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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궤적 上
쿠노 치아키
2.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즈
이 시대, 인류는 이미 지구만을 생존 지역으로 삼지 않고 있었다.
워프 항법이 발명되자 처음엔 극히 한정된 인간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고, 이어서 다수의 인간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인류는 제2의 대항해시대를 맞아 수많은 혹성에 그 족적을 남겨갔다.
그 옛날 유럽에서 출발한 단 한척의 배가 아메리카 대륙에 표착한 이후 그 시대 최대의 마천루를 지었듯이, 사람들은 모험가가 남긴 조그만 발자취를 되짚고 그걸 따른 자들이 조금씩 발판을 다져 도착한 별들에 제2, 제3의 마천루를 지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대에서 우주 비행은 모험가의 손을 떠나 목숨을 건 결사행이 아니게 되어갔다.
불타는 개척정신을 갖고 태양계 밖의 혹성에 살게 된 사람들은 몇 대나 세대교체를 거듭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있어 모성(母星)이란 이미 지구가 아니게 되었다.
혹성 출신의 아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별의 기후 풍토에 맞춰 자신들의 몸을 바꿔갔다. 은하계 구석에 있는 태양계 제3 혹성의 바다에서 발생한 직립 이족보행의 생물은 조금씩 적응해간 것이다.
멀쑥하게 가늘고 긴, 저중력 별에 태어난 자도 있다. 밤이 긴 별의 인간은 고양이 같은 동공을 가졌다. 감각기관 중 하나로 머리 부분에 뿔이 있는 자도 있었고 귀나 꼬리가 생겨난 별의 인간도 있었다.
기본적인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지만, 피부색이나 팔다리 밸런스의 변화 같은 육체적 변화부터 옛날에는 초능력이라고 불렸던 힘을 다루거나 희로애락 표현 차이나 감각 변화 같은 정신적인 부분까지, 인류라 불리는 자들의 폭은 넓어졌다.
그런 다채로운 인종 중 하나에 루난(月人)이 있다. 인류가 처음에 식민을 개시한 게 지구 유일의 위성인 달이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달 표면에 거대한 돔을 만들고 인공 공기를 순환시키며 사람들은 달의 메마른 지표에 뿌리를 내렸다.
광물자원의 채굴이 목적이었던 달도 달리 유망한 별이 발견되고 거기서 광물이 대량 운반되게 되자 금세 당초의 의의를 잃어버렸다. 질량이 작고 이렇다 할 특산물이 없는 달은 눈 깜짝할 사이에 유사 지구화해서 현재는 군사적, 경제적 거점이라는 얼굴과 고급 별장지로서의 일대 환락지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갖게 되었다.
다른 혹성에 비하면 거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달도, 이주한 세월이 가장 긴 탓인지 거기서 나고 자란 인간에게 루난이라고 불릴 만한 변화를 초래했다.
그건 달에 인간이 산다는 걸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시대부터 일컬어진 말이지만, 확실히 달에는 사람의 이성을 미치게 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었던 모양이다.
루난의 성격은 그야말로 루나틱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향락적이고 쾌락을 탐닉하는 것에 아무 저항도 없었다. 인사 대신에 섹스한다고 일컬어지고, 그게 어떤 형태이든 어떤 조합이든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전혀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인종이라 일컬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구사해 즐기는 것에 대한 전문가로, 루난과 쾌락주의자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루난에게는 지구인을 포함한 다른 별 인간의 대부분이 가진 성적인 도덕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외견적으로는 지구인과 거의 다름없었지만, 달 돔의 중력은 지구의 0.7~0.8밖에 안 되기에 전체적으로 가냘프고 슬림한 체형을 하고 있다. 루난이 남자나 여자나 모두 아름다운 것은 일찍이 알려져 있고, 그 섬세한 자태와 분방한 성격의 언밸런스가 루난을 한층 색달라 보이게 했다.
그들의 감각은 실로 예민해서 접촉을 통해 다른 인간의 감정이나 감각을 읽어내고 감정이입이 가능한 엠파스(Empath) 능력을 가진 자도 있었다. (엠파스란 상대의 감정이나 감각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능력으로, 사고를 읽어내는 텔레파스와는 다르다)
루난은 평균적으로 높은 지능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흥미를 느낀 것에밖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 이외의 것에 시간을 뺏기는 걸 싫어했다. 그 때문에 예술, 문학 등에 특이한 재능을 보이는 자는 많았지만, 정치, 경제 등의 실제적인 것에는 놀랍도록 무관심했다.
루난의 소문은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실은 순수한 루난을 본 자는 별로 없다. 달에 사는 자라도 순수한 루난을 볼 기회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달은 그 거리 때문에 지구와의 연결이 깊고 루난이라 불리는 자의 대부분이 지구인과의 혼혈이었으므로 순수한 루난은 극히 적어진 것이다.
그럼 성질이나 외견이 순수한 루난하고 그리 다르지 않은 혼혈인들과 지금은 희소 인종이 되어버린 순수한 루난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그것은 대단히 간단했는데, 그들 사이에는 외견상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순수한 루난만이 만화경 눈동자를 가졌다는 것이다.
컬라이더스코프. 가늘고 긴 통 속에 끼워진 거울과 여러 장의 자잘한 유리 조각이 통을 돌릴 때마다 만들어내는 여러 색과 모양의 신기함을 즐기는 작은 장난감이다. 그것은 마법처럼 변화하는 아름답고 섬세한 색조 때문에, 기계화 문명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 시대에조차 살아남아 존재하고 있었다.
단순한 만듦새이지만, 정교한 장난감에 지지 않고 사람의 눈을 홀리는 작은 예술품. 만화경.
루난의 홍채는 그 컬라이더스코프와 대단히 비슷했다.
그들의 홍채는 그 눈이 비춘 것에 따라 미묘하게 색을 바꾸고, 꼭 만화경 속에서 불가사의한 색과 모양을 만들어내는 투과성의 색유리처럼 변덕스럽게 난반사했다.
아름답고 종잡을 수 없고 여러 색조로 변화하는 루난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즈는 그걸 본 자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방 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투명감이 있는데도 어딘가 요염한 그 반짝임은 그대로 루난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좀처럼 볼 수 없는 순수한 루난이 산시로 일행 앞에 있었다.
“과연, 그래서 바이저를 벗고 싶어 하지 않은 건가…….”
