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번역. 정식번역판이 나오면 삭제합니다.

 

https://www.amazon.co.jp/dp/B00R5U9U5E/

 

 

청의 궤적 上

 

쿠노 치아키

 

 

 

프롤로그

 

 

청(靑)이여, 나오라

청이여, 들끓어오라

청이여, 피어오르라

청이여, 가득 차라

 

 

나오라, 청.

가득 차라, 청이여――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

 

 

 

1. WAKE UP――! (일어나――!)

 

 

체온이 올라감에 따라 천천히 오감이 깨어난다.

의식이 각성하기에 앞서, 벌의 날갯짓 소리와도 비슷한 부웅 하는 진동음이 그의 귀에 새어 들어왔다.

아아, 좋은 소리다.

산시로는 아직 잘 움직이지 않는 입술로 희미하게 웃었다.

우주선은 순조롭게 항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막 콜드 슬립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마키노 산시로는 우주선 쥘 베른의 몇 안 되는 크루 중 한 명이자 여행의 중간을 담당하는 세컨드 파트의 두 무관 중 한 명이었다.

그가 타고 있는 것은 딥 스페이스 사양의 혹성탐사선 『쥘 베른』.

지금껏 미탐사였던 영역에서 발견된 지구형 혹성 ∑-23을 향해서 혹성조사의 여러 기재와 콜드 슬립 처치에 의해 잠든 채 옮겨지는 163명의 과학자를 태우고 아광속으로 항행 중이었다.

얼어붙었던 체온이 서서히 상승해가는 게 느껴진다. 아직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따뜻해진 혈액이 손발 구석구석까지 열을 운반하고 심장에 가까운 곳부터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

몸보다 먼저 오감이 깨어나 일종의 가위눌림 상태가 되는 익숙한 콜드 슬립의 각성을 의식하며 산시로는 머릿속으로 씩 웃었다.

각성이 쾌적하잖아, 과연 연방의 배답네.

성능이 좋지 않은 콜드 슬립 장치에 으레 따르는 머릿속 심지에 바늘이 꽂히는 듯한 두통이 전혀 없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그는 지금껏 몇 번이나 되풀이해온 콜드 슬립에서 깨어나는 수순을 천천히 개시했다.

눈꺼풀에 신경을 집중해서 느긋하게 깜박임을 되풀이한다. 눈꺼풀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지면 이번엔 손끝에 의식을 집중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 주먹을 되풀이해서 쥐었다 편다.

뒤이어 몸의 선단부터 서서히 관절을 움직이고 마지막으로 머리 위에 늘어서 있는 메디컬 체크 표시가 전부 녹색이 된 것을 확인한 뒤 침착하게 장치의 후드를 밀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감긴 눈꺼풀 위로 빛을 의식하고 눈썹을 찌푸린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는 약간의 빛이라도 상당히 밝게 느껴졌다. 한동안 눈을 감은 상태로 드러누워 있던 산시로는 천천히 눈을 떴다. 1년 만에 뭔가를 보는 두 눈이 광량을 낮춘 간접조명 빛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다가, 산시로는 점차 반신을 일으켰다.

상반신만 보더라도 그가 상당한 장신인 걸 알 수 있다. 신장에 비하면 슬림한 체격인 것 같지만, 몸에 딱 붙는 검은 슈트를 균형 좋게 융기시킨 가슴근육 라인이 그의 몸이 용수철처럼 강인한 힘을 가졌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마디진 긴 손가락이 어깨를 넘는 머리카락을 슬쩍 쓸어올리자 빛이 강한 눈동자가 보인다. 윤곽이 뚜렷하고 야성적인 생김새에, 의지가 강해 보이는 그 검은 눈은 잘 어울렸다. 태양광선을 받을 기회가 적은 우주선의 크루치고는 놀랄 정도로 햇볕에 그을린, 그 유피 같은 광택을 띤 매끄러운 뺨이 그가 예상외로 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읏……차.”

