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번역. 정식번역판이 나오면 삭제합니다.

 

 

 

청의 궤적 上

 

쿠노 치아키

 

 

 

3. 세이렌 현상

 

 

기관실에서 나온 산시로는 한숨 자려고 자기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벗은 슈트를 어깨에 걸치고 상반신은 맨몸인 채로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다. 이게 일반적인 연방의 배라면 군법회의 감인 불량한 복장이지만, 쥘 베른에서는 그것도 관대하게 봐주고 있다. (라고 적어도 산시로만은 생각하고 있다)

거주 구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큰 보폭으로 돌았을 때, 마침 브릿지 쪽에서 나온 듯한 카이와 보자마자 충돌할 뻔했다.

 

“이크…….”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도저히 피할 수 없겠다고 순간적으로 깨달은 산시로는 재빨리 몸을 비스듬하게 돌리고 대신 팔을 내밀었다. 카이와 부딪치는 걸 피하고 자세가 무너져서 비틀댈 카이를 받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돌연한 급브레이크에 기세가 지나쳐 넘어질 줄 알았던 카이의 몸은 그의 팔 안으로 뛰어 들어오지 않았다. 빈 팔을 보고 고개를 들자 카이는 한 걸음 물러난 곳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 있다.

 

“반사 신경 좋네.”

 

부딪치기 직전 바로 물러선 듯한 카이에 가볍게 휘파람을 분다. 그 거리에서 그 기세로 산시로의 몸 어디에도 카이의 몸이 닿지 않았을 정도니 보통 운동신경이 아니다.

 

“살금살금 걷는 버릇이라도 있는 겁니까?”

 

변함없이 딱딱한 어조로 말하는 카이. 그 얼굴을 덮어 감추고 있는 바이저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산시로는 카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뗀 뒤 자세를 바로잡았다.

 

“발소리가 안 나기는 서로 마찬가지잖아.”

 

말하면서 훌쩍 허리를 숙여 어깨에서 흘러내린 슈트를 줍는다.

카이도 산시로도 발소리를 내지 않는다. 발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이지만, 실은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산시로는 성큼성큼 기세 좋게 걷지만, 신기하게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 위험한 직업상 몸에 익힌 것인지 그의 몸놀림에는 일종의 독특한 절도가 있었다. 체중 이동이 상당히 교묘한 것이리라. 발소리뿐 아니라, 산시로의 행동거지는 난폭하지만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카이는 어떤가 하면, 이것은 이미 타고난 것이리라. 고양이가 발소리를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밖에 없는 매끄러움으로 미끄러지듯이 걸었다.

결코 바이저를 벗으려 하지 않는 완고함이나 거의 은근한 건방짐에 가까운 경어, 특히 메카닉에 관해서는 칼로 베는 듯한 어조와 지극히 날카로운 정확함으로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하는, 전해 듣던 루난의 습성과는 아주 동떨어진 과격한 성격의 카이이지만, 그 자태만 보면 그는 틀림없는 루난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 딱딱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카이의 동작은 대단히 매끄러웠다. 하나하나의 동작은 어딘가 나른해서 얼핏 보기에 움직임이 느릿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카이의 흐르는 듯한 태세 탓으로, 모두와 같은 작업을 누구보다도 효율 높게 처리하는 카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환각작용이 있는 무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의 나긋한 움직임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듯한 종류의 것이라 관절이나 근육 같은 인체를 구성하는 부품의 존재가 믿기지 않았다.

일상의 별것 아닌 동작, 우연한 순간의 몸놀림은 거의 관능적이기까지 했다.

로드나 산드라를 때때로 취한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카이의 행동거지의 마술은 아무래도 산시로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는 듯하다. 약간 미적 상상력이 결여된 이 남자의 눈에는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게 훌쩍 물러선 카이의 몸놀림도 날카로운 반사신경을 가졌다는 사실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봤더라면 한숨이라도 쉬고 싶어질 만한 카이의 움직임에 완전히 무관심하게, 산시로는 훌쩍 내려온 머리카락을 성가신 듯이 뿌리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곱슬기가 없는 생머리라 가죽끈으로 대충 묶는 정도로는 금세 끈이 흘러내려 버린다. 거의 풀어진 머리카락에서 가죽끈을 빼내고 그걸 입에 문 뒤 두 손을 뒤로 돌려 머리카락을 다시 묶으면서 말을 꺼낸다.

 

“그쪽은?”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기관실 쪽에서는 에너지 유출이 있었습니까?”

 

주어를 빼고 극단적으로 단어를 생략해 말하는 산시로에 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이상 무. 이거 장기전이 되겠네.”

 

말로 설명하는 걸 귀찮아하고 질문에 대한 답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 그 자체만 입 밖에 내는 산시로의 무뚝뚝한 말투에 카이는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산시로가 퉁명스러운 남자인 건 아니다. 말투도 거칠고 이야기의 내용도 그다지 고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구와도 선을 긋고 접하는 카이와는 달리 로드나 산드라와 금세 스스럼없어져서 틈만 나면 그들과 잡담을 즐기고 있었다.