망연히 카이의 눈동자를 주시하던 로드가 시선을 떼어낸 뒤 낮게 중얼거렸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여자다운 대항 의식을 살짝 드러내며 산드라는 카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됐습니까?”
딱히 누굴 향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말한 뒤 카이는 손에 들고 있던 바이저를 조용히 다시 썼다.
바이저를 벗을 때까지는 주저했지만, 그걸 벗은 뒤의 카이는 침착했다. 그는 모두의 얼굴을 대충 둘러보고 벽의 한점에 시선을 고정한 뒤, 만들어진 것처럼 반듯한 옆모습을 보인 채 표정을 바꾸지 않고 서 있었다.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고 자신을 보는 세 명의 시선에도 중얼대는 말에도 그 얼음 같은 표정은 움직이지 않는다.
카이가 바이저를 씀으로써 다른 세 명은 짜기라도 한 듯이 어깨의 힘을 뺐다. 완고한 카이의 태도 그대로, 브릿지의 밝은 조명을 받아 크리스털 글라스처럼 경질적인 반짝임을 보이던 눈동자의 주박에 취하다시피 한 것이다.
“컬라이더스코프 아이, 라……. 한번은 보고 싶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줄곧 말이 없었던 산시로가 겨우 입을 뗐다. 그 으르렁대는 듯한 중얼거림에 희미한 짜증이 섞여 있는 것을 눈치챈 산드라가 그의 기분을 전환하듯이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고 보니 깨어났을 때 왜 눈치 못 챈 거야?”
“실내조명 광량이 엄청 낮춰져 있어서 좀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몰라봤어. 게다가 난 위에서 아래까지 시커머니까 날 봐봤자 눈동자 색에는 크게 변화도 없고. 무엇보다 이런 곳에 달의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잖아.”
도전적인 산시로의 말에 몸을 숙이고 콘솔 조작을 확인하던 카이의 등이 희미하게 굳는다. 이 이상 사태를 험악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로드가 그 큰 몸을 카이와 산시로 사이에 밀어 넣었다.
“산시로 군……, 이랬지. 그나저나 아까 그 사고처리 방법은 재미있는걸. 산드라가 비명을 지르고 일순 브릿지 조명이 어두워졌나 싶더니, 지금껏 엉망진창으로 표시되던 컴퓨터가 정상으로 움직였어.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거지?”
팔짱을 끼고 로드의 넓은 어깨너머로 완전히 감춰져 버린 카이의 모습을 계속 노려보는 산시로는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는다. 아직도 작은 불꽃이 올라오는 패널 속을 들여다보던 산드라가 감탄한 듯이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들었다.
“서브 컴퓨터랑 거기 딸린 시스템으로 가는 에너지 접속 회로를 끊어버린 거네. 놀라워. 서브 컴퓨터에 대한 접속을 끊음으로써 에너지를 전부 메인 시스템 쪽으로 돌리고 메인 컴퓨터의 출력을 올리게 하다니. 이런 방식, 매뉴얼 어디를 찾아봐도 안 쓰여 있어.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딱히 배운 건 아니야. 어릴 때부터 기계를 만지다 보면 이런 방법도 떠오르는 법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한 산시로를 보고 산드라와 로드가 재빨리 시선을 맞췄다.
“저기, 산시로? 당신 어느 사관학교를 나왔어? 이 임무에 착수하기 전의 소속부문은?”
산드라가 살피는 듯한 시선을 산시로에게 향한다. 거기에 산시로는 극히 시원스럽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난 군인이 아니야. 이 배에 타려고 항공 우주국에 불려가기 전에는 해왕성의 트리톤과 네레이드 사이에서 민간 광물 운반선 호위로 고용돼 있었고, 그전에는 콜로니 Γ-15의 반란군을 진압하러 갔었어.”
로드와 산드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기는 상관없다는 듯이 컨트롤 패널을 조사하던 카이도 몸을 일으켜 산시로 쪽을 향하고 있었다.
“군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방금 반란군을 진압했다고……, 민간선 호위라고?”
로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식으로 미간을 찌푸린다. 산드라는 회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검정 일색의 산시로가 서 있는 모습을 위부터 아래까지 뜯어보았다.
“그렇다면 당신, 용병……?”
윤기 있는 흑발을 쓸어올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가죽끈으로 아무렇게나 하나로 묶은 뒤, 산시로가 씩 웃었다.
“맞아.”
그 매서운 엷은 웃음과 방금 알게 된 산시로의 경력에 이번엔 카이를 포함한 세 명이 숨을 삼킬 차례였다.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우주선의 무관은 대부분의 경우 사관학교 출신으로, 거기서 배의 전문지식을 익힌 자가 담당하게 되어 있었다. 그게 버디 제도를 취한 콜드 슬립선이라면 더 그렇다. 기밀 덩어리 같은 최신예선을 민간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거의 없었고, 그 조작 방법을 아는 인간도 전문으로 배운 군인 이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용병 출신이라도 워프 항법 특A 자격을 딴 자는 버디 요원으로 등록돼. 연방의 규칙을 당신들이 모르는 건 아니겠지?”
산시로의 말에 로드와 산드라가 얼굴을 마주 본다.
“제도가 있긴 했지만…….”
“내가 아는 한 사관 이외의 인간이 이 타입의 배에 크루로 채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헤에, 그럼 내가 제1호란 건가, 영광인걸. 기술자로서 우수하면 책상에 매달려 공부한 놈들이랑 나 같은 인간을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거잖아. 항공우주국의 고지식한 윗분들도 제법 말이 통하네.”
“그럴까요.”
과장되게 눈썹을 올리고 익살맞게 고개를 으쓱해 보인 산시로를 향해, 로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말이 없었던 카이다.
“무슨 뜻이야?”
되묻는 산시로의 목소리가 험해진다. 바이저에 가려 카이가 어떤 얼굴로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려보는 듯한 산시로의 시선에도 카이의 억양이 거의 없는 목소리는 동요하지 않는다.
“서브 시스템의 배선을 뜯어낸 것 말입니다. 확실히 속효성은 있지만, 다음 조작을 생각하면 위험이 너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긴 시뮬레이터 테스트에서 이러면 낙제 감이겠지만…….”
이쪽은 타당한 방법을 취해 무관이 된 산드라.
