 아냐? 그럼 모니터를 써서 날 감시하기보다 더 쉽고 빠른 방법이 있잖아. 당신 손으로 나 자신한테서 답을 들어줘.”

“――?!”

 

카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에 초조해진 산시로가 그의 손바닥을 전에 카이가 만졌던 경동맥에 댄다.

 

“여기면 돼? 그럼 시작한다. 내 이름은 산시로. 풀네임은 산시로 마키노.”

“―….”

 

말없이 눈을 크게 뜬 카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시로는 자기 경동맥에 그의 손을 단단히 누른 채 계속 말한다.

 

“이 이름이랑 눈 색, 머리카락 색대로 대부분은 오리엔탈인 것 같아. 같다는 건, 사실은 나도 잘 모르거든.”

 

그렇게 말하고 카이의 손을 자기 목덜미에 댄 손과는 반대쪽 손으로 머리카락을 휙 쓸어올려 보였다. 가죽끈에서 삐져나와 얼굴로 내려온 윤기 있는 흑발이 긴 손가락 사이를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 간다. 자연히 그 움직임을 눈으로 쫓던 카이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와 산시로의 불순물 없는 칠흑의 눈동자가 딱 맞춰진다.

아마 이건 카이의 버릇이리라. 눈이 마주치면 정면에서 바라보는 걸 피하듯이 일순 시선이 흔들리고, 뒤이어 상대의 시선에서 피하려 한 자신과 자신을 그런 기분이 들게 한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눈동자에 꾹 힘을 주고 노려보듯이 올려다본다.

 

“가까이서 보니 역시 예쁜 눈이네.”

 

싸움을 거는 거나 별 차이 없는 시선으로 노려보는데도, 산시로는 카이의 마음의 움직임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 쾌활함으로――그건 마치 희귀한 나비의 날개 무늬를 넋 놓고 보는 아이 같은 천진함으로――빤히 카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숨김없는 호기심 어린 눈에 어쩐지 모르게 맥이 풀려서,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카이의 경계심이 갈 곳을 잃어버린다.

그런 카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산시로는 자기 목덜미에 댄 카이의 손을 가볍게 고쳐 잡은 뒤 진지하게 자기소개를 재개했다.

 

“부친은 완벽한 지구인이지만, 어머니는 인종이 뒤죽박죽 섞였어. 당신처럼 순수한 루난도 드문 모양인데 나처럼 엉망진창인 경우도 드문 것 같아. 하지만 덕분에 지구인보다는 밤눈이 밝고 몸의 탄력도 발군이지. 얼굴은 보다시피 야성적인 미남이고. 득 본 적은 있어도 손해 본 적은 없어.

제일 큰 특징은 표준인종보다도 가시역이 좀 넓다는 걸까. 나, 적외선이 보이거든.”

“적외선이?”

 

되물은 카이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카이도 겨우 이 색다른 자기소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카이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라고 하고 싶은 듯하다. 여느 때처럼 사전 설명을 생략한 산시로 다운 방식이었다.

 

“그래, 송곳니도 좀 길어. 치아라기보다 엄니 같지?”

 

그렇게 말한 뒤 가볍게 입을 벌려 보인다. 확실히 통상이라면 송곳니라 불릴 위치에 있는 치아는 육식동물의 엄니 같은 완전한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게 좀 더 길었다면 충분히 엄니로 통용되리라.

 

“형제자매는 내가 아는 한 여덟 명인데 여자가 다섯이고 남자가 세 명, 난 그중 여섯 번째야. 어머니가 그럴 마음만 있었으면 두세 명은 더 늘었을지도 몰라. 작명법이 건성이라 남자는 순번대로 숫자가 붙고 여자는 전부 색깔이야. 아래로 여동생이 둘 있어. 위로는 형이 둘, 누나가 셋이야.”

“그럼 어째서 네 이름에는 숫자가 두 개 붙어 있는 거지?”

“쌍둥이 중 한쪽이거든. 내 동생인지 형인지 모를 애는 태어난 뒤 바로 아이가 없는 백부네 집에서 데려갔어. 그걸 빼면 숫자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나한테는 두 명분의 숫자가 붙어있는 거지.”

“재미있는 어머님이시군. 그런데 산시로, 엠파스라는 건 감정을 읽는 것이지 사고를 읽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접촉한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는…….”

 

몰라. 라고 말을 이으려 한 카이를 산시로가 가볍게 고개를 저어 가로막았다.