결코 달변가는 아니지만, 산시로는 그 난폭한 언동이나 위험한 직업치고는 뜻밖일 정도로 쾌활한 분위기를 가졌다. 군의 규율과는 충돌하는 부분이 많지만, 자연체로 느긋하게 행동하는 산시로의 모습은 타인의 어깨에서도 힘을 빼게 하는 작용이 있는 듯하다.

업무 이외의 사소한 농담이나 대수롭지 않은 담소를 열심히 하는 모습에 내심 업무 얘기만 이렇게나 생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말하는 요령을 이해한 지금은 쓸데없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카이로서도 편해졌다.

산시로는 카이와 오래 얘기하다 보면 꼭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규율이나 법규를 완전히 무시하고 어디까지나 용병류의 언동으로 밀어붙이는 산시로에게 자기는 상당히 양보하고 있다 싶은데, 산시로는 바이저를 쓴 자신의 얼굴에 전혀 익숙해지려 하지 않는다. 말썽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도 대화는 짧은 편이 좋다고 카이는 깨끗이 마음을 접고 있었다.

 

“그 건에 관해서는 로드와도 얘기했는데 좀 더 조사의 정도를 올려보려고 합니다. 컴퓨터의 가동 부분을 구획 짓고 블록마다 체크 항목을 늘려 탐색함으로써 하나씩 제외해 가면…….”

 

아무리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업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 다 프로로서 자신의 전문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가지 문제에 머리를 짜낸다.

 

“블록으로 구획 지어서, 라……. 메인은 작동시켜두고 체크 중의 블록만 통상 업무에서 제외한다는 건가.”

 

머리카락을 다 묶은 산시로가 표정을 다잡고 생각에 잠긴다.

 

“다른 부분에 가해질 부담을 생각하는 거라면, 일시적으로 서브 시스템을 접속할 테니 지장은 없을 겁니다.”

“헛수고야.”

 

한 마디로 단언한 산시로에, 카이도 과연 눈썹을 치켜올린다.

 

“헛수고라뇨? 지금 현재 궤도가 어긋나는 원인을 모르고 있어요. 저랑 로드의 계산대로 다시 체크해보면 소요 시간 약 500시간 정도로 총 점검이 끝납니다. 지금까지 중에 빠트린 부분을 찾기 위해서는 이게 제일 빠른 방법이잖아요?”

“이만큼 조사해도 못 찾아냈는데 다시 부분적으로 접속을 끊고 조사해봤자 아무것도 못 찾을 거야. 어차피 체크할 거라면 더 철저하게, 메인 컴퓨터를 끊고 총 점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메인 컴퓨터를 끊는다? 제정신입니까?”

 

카이의 어조가 훅 차가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산시로의 말은 너무나도 무모했다. 메인컴퓨터를 끊는다는 건 광속으로 날고 있는 배에서 지도를 뺏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최소인원으로 운행하기 위해 보통 배보다도 컴퓨터에 의존하는 부분이 큰 쥘 베른에 있어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하는 소리가 말도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다만, 다시 체크하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컴퓨터의 이상 부분을 못 찾을 거라는 뜻이야.”

“저도 계속 날면서 컴퓨터를 체크하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긋남이 생기는 한, 그 원인을 조사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항행에 지장이 있잖아요?”

 

지극히 지당한 카이의 말에 산시로가 팔짱을 끼고 입가를 올렸다.

 

“그럴까……? 수동으로 하면 조종간은 말을 듣고, 우리를 두드려 깨운 경보는 이온 폭풍 때문이지 궤도가 어긋나는 것과는 관계가 없었을 텐데.”

 

카이가 대답하기까지 약간 공백이 있었다.

산시로의 말을 머릿속에서 반추하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려해본 것이다. 바이저 안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가 상반신 맨몸인 남자를 살펴본다.

 

“마치 이 이상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 같군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한다. 만약 산시로가 이걸 긍정한다면 카이도 생각이 있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뭐, 그런 걸까.”

 

조금이라도 부정하는 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산시로는 시원스럽게 긍정했다. 지극히 가벼운 산시로의 말투와는 반대로 카이의 입술이 희미하게 긴장된다.

카이 또한 산시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기관실에서 산시로가 산드라에게 설명한 것과 같은 의심을 카이도 산시로에게 갖고 있었다. 버디의 인선 실수, 전대미문의 용병 무관 그리고 고장 부분을 찾는 걸 반대하는 듯한 태도. 나빴던 첫인상도 한몫해서 처음부터 수상쩍게 느꼈던 이 버릇없는 젊은 남자에 대한 카이의 불신감이 방금 그 말로 단숨에 긴장을 높였다.

 

“그건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부드럽게 스러지는 카이의 목소리는 그의 의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카이의 감정에 충실하게 그 색을 변화시키는 그의 눈동자가 짙은 바이저 안에서 은색으로 깊어졌다.

그런 카이의 낌새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산시로가 다시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도리어 머리카락을 흐트러지게 해버릴 뿐인데 산시로는 질리지 않고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려 한다.

 

“어쩌면 이건 예전부터 선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우주의 장난일지도 모른다고 보거든. 아마 당신은 모르겠지만, 세이렌 현상이란 거야.”