“실제로 배는 살아났잖아. 당신이 좋아하는 매뉴얼대로 서브 시스템 접속 스위치를 하나씩 끊었으면 지금쯤 컴퓨터 중 반은 맛이 갔을 거라고!”
눈썹을 치켜올리고 단언하는 산시로에게 카이도 지지 않는다. 유일하게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고운 입술 끝을 희미하게 올리고, 격분하는 산시로에게 냉소로 답했다.
“매뉴얼에 없다는 건 그만큼 디 메리트가 크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지금 서브 컴퓨터를 끊어버린 탓에 현재 위치를 모르게 됐어요. 재계산에 걸리는 시간은…….”
차분한 카이의 말에 애써 짜증을 누르고 있던 산시로가 결국 폭발했다.
“당신 바보야? 죽어버리면 현재 위치고 개똥이고 없다고! 섹스를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불어터진 루난의 사전에는 목숨이 제일이라는 말도 없나 보지?!”
“용병 출신인 무관님 사전에는 허둥대는 거지는 동냥이 적다는 말도 없습니까?”
“재미있는 소릴 하네…….”
“이봐, 좀.”
다시 끼어드려 한 로드를 제치고 산시로가 카이 앞으로 몸을 불쑥 내밀었다. 약간 몸을 굳히긴 했지만, 카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험악하게 주고 받는 만담도 꽤 재미있네.”
눈을 번뜩이며 카이를 노려다보는 산시로와 표정을 전혀 알 수 없는 카이. 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손을 못 대고 있는 로드라는 긴장된 상황에, 산드라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에 독기가 빠져 긴장을 푼 산시로에게 성큼성큼 다가서서 자기보다 머리 하나 더 큰 그의 얼굴로 손을 뻗어 그 뺨을 스르르 쓰다듬었다.
“――!”
“더 보고 있고 싶지만, 지금은 곤란해. 내 당직 시간에 소동을 일으키지 마.”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산시로의 팔에 자기 팔을 감고 그대로 문밖으로 걸어 나간다. 덩달아 걷기 시작한 산시로를 향해 산뜻하게 윙크 한 번.
“덱(deck)에서 밖이라도 보고 있어 줘. 진정되면 다시 자기소개하기로 해.”
그렇게 말하면서 산시로만 브릿지 밖으로 밀어내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산시로를 향해 생긋 웃은 뒤 그의 눈앞에서 문을 탁 닫고 외측에서는 열리지 않도록 잠가버렸다.
“훌륭해!”
피곤하다는 얼굴로 돌아본 산드라에게 완전히 감탄한 로드가 칭찬한다.
“맹수 조련에 재능이 있네요.”
남 일 같은 카이의 말투에 산드라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무슨 소리야. 원래 같으면 이건 당신이 할 일이잖아. 정말이지 나도 수많은 버디를 봐왔지만, 처음부터 시비조인 버디는 처음이야.”
“전 용병과 루난의 조합도 이색적이지.”
“버디가 아닙니다.”
얘기하면서 작업을 재개한 산드라와 로드가 카이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버디가 아니라고?”
“무슨 뜻이야?”
눈살을 찌푸리고 자신을 보는 둘을 향해 카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을 잇는다.
“조합에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는 저를 원하지 않습니다.”
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만 말한 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얼굴을 마주보는 산드라와 로드에는 아랑곳 않고 카이는 분주히 컴퓨터를 조작하는 데에 몰두해 갔다.
카이가 산시로를 발견한 것은 밖이 보이는 쥘 베른의 측면 덱이었다.
원래는 밖의 경치, 다시 말해 우주 공간이 보이는 레크리에이션 덱으로 만들어진 듯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는지 여기에도 잡다한 기계가 옮겨져 있었다. 산시로는 덱의 반을 차지하는 포장된 상태의 기계류 중 하나에 드러누워 밖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그들의 여행 목적과 그들이 탄 우주선 쥘 베른 그리고 크루에 대한 개요를 간단히 설명해두자.
그들의 여행 목적은 ∑-23이 콜로니로 사용 가능한지 아닌지 조사하는 것으로, 식민 전 단계에 과학자 중심으로 조직된 조사단을 무사히 ∑-23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대략 23광년. 아광속과 워프를 되풀이해서 편도 약 3년의 도정이다.
최신예 기재를 가득 싣고 우수한 과학자를 다수 태운 혹성연방이 자랑하는 광속선을 조종하도록 승선한 크루는 12명. 그중 실제로 임무에 들어가는 인원은 겨우 4명이다.
12명의 크루는 지구 시간으로 1년씩 3교대 당직근무를 맡는다. 남은 크루는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콜드 슬립 처치에 의해 잠든 채 자신이 임무에 들어가기까지를 지내도록 전환되어 있었다.
순양함급 규모와 장비를 갖고 통상 50명 이상의 크루를 필요로 하는 우주선 쥘 베른을 왜 그런 소인수로 항행시키는가.
그건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 식료, 공기 및 생활에 필요한 동력을 필요 최소한으로 억눌러야만 하는 데에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것은 딥 스페이스로 주변에 기항할 수 있는 혹성도 물자를 보급할 우주정거장도 없다. 한 번 날아오르면 목적지까지 한 번도 보급받을 수 없는 것이다.
물자, 인원 보급이 대단히 어려운 동시에 거의 미답사인 성역을 고속으로 항행하기 위해서는 우주선의 철저한 기계화와 생력화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쥘 베른은 크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생명유지에 필요한 동력, 물자를 절약해서 통상이라면 크루의 거주공간으로 사용되는 부분까지 물자의 격납고나 컴퓨터 설치장소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인간의 손에 의해 관리될 수많은 기계를 가능한 한 컴퓨터에 관리시키고 크루는 브릿지에서 컴퓨터를 조작하게 만들어져 있다.
당연히 크루는 혼자서 몇 가지 역할이나 해내야만 하고, 고도로 기계화된 배를 조종하기 위해 통상의 운항기술과는 별도로 컴퓨터에도 밝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직이 되는 네 명의 크루는 기본적으로는 2인 1조를 한 단위로 근무하고 모든 면에서 서로 도우며 거대한 우주선을 목적지까지 항행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버디라 불리는 2인 1조의 크루이다. ――
“어땠어?”