 

“『사고』라는 건 근원을 캐보자면 『감정』에서 나오는 거 아니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어떤 기분으로 말하고 있는지는 느낄 수 있잖아? 지금 하는 말이 거짓이라면 감정에도 그 나름의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난 남의 감정을 읽는 걸 한동안 하지 않아서 그런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까지는 읽어낼 수 없어.”

“흠, 엠파스 능력은 연습하지 않으면 못 쓰는 거야?”

“새도 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오로지 자기 감정을 증폭시켜서 주입하는 능력을 갈고 닦았으니까.”

 

열심인 산시로에 이끌려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에 산시로가 입술을 끌어올렸다. 입가로 살짝 엄니 모양의 송곳니가 들여다보인다.

 

“과연, 의사소통을 가늠하는 수단이라기보다 무기로 썼단 말이군. 대단한 루난이 다 있네. 당신 어지간히 하지 않으면 친구를 다 잃을 거야.”

“쓸데없는 참견하지 마.”

 

눈썹을 홱 치뜬 카이에 개의치 않고, 산시로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전히 카이의 손바닥을 자신의 경동맥에 댄 채이다.

 

“그럼 계속할게. 어릴 때부터 계속 우주선에 탔으니까 실제 나이는 제법 돼. 언뜻 보기에 당신 쪽이 연상 같지만, 아마 태어난 건 내가 먼저일 거야.”

 

산시로가 하는 말은 광속으로 나는 물체 안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립 밴 윙클 효과를 가리킨다. 워프를 거듭하는 우주선 안에서 자란 산시로의 1년은 일반적인 시간 흐름으로 나고 자란 카이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난 게 된다. 속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산시로가 지낸 1년이 카이에게는 3년에도 5년에도 상당하는 것이다.

 

“뭐, 그렇게 자랐으니까 용병이라는 장사는 꽤 성격에 맞아. 이 임무가 끝나면 다시 용병 가업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산시로, 아무리 설명해줘도 난 네 거짓말을 느낄 수 없다고 했잖아.”

“괜찮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자기소개해 버려야지. 거짓말은 못 읽어낼지 몰라도 조금이라면 내 감정을 읽어낼 수 있잖아? 나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이 이상의 설명을 그만두게 하려 한 카이를 도리어 가로막고, 산시로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번에 연방의 소환을 받아들인 이유는 두 가지야. 하나는 뭐, 기대가 빗나갔지만 베스트 매치의 미녀와 잘해보려고 한 거였고, 다른 하나는 연방 최신예함의 기능을 머리에 주입시키기 위해서야.”

“그건……?”

 

카이의 눈이 슥 가늘어진다. 그에 비해 산시로의 목소리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기밀은 뭐든 비싸게 팔리니까.”

“쥘 베른의 기능을 팔 셈이냐?! 중대한 복무 규정 위반이야!!”

 

카이는 산시로가 입 밖에 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기밀 취급인 최신예 쥘 베른의 기능을 판다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하는 산시로에, 카이는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다.

의심을 풀기 위해 자기소개를 한다고 했으면서, 태연한 얼굴로 군의 기밀을 팔겠다고 한다. 이래서는 완전히 역효과다.

산시로에게 손목을 잡혀 그저 대고 있을 뿐이었던 목덜미의 손에 약간 힘이 실린다.

 

“이크, 파지직 하기 전에 내 얘길 들어줘.”

 

경동맥에 누르고 있던 카이의 손가락이 의지를 갖고 닿아온 것을 민감하게 느낀 산시로는 붙잡고 있던 카이의 손을 황급히 목덜미에서 뗐다.

 

“잘 생각해 봐, 이 배는 왕복 6년의 장기 임무라고. 우리가 돌아올 즈음에는 최신예인 이 배의 기능은 연방군 사이에서는 흔한 표준장비가 됐을지도 몰라. 그래도 항공우주국은 쩨쩨하니까 민간에는 아직 기밀로 하고 있겠지.

어차피 누군가가 폭로할 건데, 그럼 내가 좀 일찍 기능을 공개하고 민간선의 성능을 올려서 돈을 좀 번다고 그렇게 헐뜯을 일도 아니잖아?”

 

천연덕스럽게 그 말을 입에 담은 산시로를 카이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들여다본다.

 

“……, 네 윤리관은 대체 어떻게 돼 있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껴봐.”

 

명백하게 재미있어하는 어조로 산시로는 한 번은 놨던 카이의 손을 다시 자신의 목덜미에 눌러 댔다.

 

“굳이 느낄 것도 없어. 네 얼굴에는 죄악감이라곤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고 쓰여 있어.”