 

아니나 다를까 풀어져서 얼굴 앞으로 축 내려온 머리카락을 성가신 듯이 흔든 뒤, 산시로가 중얼거렸다.

 

“세이렌……?”

 

산시로의 말대로 그 단어는 카이의 지식에는 없다. 그보다 애초에 그가 배워온 교육 커리큘럼 속에 없는 것이다.

눈살을 살짝 찌푸린 카이의 얼굴에 흘긋 시선을 던지고 산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나도 들은 적은 있지만 믿지는 않았거든. 이건……, 뭐랄까 전해지는 얘기랄까, 전설 같은 거야.”

“전설?”

 

카이는 점점 알 수가 없다. 하이테크의 최첨단을 탑재한 우주선 안에서, 정서적 상상력 같은 것과는 도무지 인연이 없어 보이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산시로의 얼굴은 대단히 진지하다. 몇 번 쓸어올려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는 손을 멈추고 배의 진동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용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지구의 바다에서 먼 옛날 선원들이 전한 얘기라고 해. 배에 돛을 펴고 그 돛에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넜던 시절부터 줄곧 바다의 남자들이 진지하게 믿었던 얘기야. 그게 어느샌가 하늘의 바다에서도 전해지게 된 거지.”

 

텅 빈 통로에 산시로의 목소리가 울린다.

 

“세이렌이란 건 바다에 사는 마물이야. 엄청 예쁜 목소리로 노래해서 배를 유인하고는 침몰시켜버린다는 전설이지. 외모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자라고 해. 그리고 여기까지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상세한 건 여러 패턴이 있는데 긴 머리를 하고 그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바위에 앉아 노래한다든지, 안개 속에서 이 목소리를 들은 배는 두 번 다시 안개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평생 방황한다든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혼이 동료를 부르고 있다든지. 인어라는 얘기도 있어.”

 

그치고는 드물게 말이 많은 산시로의 이야기를 카이는 말없이 듣고 있다. 카이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뭔가를 알아들으려고 하기라도 하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하늘로 보내는 산시로의 모습에 그만 끌려들어 가, 카이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평소에는 거의 신경 쓰이지 않게 된 배의 진동음이 묘하게 귀에 들어와서, 바다를 모르는 카이는 해명(海鳴)이란 게 이런 걸까 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이게 바다의 세이렌이야. 내가 말하는 하늘의 세이란이란 건 이것의 우주판인데, 나한테 이 얘기를 해준 화물선 영감님은 실제로 겪은 적이 있대. 별이 하나도 없는 성역을 날고 있는데 갑자기 묘한 통신이 들어와. 레이더에 비치지 않는 먼지가 선체에 닿아서 쿵 쿵 소리를 내. 몇 번 다시 입력해도 마치 뭔가에 끌려가듯이 진로를 바꿔버리는 배 얘기도 들었어. 그리고 아무리 조사해도 아무 데도 이상이 없는 거야.”

 

카이가 아니라 그들을 태운 쥘 베른에 얘기하듯이, 산시로는 표류하던 시선을 규칙적으로 깜박임을 되풀이하는 인터컴에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멍하니 녹색 불빛을 보고 있는 산시로의 모습에 바로 질문하기가 꺼려져서 카이는 말 없는 산시로에 맞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갑자기 고개를 든 산시로가 평소의 그로 돌아와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산드라도 아마 얘기 정도는 들은 적 있지 않을까. 내 설명으로 납득이 안 가면 그녀한테도 물어보도록 해.”

“쥘 베른의 궤도가 빗나가는 것도 그 세이렌 현상이라는?”

 

산시로가 내린 결론에 세이렌이라는 마물 전설에 끌려들어 갔던 카이가 정신을 차린다.

동시에 그에게 안고 있던 의심도 되살아났다. 자연히 목소리에 미심쩍음이 밴다.

 

“나도 이게 그렇다는 건 아니야. 들어본 얘기는 거의 과장이거나, 배나 크루 중 어느 쪽에 문제가 있었던 탓이라고 봐. 다만, 오랫동안 이런 장사를 하다 보면 이론이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란 게 확실히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법이야.”

 

자신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산시로는 멋쩍은 듯 빠르게 말한 뒤 다시 지나치게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묶는 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로맨티스트시네요.”

 

여전히 딱딱한 카이의 어조 속에 희미하게 실소가 섞인 걸 민감하게 알아듣고, 산시로가 뺨을 홍조 시킨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려 하지 않고 문득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뒤, 뒤로 올리고 있던 손을 뻗어 쥘 베른의 벽면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부드러운 오프화이트의 벽이 뜻밖의 맑은소리를 조용한 통로에 울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세이렌 탓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항행에 문제없을 정도의 이상이라면 상관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거야.

원인을 조사하려고 당직 시간을 늘려서 계속 작업하다 보면 아무리 해도 우리한테 피로가 쌓이게 돼. 쓸데없는 부하가 가해지고 여기저기 주물러지는 컴퓨터에도 부담일 테고. 그런 위험하고 디 메리트가 많은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난 생각하는데.”