발소리를 내지 않고 미끄러지듯 다가온 카이에게 산시로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뜻밖에 냉정해서 카이는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
잔뜩 화가 난 채로 쫓겨났으니 틀림없이 삐져서 말도 안 하거나 아니면 덤벼들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고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요?”
카이는 내심 놀란 것을 전혀 티 내지 않고 산시로가 길쭉하게 몸을 뻗은 기계 바로 옆까지 다가가서 묻는다.
그 목소리에 광속으로 지나가는 먼 별을 바라보던 산시로가 그를 흘긋 보았다. 드러누운 채 시선을 들어 카이의 눈을 감추는 바이저에 시선을 멈추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얼굴을 찌푸린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불평은 우선 제쳐둘 셈인지, 산시로는 바이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의외로 둔하네. 로드랑 얘기했었잖아, 궤도가 어긋났다고.”
어조는 내용만큼 거칠지 않다. 그러나 카이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마 그 상황에서 자기와 로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눈을 휘둥그레 뜬 카이의 기척을 민감하게 느끼고 산시로가 쓴웃음으로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듣고 있었던 게 그렇게 이상해?”
설마 그대로라고 말도 못 하고, 마찬가지로 쓴웃음을 돌려준 뒤 산시로에게 좀 더 다가간다. 덤벼들어도 손이 닿지 않을 거리를 취하고 서 있었지만, 산시로의 기척에 아까까지의 사나움이 없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면 마침 잘됐군요, 그 건에 관해서 얘기하려고 찾아다녔습니다. 입력한 좌표와 실제 통로에 약간이지만 어긋남이 생긴다고 합니다.”
카이의 말에 산시로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좌표와 실제 통로가 다르단 말이지. 원인은 찾았어?”
올려다보는 산시로에 카이가 고개를 젓는다.
“전임자와의 인수인계에도 그런 얘기는 없었고 기기류의 컨디션은 전부 그린을 나타내고 있어요. 컴퓨터를 불러내서 물어봐도 이상 무라고 할 뿐이고, 수동으로 진로를 고치면 지시대로 잘 움직인다고 합니다.”
산시로는 긴 다리를 끌어당겨 그 위에 팔꿈치를 대고 골똘히 생각한다.
“컴퓨터에 맡기면 어긋남이 생긴다는 건가. 계산상의 오차는?”
“그걸 조사하려고 실드를 내린 채 기계 체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브릿지의 통상 장비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니까, 이후 생각할 수 있는 건――”
“자동제어 컴퓨터 시스템의 이상이란 말이네…….”
카이가 하려던 말을 산시로가 잇는다.
“그건 좀 성가시게 됐군…….”
이마로 한 가닥 내려온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올리며 칠흑의 하늘로 시선을 보냈다.
생각에 빠진 산시로의 옆모습을 카이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바이저 너머로 관찰하고 있다.
상야등이 비춰내는 옆모습은 젊다. 아마 자신보다도 젊으리라. 음영을 뚜렷하게 새기는 윤곽이 뚜렷한 생김새는 눈을 치뜨고 다가섰던 좀전의 인상과는 꽤 다른 것처럼 생각되었다. 꼬리가 약간 올라간 눈의 강한 반짝임은 첫인상보다도 훨씬 이성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용병이면서 워프 드라이브 특A 자격을 가진 것 자체가 이 남자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성미가 과격한 듯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거칠지는 않은 것 같다. 카이는 최악이었던 첫인상을 아주 약간 수정했다.
“왜?”
투덜투덜 입안으로 중얼대면서 생각에 빠져 있던 산시로가 카이의 시선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턱을 휙 들었다. 허공을 보고 있던 검은 눈동자가 카이를 올려다보고, 불투명한 바이저에 감춰진 카이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에 딱 맞춰진다.
원래는 보이지 않을 자신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본 것에 허를 찔려서, 카이는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던 걸 입 밖에 내버렸다.
“아까와는 인상이 꽤 다른 것 같아서…….”
그 말에 카이를 올려다보고 깜박이지도 않았던 눈이 문득 누그러진다. 하나로 묶인 곱슬기 없는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아무렇게나 쓸어올리며 목 안쪽으로 웃었다.
“나, 잠투정이 심하거든. 혈압이 낮아서.”
산시로의 지극히 가벼운 말투에 카이는 그림 같은 눈썹을 휙 치켜올렸다. 좀전의 덤벼들 듯한 기세를, 잠이 덜 깨서 불쾌했던 거라고 정리할 줄은 생각도 못 해본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의 서슬에 겁먹고 두 번 다시 접근하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 불쾌하다기보다는 격노라고 하는 편이 훨씬 와닿는 격렬함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산드라와 로드가 없었다면 그게 다가 아니었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이미 그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잊은 것처럼 웃고 있다.
이 남자의 성질은 평범한 인간의 척도로는 잴 수 없다.
앞으로의 긴 항해 중에 산시로가 일으킬 분쟁을 생각하고 카이는 몰래 한숨을 뱉어냈다.
“거북한 놈이랑 짝이 되었다 싶은 거지. 확실히 난 성미가 급하지만, 함부로 남한테 덤벼들 정도로 생각이 없는 건 아니야. 아까 그건 당신도 잘못했어.”
성가시게 됐다고 혀라도 차고 싶은 카이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이 산시로는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뻣뻣하게 등줄기를 펴고 선 카이의 모습을 재미있는 듯이 올려다본다.
“앞으로 1년 내내 낯짝 보고 지내야 하는 상대한테 퉁명스럽게 굴면서 당신, 얼굴도 안 보여주려고 하질 않나. 그러긴커녕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넘어가려고 했으니까.”
“제대로 인사해주기 바랐으면 말을 좀 조심하지 그랬어요.”
선뜻 되받아친 카이를 보고 산시로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도.”
“카이입니다.”
부드러운 허스키를 억지로 단조롭게 누른 듯한 카이의 어조를 거스르지 않고 산시로가 순순히 정정한다.
“카이도, 겉보기보다 훨씬 성미가 급하네.”
응수하려던 카이를 시선을 피함으로써 제지한 산시로가 입가의 엷은 웃음을 지웠다.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 된 산시로가 무릎 위로 깍지낀 두손에 턱을 올린다.
“자세한 건 기계를 만져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당직일 때 한 번 더 체크해보자고.”
“그걸 제안하러 온 겁니다.”