“하, 정답. 이게 용병이 용병인 이유라서. 난 연방군에 요만큼도 충성심을 느끼지 않아. 수지맞는 일거리가 있으면 언제라도 그쪽으로 전직할 거야.”

 

항복의 증거로 두 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고, 산시로를 이 배에 승함 시키기로 결정한 연방의 인사담당관이 들으면 기절할지도 모를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리고 어이없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카이를 향해 제법 그럴싸한 윙크를 던졌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수배자가 될 생각 없어. 그런 푼돈 때문에 온 연방을 쫓겨 다니다니 전혀 수지가 안 맞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걱정할 만한 성가신 사건은 절대 일으키지 않을 테니 이 일은 산드라네한테는 비밀로 해줘.”

 

제 할 말만 하고 이로써 자기소개는 끝났다는 듯이 경동맥에 대고 있던 카이의 손을 놓고 일어났다.

가볍게 무릎을 털고 완전히 풀려버린 머리카락을 늘 그렇듯 대충 다시 묶으며 카이에게 시선을 던진다.

 

“당신 진단 결과 봤어. 다음 당직부터 통상임무도 할 수 있나 보더군. 당신의 그 빼빼 마른 몸으로는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터프하게 돼 있는 모양이네.”

 

갑자기 얘기를 마무리한 산시로를 따라잡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하게 그를 올려다본 카이가, 지금까지 산시로의 목덜미에 대고 있던 자기 손바닥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산시로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손바닥에 남은 건 산시로의 뜨거운 듯한 체온과 그보다도 더 뜨겁게 느끼는 산시로의 감정의 감촉이다.

상대의 감정을 느끼는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았던 카이에게, 산시로의 성실한 자기소개는 그가 생각한 만큼 효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카이가 느낀 것은 산시로의 몸에서 발산되는 지금껏 느낀 적 없는 다이나믹한 감정의 방류뿐이다.

 

“어때? 내가 수상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알겠지?”

 

빤히 제 손바닥에 시선을 집중했던 카이는 갑자기 들여다본 산시로 때문에 저도 모르게 펄쩍 뛰었다. 그런 카이를 코앞에서 보던 산시로가 엄니 모양의 송곳니를 보이며 입술을 씩 끌어올린다.

바로 지금까지 벽 옆에 서서 머리카락을 다시 묶고 있었는데,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거의 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산시로의 햇볕에 탄 얼굴이 있었다. 눈과 머리카락은 부친을 닮았다는, 오리엔탈 특유의 살짝 올라간 칠흑의 아몬드 아이즈가 재미있는 듯이 카이를 보고 있었다.

 

“……그런 건 모르겠어. 사고와 감정은 다르다고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남의 기척에 민감했던 자신이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올 때까지 산시로의 움직임을 읽지 못한 분함과, 결코 방심한 게 아닌데 어느샌가 산시로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 버린 자신에 대한 화도 한몫해서 카이의 어조는 평소보다 훨씬 딱딱해졌다.

 

“무엇보다 저는 『느낀다』는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당신을 판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연방에 조회해서 당신의 프로필을 조사하고 이번 임무 이전 업무에 대한 각각의 평가를 확인한 뒤 종합평가를 내릴 생각입니다.”

 

부드럽게 스러지는 허스키 보이스에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투로 그렇게 말한 카이는 여전히 근처에 있는 산시로의 얼굴을 보고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이 방이 덥습니까?”

 

완전히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아버린 카이에 과장된 한숨을 쉬고 어깨를 으쓱해 보인 산시로의 이마에 어렴풋이 땀이 밴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래도 본인은 눈치 채지 못한 듯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산시로이지만, 카이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이마를 만지고 거기에 밴 땀을 인식하자 뭐야, 하는 얼굴을 했다.

 

“당신 손이 닿는 곳에 있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전기뱀장어나 호저랑 같은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말해서 쫄려.”

“전기뱀장어? 호저라니……저 말입니까?!”

 

눈을 휘둥그레 뜬 카이에 산시로는 웃지도 않고 긍정한다.

 

“그래. 난 당신이 뭘 겁내는지 알 수 없으니까.”

“――전 딱히 아무것도 겁내지 않습니다.”

 

극히 가벼운 산시로의 어투에 거의 억양이 없는 카이의 말이 돌아온다. 그걸 신경 쓰는 낌새도 없이 산시로는 뾰족한 송곳니를 보이며 카이에게 웃어 보였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당신 태도는 피해망상증 전기뱀장어나 자폐증 호저 같은 느낌이야.”

 

일순 눈동자 안쪽으로 빛난 빨간 반짝임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 산시로이지만, 금세 그 빛을 지우고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카이에 호들갑스럽게 얼굴을 찡그린다.