 

두 팔을 힘껏 뻗고 기지개를 켠다. 목을 크게 돌리고 자기 몸 어디에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딜 봐도 새것인 최신예 기계에 만족스럽게 입술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대단히 기분 좋은 상태로 희미한 진동과 함께 들리는 기계음에 귀를 기울여 보고, 잡음이 전혀 섞이지 않은 완벽한 그 소리에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기계음 끝내주네. 과연 고급품이야.”

 

그는 앞으로 1년간 이 최신예 배를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뻐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서서히 장치에서 나온 뒤 각방에 설치되어 있는 듯한 콘솔로 다가가 규칙적으로 깜박이는 라이트를 살짝 쓰다듬었다.

 

“잘 부탁해, 미인 씨.”

 

바로 그때. 그의 등뒤에서 희미한 소리가 나고, 죽 늘어선 12개의 캡슐 중 하나의 표시가 녹색으로 변했다.

돌아본 산시로는 콘솔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캡슐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자세를 취했다. 눈꼬리가 올라간 눈동자의 반짝임이 한층 강해지고 얇은 입술에서 낮은 중얼거림이 새어 나온다.

 

“잠자는 공주님이 납시겠군.”

 

입가가 살짝 올라간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 같기도 하고 진수성찬을 앞두고 입맛을 다시는 육식수 같기도 하게 보였다.

 

“마더 컴퓨터의 솜씨를 좀 보실까…….”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좀 더 끌어올린 산시로의 입가로, 보통 인간보다도 상당히 긴 편인 송곳니가 들여다보였다.

그 순간 선물에 눈을 빛내는 아이의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짐승 같은 분위기가 전면에 내세워진다. 그것도 굶주린 대형수다. 매서운 눈초리의 검은 눈동자, 아무렇게나 기른 윤기 있는 흑발 그리고 몸에 딱 붙은 검은 슈트라는 그의 차림새를 더해, 흑표를 의인화하면 딱 이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어지는 용맹함이었다.

단단한 광택을 띤 검은 눈동자의 이 청년이 뭘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바로 자신의 버디가 깨어나기를 기대하며 가슴 설레게 지켜보는 것이다.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심신이 모두 베스트 매치라고 보증된 미녀의 등장을 기다리면서 마른침을 삼키고 바라보는 그의 눈앞에서 캡슐 덮개가 조용히 열렸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이 몸을 일으켰다. 회색 머리카락이 그 움직임에 따라 서늘한 소리를 낸다.

그의 위치에서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 인물이 바로 좀 전에 산시로가 했던 것처럼 팔을 쭉 뻗고 의식을 뚜렷하게 하려고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아직 몸에 마비가 남아 있는 듯, 몸을 일으키는 동작은 완만하다. 그 느릿하고 나른한 동작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가는 손가락과 맞물려 오싹한 색기가 있었다.

그러다 말없이 바라보는 산시로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어깨를 흠칫 떨고 몸을 굳힌 채, 뒷모습을 보이고 있던 실루엣이 돌아보았다.

이리하여 두 명의 버디는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부자연스러운 침묵.

원래라면 감격의 첫인사를 할 상황을 대단히 거북한 침묵이 대신했다.

말없이 마주 보는 불편한 긴장감 속에서 상대를 자세히 관찰한 산시로는, 목에 걸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밀어냈다.

 

“――말도 안 돼.”

 

입을 딱 벌리고 자신을 보는 산시로의 모습을 수상쩍은 듯 바라보던 상대도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듣기 좋은 허스키 보이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산시로가 기대한 높은 톤은 아니다.

딥 스페이스 사양 광속 우주선 쥘 베른의 세컨드 크루인 버디 스태프는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둘 다 남자였던 것이다.

 

 

버디. 이 단어를 단순히 해석하면 파트너나 동료라는 의미가 된다. 스쿠버 다이빙에서 2인 1조로 한 번에 다이빙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수중에서 서로 의사소통하고 때로는 한 산소통의 공기를 나누며 트러블에 대처하는 팀도 버디라고 부른다.