갑자기 화제를 바꿔버린 산시로에 대처하지 못하고 약간 당황한 카이였지만, 산시로가 컴퓨터의 부조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깨닫고 수긍했다.
“그리고 앞으로 말인데……, 어쩔래?”
체크에 대한 절차를 얘기하려 한 카이에게 산시로는 극히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라면?”
산시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서 카이가 미심쩍은 듯한 목소리로 되받는다. 거기에 답답한 듯이 혀를 찬 산시로가, 일으키고 있던 반신을 털썩 눕혔다. 짐 위에 몸을 뻗고 바로 옆에 선 카이를 노려다보듯이 올려다본다.
“당신 진짜 둔하네. 우린 실수로 짝지어진 버디라고.”
“그렇죠.”
산시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카이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착오가 있었다는 걸 서로 확인했으니 우선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실수든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1년 간 버디로 같이 일해야만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알고 있다. 이 산시로라는 남자, 성격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실력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카이는 보고 있었다. 해봤자 소용없는 얘기를 어째서 새삼스럽게 꺼내는 걸까.
바이저를 쓰고 있어도 카이의 미심쩍어하는 낌새가 전해졌으리라. 산시로가 크게 한숨을 쉬고 가볍게 반신을 일으켰다. 윤기 있는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묶어놓은 가죽끈이 풀리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난폭하게 휘젓는다.
그래도 한동안은 말을 고르는 눈치로 입술을 깨물고 고민했던 것 같지만, 그것도 귀찮아졌는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선 카이의 호리호리한 모습을 홱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원래 같으면 지금쯤 한판 떴을 거라는 말이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 듯 카이가 고개를 살짝 갸웃한다. 반응이 둔한 상대에 짜증이 나서 좀 더 설명이 필요한가 싶어 산시로가 입을 떼려고 한 순간, 카이의 마른 몸이 확 굳어졌다.
“그건……, 매뉴얼에는 없을 텐데요…….”
거북한 침묵 이후, 간신히 의미를 이해한 듯한 카이가 이 종류의 화제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한편 산시로는 카이의 핀트가 엇나간 대답을 입을 딱 벌리고 듣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뭐 이런 엉뚱한 거절 방식이 다 있나 싶다. 너무나도 서투른 거절에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진 산시로는 눈앞에 선 바이저를 쓴 미모의 청년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매뉴어얼? 이봐, 잠꼬대는 자면서 해. 누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공무원한테 지시받을 줄 알고! 잘 들어, 이건 약속된 패턴이라고. 당신 취향대로 표현하자면 관습이야. 상호이해를 위한 제일 빠른 방법이란 소리지.”
카이는 말이 없다.
보통은 제일 감정이 드러날 눈동자를 불투과 바이저로 감추고 반듯한 윤곽이나 얇은 입술에 만들어진 듯한 딱딱한 인상을 띄운 채 카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시로의 뛰어난 후각은 필요 이상으로 등줄기를 펴고 몸을 굳힌 채 자신의 말에 경계하는 카이의 모습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강렬한 거부반응을 맡아냈다. 그뿐이 아니다. 규칙을 끌어냄으로써 진짜 이유를 얼버무리려 하는 것도 눈치채고 있다.
왜 그렇게까지 거부하는 건지 모르는 채로 이유조차 말하지 않고 고집스레 침묵하는 카이의 태도는 산시로의 신경을 거슬렀다.
그는 강제하려 한 게 아니다. 어떻게 할지 제안했을 뿐이다.
자연히 어조가 사나워진다.
“매뉴얼이 어쩌고 할 게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 나 같은 인간을 규칙으로 얽맬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태도에는 잘못이 없다. 결코 느긋한 편이 아닌 산시로는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고함을 필사적으로 삼키고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다시 한동안 숨 막히는 침묵이 있고 나서, 산시로의 인내가 끊어지기 직전에 카이가 겨우 입을 열었다.
“……, 가능하면……, 그런 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만 말한 뒤 카이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 말이지, 자기 혼자만 피해자라고 생각해?”
뭔가, 인상이 불안정한 녀석이네.
갑작스러운 카이의 변화를 어안이 벙벙하게 올려다보던 산시로가 검지로 관자놀이를 긁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 냉정해서 첫인상이 나쁜 녀석인가 싶더니 마음 약한 소녀처럼 고개를 숙여버린다. 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완전히 풀죽은 카이에 짜증 반, 기막힘 반으로 산시로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쉰 뒤 뭉친 걸 풀듯이 고개를 우두둑 돌렸다.
“있잖아, 내가 기꺼이 남자를 안을 것처럼 보여? 말해두겠는데, 나도 충분히 피해자라고.”
그래도 고개를 들려 하지 않는 카이에, 이 정도의 농담은 허용되겠거니 하고 꼰 무릎 위에 턱을 올린 채 못돼 보이는 엷은 웃음을 띠고 시선만 들어 카이를 본다.
“안심해.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한 당신이랑 잘 생각은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카이가 튕긴 듯이 고개를 들었다. 말도 안 된다고 하고 싶은 듯이 턱을 휙 당기고 얇은 입술을 꾹 다문다. 바이저 너머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가 산시로를 노려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 녀석일지도 모르겠네.
짜증 날 정도로 냉정 침착하다는 첫인상과는 상당히 인상이 다른 카이에 산시로는 입가를 조금 더 끌어올렸다.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건 마음에 안 들고 거북한 타입이라는 건 변함없지만, 당분간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하는 게 표정에 드러났는지 카이의 눈썹이 험악하게 치켜 올라간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시로는 가볍게 일어나서 카이의 옆을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다.
“뭐, 잘 부탁해. 그렇다 쳐도 거절하려면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당신 진짜 달 출신이야?”
“카이입니다. 우선, 오해한 걸 사과하겠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보고가 끝났으니 머지않아 연락이 올 겁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서 태어났든 당신하고는 관계없잖아요.”
카이는 완전히 평소의 태도를 되찾아버린 것 같다. 억양을 억지로 누른 독특한 말투로 멀어지는 산시로의 등을 향해 대꾸한다.
“왜 그렇게 힘이 빡 들어간 식으로밖에 말을 못 하는 거야. 『미안해. 서로 운이 없었네』이러면 충분해.”
어둑어둑한 덱 저편에서 지극히 가벼운 대답이 돌아왔다.