“위험, 이라고요. 콘솔 안에 팔을 쑤셔 넣고 배선을 뜯어내거나 필요 없다면서 점검항목을 20종류나 빼먹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네요.”

 

카이의 말에 산시로가 웃음을 터뜨린다.

두 사람은 이 건으로 대대적인 언쟁을 했다. 어디까지나 매뉴얼에 따라 선내 총 점검을 주장하는 카이와 자신의 경험에 따라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항목을 점점 생략해 가는 산시로라서야, 그들 사이에 타협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덤벼들기 직전에 로드와 산드라가 뜯어말렸지만, 결국 이 건에 대해서는 아직 매듭을 짓지 못했다.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과 내가 생각하는 위험은 차이가 너무 커.”

 

카이의 빈정거림에 입가를 씩 올린 뒤, 산시로는 뜻밖에 그럴싸한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 손을 뒤로 돌려 머리를 묶은 뒤 전방을 향해 턱을 쑥 내민다. 산시로가 가리킨 곳에는 메인컴퓨터가 수납된 종합관리실 문이 조그맣게 보인다.

 

“애초에 100%인 기계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어. 완전하지 않아도 기계는 움직이고 기계에 완벽을 요구하는 것도 위험해. 아무리 고성능인 기계라도 그래봤자 인간이 만든 거니까.

원래 이 배의 메인 컴퓨터를 만든 것도 그 옛날의 머리 좋은 인간이야. 인간이 만든 것에 완벽한 것 따위 없어.”

“특이한 철학을 가지셨네요.”

 

산시로는 기계에 대해서 내치듯이 말했다. 그 서늘한 어조에, 카이는 산시로의 다른 면을 본 듯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 한번 눈앞에 선 검정 일색의 젊은 남자에게 시선을 쏟는다. 쾌활하고 성급하고 좋든 나쁘든 혈기가 왕성한, 머리로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움직이는 타입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철학? 그런 근사한 게 아니야. 당신이 싫어하는 경험이란 거지. 무엇보다 이 배가 탑재하고 있는 컴퓨터는 최첨단 학습능력이 딸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에 가까운 타입이잖아? 그러면 인간다운 실수도 하나쯤 하지 않을까?”

“기계를 의인화하는 건 위험해요.”

 

맥이 빠지는 가벼운 대답에 약간 흥미가 식어서 카이는 산시로와의 대화를 끝내려 했다. 이 이상 얘기해봤자 아무것도 얻을 게 없을 듯했고, 슬슬 산시로의 성질이 고개를 들 시점이다.

 

“의인화? 좀 다른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계는 어차피 기계고 아무리 우수해도 인간이 만든 거니까 인간다운 실수는 한다는 거야.”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뭐 상관없겠죠.”

 

콜드 슬립에서 깨어난 지 열흘이 지나려 하는데, 두 사람이 언쟁 이외에 이렇게 오래 이야기한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산시로에게 품고 있는 의심이 풀린 것도 아니고 세이렌 현상 같은 이야기는 허튼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할 만한 날카로움을 가졌다는 것을 안 것만 해도 산시로와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헛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카이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는 서서 이야기하는 것 하나에도 뭔가 이유를 대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그런 엄격하고 융통성 없는 언동이 산시로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는 것을 카이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이가 생각한 걸 민감하게 눈치챈 산시로가 카이를 보는 눈에 아주 약간 힘을 주었다. 입가에 띠고 있던 가벼운 미소에 비아냥의 색이 섞인다.

 

“기계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을 정도인데, 컴퓨터에게 차를 대접하거나 데이트를 신청하려 하지 않는 한 별로 상관없잖아.”

“―…하여간 다음 당직부터 컴퓨터 체크를 시작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주세요.”

 

산시로의 비아냥을 눈치 못 챈 척하고, 카이는 할 말만 한 뒤 산시로의 옆을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통로에 기대서 팔짱을 끼고 있던 산시로가 긴 다리를 쑥 내밀어서 카이를 가로막았다.

 

“당신, 성격만이 아니라 귀까지 안 좋은 모양이네. 아니면 내가 하는 말을 엉덩이로 듣기라도 하는 거야?”

 

산시로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짜증이 있었다. 턱을 당김으로써 신장 차가 있는 시선을 카이에게 맞추고 바이저에 감춰진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대개의 인간이 카이의 진한 바이저에 막혀 그의 시선을 포착하지 못한다. 산시로 또한 예외는 아니지만, 꼭 언쟁할 때만은 마치 보이는 것처럼 자신과 시선을 딱 맞춰와서 카이는 항상 놀라게 되었다――한 마디 한 마디를 새기는 것처럼 똑똑히 뱉어냈다.

 

“난 점검에는 반대야.”

“세이렌 현상, 말입니까? 그런 비과학적인 근거에는 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카이도 지지 않는다. 몸을 휙 반회전 시킨 뒤, 의연히 벽에 기댄 채 다리를 내밀고 있는 산시로와 마주 본다. 그리고 언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말에서 억양을 없앰으로써 자신의 짜증을 그에게 전했다.

좁은 통로에 마주 서서, 카이와 산시로는 잠깐 사이 무언으로 대치한다. 산시로의 뚜렷하게 새겨진 듯한 검은 눈동자와 카이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가 바이저 너머로 서로 노려보았다.