 

“또 그런 얼굴을 하지. 화가 났으면 솔직하게 화내. 그런 식으로 자기 주위에 벽을 만들고. 그 태도가 피해망상증에 자폐증이라는 거야. 당신, 그런 식으로 사방팔방에 잔뜩 긴장하고 있으면 금세 신경이 끊어져 버릴걸.”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에 신기한 은색 그림자를 번지게 한 카이가 고개를 숙인다. 한편 산시로는 자신의 말이 카이 안에 어떤 파문을 남겼는지는 전혀 관심 없이 냉큼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린 뒤 손끝에 걸고 있던 바이저를 고개 숙인 카이의 시선 앞에 던지고, 숙이고 있던 반신을 일으켰다.

이로써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방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간 산시로가 열린 문에 한쪽 발을 내디딘 상태로 멈춰 선다.

 

“맞다, 중요한 걸 깜박했네.”

 

혼잣말을 중얼댄 뒤 진지한 얼굴을 하고 돌아본다.

 

“당신, 누나나 여동생은 없어?”

 

여느 때처럼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아직 산시로의 말에 붙들려 있던 카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산시로를 보았다. 그리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보다 훨씬 진지한 산시로의 모습에 자신도 표정을 다잡고 그를 올려다본다.

 

“저에게는 형제도 자매도 없습니다만, 그게 왜요?”

“칫, 끝까지 운이 없네. 그럼, 당신 어머니는 몇 살이야?”

 

산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은 카이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에 대해 산시로의 말은 시원스럽고 거리낌 없었다.

 

“뻔하지. 모처럼 루난이랑 아는 사이가 됐는데, 미인인 누나나 여동생을 소개받으려 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하지만 뭐, 외동아들이라면 어쩔 수 없지. 이봐, 당신의 미인인 어머니는 몇 살이야?

난 여자에 대해서는 수비 범위가 넓으니까 꽤 나이가 많아도 괜찮거든. 뭣하면 친구라도 좋아. 당신만큼 예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난 동족인 친구도 없고 어머니는 어릴 때 죽었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나가! 그렇지 않으면…….”

 

어리둥절하게 산시로의 말을 듣고 있던 카이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평소의 너무나도 냉정한 이론가 같은 면밖에 본 적이 없는 로드나 산드라가 알면 눈이 휘둥그레질 날카로운 기세로 위세 좋게 말한 뒤, 모포를 박차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한다.

 

“내가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꼭 그렇게 화낼 건 없잖아.”

“……배짱 좋군. 거기서 꼼짝하지 마…….”

 

엉뚱한 소릴 뻔뻔스럽게 말해 버린 산시로에, 장렬한 미소를 띤 카이가 고양이처럼 나긋하게 다가간다. 그 그림 같은 긴 손가락이 매의 발톱처럼 벌려져 있는 걸 깨달은 산시로가 황급히 문 너머로 튀어 나간다.

 

“도망치지 마!”

 

닫혀가는 문을 향해 카이가 외친다.

 

“무슨 그런 농담을.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거의 닫힌 문 너머에서 산시로가 성실하게 대답한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던 카이의 코앞에서 문이 완전히 닫히고, 숨을 몰아쉬는 카이만이 방안에 남겨졌다.

 

“――저 녀석은 지금까지 진지하게 만사를 생각한 적이 있긴 한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 눈으로 문을 노려보며 중얼댄다.

크게 숨을 쉬고 마음을 가라앉히려다, 그러면서도 눈을 빨갛게 태우고 있는 카이는 그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온 인간은 산시로가 처음이라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어깨를 치켜올리고 다 내리지 않은 열에 비틀대는 다리를 힘껏 디뎌 침대로 돌아가면서, 카이는 언뜻 생각이 나서 산시로가 나간 문을 돌아보았다.

생각한 걸 그대로 입 밖에 내버리는 산시로의 개방적인 성격은 카이를 짜증 나게 하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의 태도가 성실한 카이를 휘두르기도 했지만, 이렇게 큰소리로 외친 일은 몇 년이나 없었던 것, 그의 눈을 보고 그를 만지고, 만진 뒤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은 인간 따위는 없었던 것을 겨우 깨달았다.

 

“산시로……, 산시로, 마키노――”

 

실수로 짝지어졌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버디 상대의 이름을 입에 담아 본다. 그때 카이는 비로소 산시로라는, 마치 길들지 않은 야생동물 같은 단순하고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가 궁금해졌다.

 

 

 

 

→청의 궤적 上 - 5. 잠깐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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