“젠장―, 앞으로 1년이나 여자는 손도 못 대는 거냐. 뭐 이런 극락비행이 다 있어.”
이어서 들려온 이 말은 아무래도 혼잣말인 듯했다. 이 난폭한 푸념을 카이는 웃지도 않고 듣고 있었다.
창밖에는 광속으로 지나가는 먼 별.
침침한 상야등이 뭔가 생각하는 데에 열중한 카이의 빈틈없이 등줄기를 뻗고 서 있는 모습을 슬림한 실루엣으로 만들어 어렴풋이 비춰내고 있다.
각인각색의 마음을 싣고 쥘 베른은 칠흑의 우주를 달려나간다.
그 뒤로 며칠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우주를 날아다니는 우주선에는 낮과 밤의 구별이 없지만, 인간의 체내시계는 태어난 별의 주기를 고집스레 잊을 수 없는 듯 그들의 생활도 24시간을 하루로 한 지구형 타임 스케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카이와 산시로, 로드와 산드라 각 버디는 원칙적으로는 8시간 교대로 임무에 임하고 남은 8시간을 컴퓨터의 자동제어에 맡기는 3교대로 배를 움직이고 있었다. 목적지까지의 좌표는 컴퓨터에 입력해뒀으므로 그들의 주된 임무는 컴퓨터가 표시하는 몇 가지 진로의 선정과 조타, 관리 같은 유지보수가 주가 된다.
진로의 선정 및 지휘는 문관인 로드와 카이가, 실제 조종과 배의 유지관리는 무관인 산시로와 산드라가 담당하고 있었다. 무관과 문관에는 어느 쪽이 상관이라는 구별은 없었지만, 최종결정권은 문관인 로드와 카이가 가졌다.
그들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카 랠리의 드라이버와 내비게이터라고 할 수 있을까. 드라이버가 운전하고 내비게이터가 길을 지시한다. 내비게이터의 지시대로 드라이버가 운전한다고 해서 내비게이터 쪽이 지위가 높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산시로 일행과 로드 일행이 함께 임무에 착수하는 경우는 없지만, 가동조종 컴퓨터 체크 같은 큰 짐을 떠맡아버렸기에 그들은 하루마다 어느 쪽이 12시간 임무에 착수하는 방식으로 몇 시간은 넷이서 일하게 되었다.
부조이긴 해도 통상의 항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네 명이 다 달라붙은 체크에도 여전히 고장 부위는 발견되지 않는다. 자연히 그들에게도 여유가 생겨서 이 컴퓨터 체크 작업은 그들 네 명이 자기 이외의 세컨드 크루를 관찰하는 좋은 기회가 되어 갔다.
“결국 당신들은 버디로 등록하지 않는 거군.”
카이와 함께 메인 컴퓨터를 체크하던 로드가 옆에 앉은 카이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카이의 대답은 지극히 무뚝뚝하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옆모습의 대부분을 바이저로 가리고 있는 건 여전하다.
“등록되면 기록에 남아서 다음 항해에도 참고로 쓰이니까. 당신들이 서로를 버디로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전대미문이야.”
자기에게 말을 거는데도 카이는 맞장구도 치려 하지 않는다.
업무 이외에는 거의, 카이는 다른 크루와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식사 때는 다른 세 명이 얘기하고 있어도 사이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비번일 때도 다른 누군가와 함께 행동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다른 세 명의 행동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1년을 단 네 명이 지내도 괜찮을 정도니까 로드 본인도 그다지 협조성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카이의 배타적인 태도는 그들 사이에서도 보통이 아니다.
그 반면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말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본래의 어조로 말하면 필시 섹시하게 들릴 부드러운 허스키 보이스를 억지로 억양을 눌러버린 독특한 상태로 찬찬히 말한다. 흠잡을 데 없는 경어로 꾸며져 있긴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과격하고 상대를 이론으로 굴복시키려는 듯한 도전적인 어투였다.
대부분 그가 옳고 방식도 완전히 정공법이라 산드라와 로드는 금세 카이의 어조에 익숙해져 그가 내린 지시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유일하게 익숙해지지 못한 게 산시로인데,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덤벼들어서 그런 에두른 방식은 쓸데없다고 단정하고는 말싸움을 했다.
로드나 산드라나 기회만 있으면 난리가 나는 카이와 산시로의 나쁜 상성에는 대단히 애를 먹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버디 등록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당신은 그걸로 됐다 치고, 용케 산시로가 납득했네.”
로드는 산시로가 카이를 원하지 않았던 걸 신기해하는 것이다.
인제 와서는 일상다반사가 되어가는 언쟁이나 누구에게나 쌀쌀한 카이의 태도는 둘째 치고 카이가 순수한 루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손대려 하지 않는 건 산시로 같은 혈기왕성해 보이는 남자가 할 짓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산드라라는 버디를 가진 자신조차도 카이의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에는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언제나 빈틈없이 갖춰 입은 슈트의 늘씬한 라인이나, 살짝 보이는 목덜미나 뺨의 광택 있는 흰 피부는 그가 아니라도 한 번은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하리라.
소문으로밖에 몰랐던 순수한 루난이라는 것만 해도 흥미가 있는데, 카이라고밖에 소개하지 않은 이 청년은 지금껏 동성에게는 마음이 동한 적 없는 로드조차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해버린다. 너무나도 섬세하고 고운 용모와 호리호리한 팔다리가 로드를 묘하게 사디스틱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다.
이건 산시로도 마찬가지이리라. 한 번이라도 루난과 접촉한 자는 두 번 다시 다른 인종과의 섹스에 만족할 수 없게 된다는 소문을 산시로가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는 저에게 흥미가 없다고 합니다.”
로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는지 카이는 일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읊조렸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돌아본 로드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시선은 콘솔에 고정된 상태다.
“산시로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자면 『남자랑 하는 걸 좋아한다고들 생각하면 내 체면이 떨어져』라고 합니다.”
정말 산시로 다운 표현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가 아슬아슬하게 그걸 삼킨다.
“그건 그……,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주의를 가졌네.”
“용병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은 모양인데, 저로선 고마울 따름입니다.”
냉담한 어조에 담긴 이 이상 자기한테 상관하지 말라는 뉘앙스를 눈치 못 챈 척하고 로드는 몸을 더 내민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지?”