고집으로 맞서다 먼저 물러난 것은 뜻밖에도 산시로 쪽이었다. 덤벼들 듯한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크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 의의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당신은 이론이나 규칙이 아니면 만사를 생각할 수 없는 모양이네. 세이렌에 납득할 수 없으면 제대로 된 근거를 주지. 눈앞에 컨디션이 나쁜 사람이 있는 이상,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형식으로 점검하는 건 반대야.”

 

그답지도 않은 조용한 어조로 흘러나온 말은 카이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던 모양이다.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어깨가 움찔 흔들린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망연히 중얼거리던 카이의 어깨에 갑자기 산시로의 팔이 뻗어왔다. 믿기지 않게도, 눈앞에 서 있는데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던 자세에서 어깨를 붙잡혀 끌어당겨지기까지, 카이에게는 산시로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산시로는 거의 움직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카이를 끌어당긴 뒤, 한쪽 손으로 어깨를 부둥키는 것처럼 해서 카이의 자유를 빼앗고 다른 한손을 그의 머리에 둘렀다. 너무나도 재빨라서 카이가 저항하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등 뒤로 그의 이마에 손을 둘러 자기 어깨에 대게 한 채, 완전히 카이의 몸을 수중에 넣어버렸다.

이마에 대어져 있던 손가락이 카이의 뺨을 쓰다듬고 머리카락 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왔다. 머리카락을 가르고 긴 목덜미를 쓸어올린 손가락은 귀 뒤에서 멈춘다.

 

“역시나.”

“놔, 놔!”

 

산시로의 침착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재빠른 동작에 그대로 붙잡힌 카이를 정신 차리게 했다. 몸의 자유를 되찾으려고 팔 안에서 발버둥 치지만, 그리 힘을 준 것 같지 않은 산시로의 팔은 어렵지 않게 카이의 저항을 억눌렀다. 언뜻 보아 그리 체격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호리호리한 산시로였지만, 힘의 차이는 역력했다.

 

“당신이 말을 안 해서 나도 굳이 묻지 않았는데, 일어난 뒤로 지금까지 계속 열이 났지?”

 

산시로의 어이 없어 하는 목소리에 카이의 저항이 한층 거세진다. 산시로의 맨살 감촉에 몸을 긴장시키고, 뜻대로 되지 않는 손을 들어 산시로의 팔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격하게 몸부림치는 바람에 벗겨진 바이저가 그들의 발치로 떨어져서 금속음을 울렸다.

한편 카이를 단단히 부둥켜안은 산시로는 이마로 그의 높은 열을 확인하고, 뒤이어 귀 뒤로 빠른 맥박을 확인한 듯하다.

 

“당신은 내 눈이 무슨 단춧구멍인 줄 알아? 콜드 슬립은 처음이었지? 처음일 때는 급격한 신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서 자율신경이 망가져 버려. 밥도 거의 못 먹은 모양이고, 열이 이렇게 나서야 서 있기도 힘들겠지. 이런 상태로 나한테 덤벼든 정신력에는 탄복했지만, 이제 슬슬 한계잖아?”

“놔주세요.”

“거봐, 조금 날뛴 정도로 숨이 가빠졌지. 이러면서 근무시간을 연장해서 일하겠다는 거야?”

“놔!”

 

카이의 저항에는 동요하지 않았던 산시로이지만, 그에게 처음으로 언성을 높인 카이의 기백에 놀라 그를 구속하고 있던 팔에서 힘을 뺐다. 그 팔에서 스르르 빠져나온 카이는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쉬었다. 가쁜 호흡을 숨기지도 못한 채 무릎을 휘청인 카이에 저도 모르게 팔을 내밀 뻔한 산시로를, 거의 은색에 가까운 카이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제지했다.

 

“……나한테 손대지 마……!”

 

바로 정면에서 그를 본 컬라이더스코프 아이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산시로를 묘하게 숨 막히게 했다. 격정을 일렁이며 미묘하게 색을 바꾸는 카이의 눈은 평소의 차갑고 새침한 표정 아래의 격한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눈 안쪽에서 빛나는 파란 인광은 원래라면 그런 것에 무감동한 산시로를 망연히 홀리게 했다.

 

“――이제 알겠지? 업무를 늘리는 건 당분간 무리야.”

 

어색하게 헛기침을 되풀이한 뒤 목에 걸리는 말을 겨우 밀어낸 산시로는 세차게 고개를 저어 카이로부터 시선을 떼어냈다.

카이 쪽은 산시로에게 지적받음으로써, 몸의 부조를 계속 누르고 있던 신경의 실이 단숨에 끊어진 모양이다. 산시로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괴로운 듯한 숨을 쉬며 눈을 감고 있다.

 

“당신이 한 짓은 규칙 위반이야. 콜드 슬립에서 오는 몸의 부조는 업무에 지장을 주기 전에 버디에게 신청해서 해야 할 휴양을 취한다는 게 당신이 그리 좋아하는 규칙일 텐데.”