우주선에서 말하는 버디 즉 2인 1조의 크루는 기술자로서 배의 항행부터 수리, 때로는 병기까지 관리하는 하드 담당의 무관과 외교권을 갖고 연방과 연락을 취하며 그 지시를 따르도록 지휘하는 소프트 담당의 문관이라는 조합을 이룬다.

목적지가 딥 스페이스인 경우나 항행 중의 물자 및 인원 보급이 어려운 지역으로 향하는 우주선의 크루는 모두 버디 시스템을 갖추게 되어 있고, 선발된 크루는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할 수 있었다.

단조로우면서도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우주선 운항업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격무였다.

그와 동시에 칠흑의 우주에 극히 적은 인간밖에 없다는 고독감 및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정기간 같은 인간과 지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에 내던져진 경우, 아무리 건강하고 우수한 인간이라도 정신에 이상을 초래해버린다.

기계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해서 하늘을 나는 기관을 갖지 못한 인간이 하늘을 날고, 끝내는 공기가 없는 우주로 튀어나가는 것까지 가능해진 현재도 인간의 몸과 정신은 쉽게 변화하지 않았다. 기계처럼 간단하게 환경에 순응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수많은 부정적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 이 버디였다.

무관, 문관을 2인 1조로 한 이 우주선의 버디에는 큰 특징이 있었다.

우주선의 버디는 전술한 설명 중 다이빙 버디 시스템이라는 뜻이 강할 것이다. 그들(혹은 그녀들)은 우연히 같은 임무를 맡은 사이가 아니다. 혹성연방의 구석구석까지 망라한 마더 컴퓨터에 의해 검색되어 기계, 인간 양쪽의 여러 체크를 받은 뒤 짜인, 더할 나위 없는 베스트 콤비이다.

원래 최소인원으로 항행할 때의 크루 중에는 무관, 문관이라는 구별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쪽이나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을 배치한다. 왜냐하면, 한 번 일이 일어나면 혼자서 모든 걸 해야만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고 그걸 해내지 못하면 버디 요원으로 등록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무 양도의 기술을 가진 수퍼맨(우먼)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무 양도의 두 사람을 묶어주면 끝인가 하면,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문무 양도의 수퍼맨들에게는 큰 결함이 있었다.

바로 협조성이라는 게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뭐든 자기가 해낼 수 있기에 타인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그런 두 사람을 억지로 묶어서 우주 공간이라는 이상한 상황에 내던진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두 사람은 협력하려 하지 않고 각자 멋대로 행동하면서 서로의 사소한 결함을 참지 못해 충돌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못한 채 고독감이 깊어져 신경이 소모되었다. 임무 이전에 인간관계에 완전히 지쳐서 처리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그들은 본래의 우수함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인위적인 사고가 다발해서 임무를 완수해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리하여 연방은 우수한 인간과 고가의 배를 한번에 잃는 사태가 여러 번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거듭되는 사고에 머리를 싸쥔 항공우주국이 고안한 것이 이 버디라는 시스템이었다.

인원은 필요최소한으로 해야만 한다. 동시에 지장 없이 배를 항행해야만 한다. 이 이율배반을 보완하기 위해, 짝지어지는 크루의 선출 방법을 과감히 변경했다.

그것은 연방 전역에서 골라낸 심신 모두 베스트인 두 사람을 묶는다는, 어떤 의미로는 대단히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몇 번이나 되는 체크와 온갖 각도에서 한 카운슬링. 신체 상황 진료부터 기호까지 다 조사해서 육체면, 정신면 모든 것에 있어 베스트라고 판단된 자들끼리 짝지어준 것이다.

방법으로는 약간 난폭한 방식이었지만 이 조합은 당국의 예상 이상으로 성과를 드러냈다.