루난인 카이가 1년이나 접촉 받지 못해도――접촉하지 못해도?――괜찮은가 하는 상당히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카이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입 밖에 낸 심술궂은 질문이었는데, 카이의 도자기 같은 옆모습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한 번도 로드 쪽을 향하지 않았던 카이가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달의 인간이 모두 감각만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란 뜻입니다. 한 가지 일에 흥미를 가지면 다른 걸 돌아보지 않게 된다는 루난의 또 한 가지 특성을 모르십니까? 그리고 저를 일부러 화나게 하려고 해봤자 소용없어요.”
눈을 크게 뜬 로드는 어깨를 으쓱하고 항복의 뜻으로 두 손을 들었다.
“과연, 다 꿰뚫어 봤다는 건가.”
“이런 질문은 지금껏 질릴 정도로 받았으니까요. 로드의 전문은 분명히 수학이었죠. 사이코세러피스트의 재능은 별로 갖지 못하신 것 같군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카이의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로드는 다시 컴퓨터 체크 작업에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콘솔에 몰두하고 있는 카이의 옆모습에 흘긋 시선을 보내며, 만만치 않은 이 미청년의 자신을 보이려 하지 않는 완고함을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이쪽은 산시로와 산드라.
그들은 기관실에서 에너지 유출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체크해도 기계류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뿐이고 여기에서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조로운 작업에 슬슬 질려서 신경을 집중할 수 없게 된 두 사람은 주방에서 커피를 가져와서 잠시 쉬는 참이었다.
“그럼 로드랑 짝이 된 건 이게 처음이란 말이군.”
플로어에 주저앉아 큰 배전반에 기댄 자세로 산시로는 산드라에게서 두잔째 커피를 건네받았다.
“그렇지. 버디 항행은 이걸로 여섯 번째이지만, 같은 사람하고는 짜지 않으려고 해.”
산드라는 산시로에게 커피를 건넨 뒤 자기 컵을 들고 책상다리를 한 산시로와 마주 보고 섰다.
기계 속에 기어들어 가서 체크하다 보니 두 사람 다 작업복을 입고 있다. 에어컨은 켜져 있지만, 기관실은 기계가 뿜는 열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산드라가 크게 한숨을 쉬고 목에 달라붙은 타오르는 듯한 빨간 머리카락을 성가신 듯이 떼어냈다. 뒤이어 점프슈트의 앞부분을 과감하게 가슴팍까지 푼다.
앞가슴에 있는 군의 기장을 기역 자로 구부리고 있는 풍만한 가슴을 무례할 정도로 열심히 들여다보는 산시로는 상의를 벗어서 어깨에 걸치기만 한 모습이다.
한편 산시로의 검은 상의에는 기장이 없다. 그는 제복으로 지급되는 슈트나 작업복을 답답하다고 싫어해서 자기 옷을 입고 있다.
“그거 좋은데. 나도 다음에 소환될 때는 그 점을 확실히 다짐해둬야지. 가능하면 산드라하고 짝이 돼보고 싶네.”
꽤 그럴듯한 윙크를 던지고 입가를 끌어올린 산시로에 산드라가 회색 눈동자를 재미있는 듯이 반짝인다.
“어머, 그거 영광이네. 하지만 어떻게 봐도 내가 더 연상이야.”
“무슨 그런 시대착오적인 소릴 해. 나처럼 여자를 밝히는 놈이 남자랑 짝지어지는 세상이라고. 산드라 같은 잘빠진 여자라면 연상이든 뻣뻣한 군인이든 알 게 뭐야.”
과장되게 얼굴을 찌푸려 보인 산시로를 보고 산드라가 화려한 웃음소리를 냈다.
“카이 정도의 미형을 남자라는 것만으로 차버리다니 산시로도 의외로 고풍스럽네. 게다가 그는 달 출신이야. 아깝지 않아?”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산시로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아무리 미형이라도 싫어. 어차피 난 거칠고 야만스러운 용병 출신이라고. 나한테는 예쁜 얼굴보다 빵빵한 가슴이 포인트가 높거든. 애초에 그쪽에도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고, 정작 중요한 예쁘장한 낯짝을 그 녀석은 보이려고도 하지 않잖아.”
으르렁대는 듯한 말에는 진짜로 불쾌함이 배어 있어서 산드라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함께 일하다 보니 로드나 카이가 말하는 정도로 단세포인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일이 카이를 물고 늘어질 것 없지 않으냐고 말하려던 산드라는 커피 컵을 노려보는 산시로의 짜증의 원인을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챘다. 그는 카이의 바이저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얼굴을 감추려 하는 카이의 의식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시로는 산드라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남의 감정을 깊이 읽어내고 있다는 게 된다. 적당한 맞장구로는 도저히 납득할 것 같지 않아서 산드라 또한 표정을 다잡았다.
“카이가 우수한 문관이라는 건 산시로도 인정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바꾼 산드라에 산시로는 대답 대신 불만스러운 듯이 코웃음을 쳤다.
부정하고 싶어도 카이의 우수함은 뼈에 사무치게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카이는 우수한 문관이었다. 산시로의 말을 빌자면 규칙이나 종래의 방법에 완전히 기대는 경향은 있었지만, 컴퓨터 조작 속도나 정확함, 배의 진행 방향을 결정할 때의 확실한 판단은 그가 지금까지 본 어떤 문관에도 뒤지지 않았다.
화가 날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점을 제외하면 카이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업무상으로는.
산시로의 무언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산드라가 웃음을 살짝 품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버디라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는 거야. 우선 어쩌다 보니 같은 배에 타게 된 크루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기분이 전환되지 않을까? 거기서부터 조금씩 카이의 마음을 풀어갈 수도 있을 테고……. 왜? 뭐가 우스워?”
산드라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산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책상다리를 한 채 그녀를 올려다보던 산시로가 상의를 걸쳐두기만 한 어깨를 떨면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함장 후보야. 자기가 사이에 들어가서 원만하게 수습해주시려는 건가. 하지만 산드라는 뭔가 착각하고 있어.”
“착각?”
산드라는 함장 지망으로, 그 훈련을 겸해서 이 배에 올랐다. 연방 우주국의 순양함급 이상인 배의 캡틴을 희망하는 자는 버디 항행을 여러 번 경험해야만 한다는 규칙이다.
미심쩍은 듯한 산드라를 올려다본 산시로는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놓은 뒤 책상다리를 풀고 무릎을 세웠다. 그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올린다.