 

잠시 사이를 두고 평소의 자신을 되찾은 산시로는 통로 벽에 축 기대 있는 카이를 약간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다. 고열이 있으면서 지적받을 때까지 그걸 계속 감춰온 카이의 태도에 잊고 있던 짜증이 솟구쳤다.

 

“난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았어.”

 

괴로운 듯이 숨을 헐떡이며,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우기는 카이에 기가 막히면서도 짜증이 심해진다.

그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인간이 싫었다. 용병이라는 직업상 충성심이 없는 산시로에게 임무라는 건 거기에 걸맞은 대가를 초래하는 업무에 지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도 걸지만, 지금의 카이처럼 수지에 안 맞게 무리하는 건 완전히 헛수고로 생각되었다.

덧붙여서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인간은 타인의 목숨도 경시한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하지만 앞으로도 그렇다고는 할 수 없잖아? 고작 네 명이 움직이는 배야. 한 명의 스트레스는 머지않아 모두에게 여파가 오는 법이라고.”

 

웬일로 산시로가 완전히 정론대로 말해서, 반론할 수가 없는 카이는 눈을 감은 채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편 산시로는 내심 초조해서 자연히 말이 독해진다.

 

“규칙을 휘두르는가 싶더니 말도 안 되는 무리를 하고. 다음 행동을 읽을 수 없는 놈이네.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난 자기를 소중히 하지 않는 놈을 싫어하고, 마조 기가 있는 히로이즘을 상대해줄 정도로 무르지도 않아.”

 

말하면서 몸을 숙여 카이를 끌어안는 찰나에 바닥에 떨어진 상의를 줍는다. 그 움직임에 몸을 움찔한 카이에 개의치 않고, 그의 발치에 구르는 바이저에도 손을 뻗었다.

 

“잘 들어, 어차피 내가 이렇게 하라고 해봤자 순순히 안 들을 테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중에서 당신이 골라. 먼저 스스로 의무실에 가서 얌전히 치료를 받는다. 다른 하나는 나한테 급소 지르기를 먹고 의무실에 처넣어진다. 자, 어느 쪽을 택할래?”

 

일어나서 말없이 몸을 굳히고 있는 카이에게 한 걸음 다가선다.

 

“말해두겠는데 안아 들 줄 알지 마. 어깨에 둘러메고 짐처럼 다룰 테니까.”

 

당장이라도 손을 뻗을 것 같은 산시로를 날카롭게 흘긋 보고 카이는 녹초가 되어 벽에 기대 있던 몸을 일으켰다.

 

“――제 방에서 쉬겠습니다.”

“의무실에는 안 갈 셈이야?”

“의료용 컴퓨터 조작 자격도 있고, 이미 진단했습니다.”

“뭐라고?!”

 

진단 결과를 알고 있다는 카이의 말에 산시로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면 자신이 부조인 이유도, 어떻게 하면 나을지도 알면서 계속 무리했다는 게 된다.

 

“결과는 40시간 안정이었습니다.”

“약은 어쨌어? 컴퓨터 조작은 할 수 있어도 환자 본인이 조합하면 메디컬 키트가 반응하지 않을 텐데.”

“필요 없습니다. 체질적으로 약품이 잘 안 들어서.”

 

산시로는 눈앞에 등줄기를 펴고 선 미청년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다시 보았다.

얼굴의 대부분을 덮는 바이저에 감춰져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카이의 안색은 창백에 가깝다. 도기처럼 매끄럽고 차가운 인상이 있는 피부는 산시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뜨거웠다. 귀 뒤에 댄 손가락을 통해 맥동이 빠른 것도 알고 있다.

산시로는 카이가 그렇게까지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좀전까지 느꼈던 화는 자신과는 완전히 상충하는 카이에 대한 섬뜩함으로 변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마치 보기 드문 생물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컬라이더스코프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 그와 마주 보고 서 있던 카이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산시로에게 붙들렸을 때 흐트러진 의복을 가다듬은 뒤 훌쩍 걷기 시작했다.

 

“혼자 걸을 수 있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한 산시로에에 카이가 말한다. 부드러운 허스키에 고통의 빛은 없다. 산시로에게 부조를 들켜서 한 번은 무너진 자제를 카이는 다시 찾은 모양이다.

 

“안심해. 부축해주지 않을 거니까. 알겠어?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거라면 난 이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다만 이것만은 지켜줘야겠어.”

 

창백한 안색과 고열로 달아오른 몸을 알고 있는 산시로에게 카이의 강렬한 자제심은 신기하기만 하다. 카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추측하는 걸 깨끗이 포기하고, 산시로는 되도록 사무적으로 일을 진척시키기로 결심했다. 이 이상 관련되면 속이 타서 때려버릴 것 같아서이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 상대로 손은 들고 싶지 않았다.

 

“다음이랑 그다음 당직은 나오지 마. 40시간 후의 진단서는 보여주도록 해. 그리고 식사는 내가 갖다줄 테니 내 눈앞에서 먹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을 믿을 정도로 난 당신을 신용하지 않아. 잘 들어, 아까도 말했지만 난 자기를 소중히 하지 않는 사람이 싫고 그런 놈 뒤치다꺼리를 해줄 정도로 친절하지도 않아. 당신이 스스로 자기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그걸 잊지 마.”

 

고개를 홱 든 카이의 눈이 산시로의 난폭한 말에 마치 금속처럼 경질적으로 빛난다.

그런가, 컬라이더스코프 아이는 열 받으면 빨갛게 빛나는 건가. 빛에 따라 색이 변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감정에 따라서도 이렇게 화려하게 변화할 줄은 몰랐던 산시로는 입술을 깨물고 노려보는 카이의 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센 카이에게 쏘아붙인 그 말이 카이를 얼마나 상처입힐지 알고 있어도 그걸 배려해줄 마음은 지금의 산시로에게는 없다. 그가 하는 말이 옳다는 건 카이 본인도 알고 있을 테고, 자신의 몸을 들들 볶듯이 계속 무리하는 카이에게 상냥하게 말해줄 기분도 들지 않았다.

 

“나한테 이런 소릴 듣는 게 분하면 빨리 낫도록 해.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려 하지 마.”

 

퉁명스러운 산시로의 말에 카이의 눈길이 휙 돌려진다.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시선을 떨구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카이의 눈동자에서는 어느샌가 붉은 기가 사라지고 가라앉은 은색이 미묘하게 색을 바꾸면서 발치를 바라보고 있다.

 

“어, 몰라도 돼. 난 내 몸이 귀하고 정규 군인도 아니니 근무 사정을 염려해서 치료도 안 받고 노력할 일도 없어. 돈만 받을 수 있으면 그걸로 다 된 속 편한 몸이니까.”

 

이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거주 블록으로 들어가 대부분 사용되지 않고 있는 사관용 객실 문 중 하나 앞에서 카이가 멈춰 섰다. 여기가 카이의 방인 듯하다. 덩달아 멈춰 선 산시로 쪽으로 몸을 돌리고, 창백한 안색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이성적인 표정으로 산시로를 올려다 본다.

 

“컴퓨터 점검 건 말입니다만.”

“당신, 아직도 그런 소릴 해?”

 

좀전의 난리는 완전히 없었던 듯한 카이의 어조에 산시로가 얼빠진 소리를 질렀다. 정말 질렸다는 듯이 과장되게 얼굴을 찌푸려 보인다. 하지만 그런 산시로의 제스처를 완전히 무시하고 카이는 지극히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제 부조로 문제를 돌려버리셨지만, 저는 당신의 설명에는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둘이 아무리 언쟁해봤자 평행선일 뿐입니다. 로드와 산드라를 당신의 설명으로 납득시킬 수 있다면 전 일단 물러나도록 하죠. 하지만 다시 한번 궤도가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그때는――”

“알았어. 밤샘이든 뭐든 해서 당신이랑 같이 해줄게.”

 

고집을 부리는 것도 이쯤 되면 대단하다 싶어서 항복하는 증거로 두 손을 들어 보인 산시로에게 카이가 손을 내민다.

 

“바이저를.”

 

산시로는 벗어둔 상의와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바이저와 카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당신…….”

“카이입니다.”

 

손을 뻗은 카이에게서 별안간 바이저를 뒤로 빼고, 산시로는 짜증 섞인 쓴웃음으로 뺨을 일그러뜨렸다. 끌어올린 입가로 남보다 긴 송곳니가 들여다보인다.

 

“제대로 얼굴 보고 얘기도 못하는 놈을 이름으로 부를 생각은 없어.”

 

말없이 올려다보는 카이의 눈이 번뜩 빨간 별을 밝혔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카이가 산시로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서서, 심할 정도로 반듯한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 두 팔을 그에게 가볍게 뻗는다. 마치 춤이라도 추는 듯한 카이의 손동작에 반쯤 넋을 잃고,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싶기도 해서 움직이지 않고 있던 산시로의 목에 그 손이 스르르 감겨 들어왔다.

산시로의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가르고 목덜미에 가는 손가락이 파고든다. 머리카락에 숨겨진 목덜미를 찾아낸 손가락에 약간 힘이 들어가고, 카이의 얼굴이 좀 더 가까워졌다.

우미한 미소를 그리고 있는 입술과는 대조적으로 황홀하게 가늘어진 카이의 눈이 전혀 웃지 않고 있는 것, 코앞에서 본 컬라이드스코프 아이가 격정을 드러내는 붉은 빛을 더해서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빛나고 있는 걸 산시로가 눈치챈 순간――.

 

“우왓.”

 

산시로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장신을 휘청댔다.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없이 몸이 멋대로 튀어 올라 카이가 서 있는 것과는 반대쪽 벽에 등부터 내동댕이쳐졌다. 몸에 고압 전류가 흐른 듯한 충격이 와서 일순 눈앞이 어두워진다.

 

“크윽…….”

 

낮게 신음하고 벽에 등을 댄 채 그대로 주르르 통로에 주저앉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랐지만, 타는 듯한 격통의 근원은 카이가 팔을 둘렀던 목 주변인 듯하다.

지독한 현기증으로 공기를 잘 들이쉴 수가 없다.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멈춘 채 아픔을 누르고 있던 산시로는 다가오는 인영에 흐려진 눈을 밀어 올렸다. 카이다.