“난 딱히 카이랑 손에 손잡고 사이좋게 일하고 싶어서 토라진 게 아니야. 잘 들어, 나랑 카이는 버디가 아닌 버디라고.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어조는 지극히 가벼웠지만, 표정을 날카롭게 다잡고 그녀를 올려다보는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카락, 트레이드마크가 다 된 검정 일색인 슈트 모습의 산시로가 웅크린 채 날카롭게 올려다보자, 산드라는 자기 몸이 멋대로 한 걸음 물러서는 걸 의식했다.
뭐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 다시 한 번 산시로를 쳐다본다. 하지만 일순 느낀 찌르는 듯한 기척은 깨끗이 사라지고, 산시로는 그저 진지하게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산드라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산시로를 겁내는 건 아니다. 산시로는 쾌활하고 밝고, 입은 험하지만 같은 배의 크루로 일한다면 업무 이외의 대화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카이보다 오히려 대하기 쉬운 남자라고 느끼고 있을 정도이다.
상대가 보수에 따라 웬만한 일은 다 하는 용병인 만큼 완전히 경계심을 풀 수는 없는 지금도, 거칠지만 유능한 기술자로서 그 실력을 신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프로 군인이다. 만약 그가 사건을 일으키더라도 대응할 자신은 있었다.
그럼 어째서? 자기 생각에 의식을 빼앗겨 산시로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한 산드라 때문에 답답해진 산시로가 몸을 쑥 내밀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산드라도 의외로 안일하네. 잘 들어, 버디 시스템에 관련된 컴퓨터의 정보수집량은 막대하잖아. 연방 내를 총망라한 컴퓨터가 우리를 골라내는 거니까.”
그런 건 산시로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산시로가 뭔가 중요한 얘길 하려는 걸 느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시로의 얘기에 의식의 대부분을 향하면서, 산드라는 사고 한구석으로 자신을 한 걸음 물러서게 한 산시로의 기척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살펴보는 산드라의 시선 앞에서 산시로는 변함없이 릴랙스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장신이긴 하지만 그녀의 버디인 로드보다는 머리 반 정도 작다. 몸매도 슬림하고 눈빛이 좀 강하긴 하지만 상당히 잘생긴 청년이다. 검은 눈, 검은 머리카락에 산시로라는 동양적인 이름이 잘 어울린다.
전체적으로 그녀를 위압할 만한 외모를 한 건 아니었다.
산드라가 자신을 관찰하는 것 따위 모르는 듯이 산시로는 말하는 데에 열중해 있다. 버릇인지, 윤기 있는 긴 흑발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가죽끈으로 묶은 것도 아랑곳없이 거칠게 쓸어올렸다.
“나나 카이나 우리가 짝지어진 건 실수라고 간단히 말하고 있지만, 컴퓨터가 그리 쉽게 실수를 범할 것 같아? 이중 삼중으로 체크 기구가 있다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사태의 중대함이 산시로에 대한 산드라의 사고를 중단시켰다. 그의 묘한 박력에 대해서는 우선 머리 한쪽에 넣어두고 산시로의 얘기에 의식을 집중시킨다.
풀어져 버린 곧은 머리카락 너머로 웃음기 없는 산시로의 눈이 산드라를 올려다보고 있다. 되받아 보는 산드라의 표정도 일할 때의 긴장된 것으로 바뀌어 갔다.
산시로가 말을 잇는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그러면 카이의 저 태도는 단순히 근성이 비틀렸다고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잖아.”
“글쎄, 그건 어떨까. 만약 내가 무슨 비밀 임무를 갖고 숨어든다면, 극력 그곳에 녹아들게 행동할 거야. 그의 태도 같아선 오히려 남의 눈을 끌어버리는걸. 게다가 당신한테도 같은 소릴 할 수 있잖아. 용병이었던 인간을 이 급의 배에 버디로 태우는 건 전례가 없어.”
산드라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산시로가 씩 하고 입술을 끌어올렸다.
“……만만찮은 여자일세.”
자기를 의심한다고 딱 잘라 말하는 산드라에게 산시로는 거친 찬사를 보냈다. 그는 업무에 철저한 사람이 좋은 것이다.
“당연하지. 내가 그리 쉬운 여자일 줄 알고? 어찌되었든 다음 정기교신 때 연방에 자세한 조회를 부탁해볼게. 카이, 그리고 산시로 당신 몫도.”
산드라의 어조는 능률적으로, 산시로는 이 글래머러스한 빨간 머리의 미인에게 한층 호의를 가졌다.
그녀의 말과 거의 동시에 작업종료를 알리는 벨이 짧게 울렸다. 그걸 계기로 산시로가 일어난다. 그는 지금부터 비번이다.
“멋대로 해. 다만 내가 무죄라는 걸 알면 카이 쪽 결과를 알려주겠어?”
“알았어.”
슈트에 묻은 먼지를 대강 털고 땀에 젖은 상의를 어깨에 걸친다. 완전히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넘기고 산시로는 기관실에서 나가려 했다.
“아, 잠깐만.”
돌아본 산시로에 산드라는 그 뒤를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저도 모르게 불러 세웠지만, 그에게 뭘 물어보고 싶은지 자기도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좀전의 일이 머리 구석에 응어리져 있는 탓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한 걸음 물러서게 한 이유를 산시로에게 물어본다고 대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리는 산시로의 미심쩍은 듯한 표정에, 그녀는 간신히 할 말을 발견했다.
“당신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어?
그녀의 물음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뒤이어 희미하게 입술을 끌어올린 산시로가 반대로 되묻는다.
“그런 걸 물어봐서 어쩌려고?”
그 조용한 어조가 오히려 산드라의 석연치 않은 마음을 부추긴다. 무영등의 밝은 기계실 안에서 문득 산시로에게만 그늘이 진 듯한 인상마저 있었다.
엷은 웃음에 스미는 위험한 기척에 압도당한 산드라를 언뜻 본 뒤, 산시로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걷기 시작했다.
쾌활한 산시로가 아주 잠깐 보여준 그늘이 자신보다 젊은 청년이 헤치고 나온 심상치 않은 사건들의 잔향이라는 걸 깨닫고, 산드라는 처음으로 산시로라는 이름의 용병 출신 무관을 섬뜩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