카이는 우미한 동작으로 몸을 숙여 산시로가 저도 모르게 떨어뜨린 바이저를 주워든 뒤, 숨이 끊어질 듯이 그를 보는 산시로를 흘긋 보고는 입가에 희미하게 못된 미소를 띠었다.

 

“기절하지 않다니 과연 대단하네요. 용병은 단련된 정도가 일반인과는 다른 모양이지.”

 

그렇기 말한 뒤 고통에 목소리도 안 나오는 산시로를 통로에 남기고, 카이는 자기 방의 잠금을 해제했다.

 

“한동안 얌전히 있으면 아픔은 가실 겁니다. 평형감각이 망가졌을 테니 무리하게 서려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테죠.”

 

이런 상황에서는 비아냥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경어를 부드럽게 스러지는 허스키 보이스로 입에 담은 뒤, 카이의 모습은 문 너머로 사라져갔다.

카이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아픔과 현기증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산시로는 카이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통로에 웅크린 채 꼼짝도 못했다.

이를 악물고 머리를 흔든 뒤 벽에 기대다시피 해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한동안 지난 뒤이다.

 

“……아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저 녀석은.”

 

휘청대는 몸을 벽에 댄 팔로 지지하고 아픈 목덜미를 만져본다. 날카로운 바늘이 꽂히고 거기서 전류가 흘러온 듯한 아픔이었지만, 만져본 목덜미에는 아무 상처도 없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듯했고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몰랐지만, 아픔도 현기증도 강렬한 것이었다. 카이도 말했듯이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격통이다. 카이의 호리호리한 섬세한 자태에 방심했던 산시로에게 그건 강렬한 보복이었다.

 

“겁나는 녀석…….”

 

풀려버린 머리카락을 난폭하게 쓸어올리고 카이가 사라진 문을 노려본다. 우미한 자태와 은근한 건방짐에 가까운 완벽한 경어에 걸맞지 않게 무섭도록 급하고 과격한 카이의 성격에, ――카이가 들으면 자기는 어떻고라며 눈을 부릅뜰 것 같지만――터무니없는 파트너와 짝지어진 자신의 불운에 날카롭게 혀를 찼다.

어휴 하고 크게 고개를 저은 산시로는 팔다리를 신중하게 움직여 아픔도 현기증도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뒤, 좀 더 안쪽에 있는 자기 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문득 껴안아 본 카이 몸의 감촉을 떠올린다.

옷을 입으면 더 말라 보이는 건지, 팔에 꽉 껴안은 카이는 생각보다 훨씬 탄탄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골격은 가늘고, 나긋한 동작이나 매끄러운 피부는 청년이라기보다 소년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지만, 그의 팔 안에서 도망치려고 안달하는 힘이나 신체 밸런스는 틀림없이 동년대 남자의 것이었다.

남녀 불문 대단히 아름답고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어느 쪽이나 포로로 만들어버린다는 루난의 소문이 머리에 있었던 탓인지 심신 모두 연약한 여성적인 남자를 상상했던 산시로에게 있어 카이는 완전히 사정이 다른 존재였다.

거칠게 자라 그대로 용병 같은 위험한 일을 하게 된 산시로는 『아름답다』, 『예쁘다』라는 단어가 남자에게 통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미인=여자라고 아무 망설임도 없이 믿고 있던 산시로는 이 형용사가 어울리는 남자란 곧 여성적이라고 지극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성격은 터무니없지만――아무래도 여성적이 아닌 『예쁜』 남자라는 게 존재하는 모양이라고 카이를 보고 인식을 바로잡지 않을 수 없게 된 듯하다.

라고, 그럴듯한 생각을 하면서 자기 방 앞에 서서 방문을 열기 위해 손바닥을 센서에 대다가 (그들 방의 잠금장치는 그 방 소유주의 지문을 기억하고, 그걸 센서에 댐으로써 문을 개폐하게 되어 있다), 문득 그 손을 바라보았다.

옷을 통해서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는 고열에 들뜬 몸, 얇은 가슴을 통해 느낀 빠른 고동. 빈틈없이 껴입은 슈트 옷깃에서 올라온 희미한 체취.

펼치고 있던 손을 꽉 움켜쥐고 손바닥에 남은 카이 몸의 감촉을 덧그려본다. 그리고 값비싼 도기를 연상시키는 매끄러운 뺨에 떠오른 엷은 웃음과 눈동자 속의 빨간 불꽃까지도.

그 뒤에 어떤 꼴을 당했는지를 깨끗이 잊고 입술을 씩 끌어올린 뒤, 그다지 품위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웃음을 띤 산시로는 다시 문 센서에 손을 대면서 되풀이한다.

 

“겁나는 녀석.”

 

희미한 기계음과 함께 열린 문 너머로 발을 들이며, 카이가 들으면 필시 눈을 빨갛게 불태울 말을 불쑥 중얼거렸다.

 

“그래도 안는 맛은 나쁘지 않네.”

 

산시로라는 남자는 좀체 질리지 않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청의 궤적 上 - 4. 엠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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