인위적인 사고는 거의 없어지고 고독과 폐쇄적 환경에 대한 부적합 등으로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자는 격감했다.

그들은 협조성 없는 인간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 잘 협조하고 도우며 대단히 능률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자신의 버디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던졌다.

그리고 그 조합에는 터무니없는 부산물이 있었다.

고르고 골라 기계와 인간 양쪽에 보증받은 베스트 콤비는 대부분의 경우 베스트 커플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었다. 까놓고 말해, 최고의 섹스 프렌드로서의 일면을 가졌던 것이다.

연방을 빈틈없이 뒤덮은 마더 컴퓨터가 최고의 맞선 상대를 고르고 연방 항공우주국이 24시간 같이 있을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그 때문에 버디를 짠 두 사람은 길고 힘든 항행업무를 고도로 훈련된 프로로서 수행하면서 심신 모두 베스트인 상대와 나름대로 쾌적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위험도나 난이도가 어느 항공업무보다도 월등하게 높은 딥 스페이스를 가는 버디 항행이 극락 비행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혹시나 싶지만 일단 물을게. 당신, 양성구유?”

“아뇨.”

 

한가닥 희망을 실은 산시로의 필사적인 바람을 침착한 목소리가 조용히, 하지만 딱 잘라 부정한다.

그건 상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캡슐에서 일어나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 인물은 마르고 가냘프다고 해도 좋을 체형의 소유주이긴 했지만, 그 모습은 어디서 봐도 젊은 청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광량을 낮춘 조명 속에서도 이 청년이 터무니없는 미형이라는 건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갸름한 턱에 가늘게 뻗은 콧날. 신기한 색조를 띤 눈동자는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그 반짝임을 잃지 않았다.

호리호리하긴 해도, 장신의 산시로가 시선을 맞출 때 아주 약간 턱을 당기기만 해도 된다는 건 그도 상당한 장신이라는 뜻이리라. 선은 너무 가늘지만, 몸의 균형은 젊은 청년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취향은 둘째치고 조형적으로는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용모다.

보아하니, 두 사람은 거의 동년대인 듯했다. 그리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고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산시로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모습을 보면 이 마른 청년 쪽이 약간 연상일까.

 

“콜드 슬립 오작동이라거나…….”

“확인했습니다. 장치의 타임스위치는 정상입니다.”

“그럼 먼저 일어난 게 각자의 상대인 건…….”

“어리석은 질문이군요. 같은 시기에 근무에 들어가는 두쌍의 버디는 각자 버디 단위로 일어나게 세팅되어 있습니다. 지금 배를 조작하고 있는 건 먼저 당직 시간을 맞이한 다른 한 쌍의 버디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해도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산시로의 쓸데없는 발버둥을, 부드러운 허스키의 소유자는 차분하지만 반론할 여지 없이 정확하게 부정한다. 착오 따위는 없다는 걸 본인도 아는 만큼, 그의 말은 완전히 힘을 잃고 말꼬리가 입속으로 사라져 간다.

말문이 막혔으면서도 뭔가 도망칠 길이 없을까 눈썹을 찌푸리고 고민하던 산시로가 뭔가를 떠올리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 마주 보고 선 상대에게서 거리를 약간 벌리고 으스스한 듯이 눈앞의 미청년을 들여다본다.

 

“혹시……. 당신, 나 같은 타입이 취향이야?”

 

입가에 웃음을 띠고 침착하게 대답하던 청년이 그 말에 고상한 미소를 철회했다. 눈초리가 긴 눈동자에 힘을 주고 잘생긴 입술을 꾹 다문 채 말없이 산시로를 노려본다.

지극히 어처구니없다는 그 표정에 산시로는 노골적으로 안도했다.

 

“살았다. 당신이 들이대면 어쩌나 했거든. 당신, 엄청 예쁘지만 역시 남자니까.”

 

명랑하게 말해버리는 산시로를 청년은 대답하기조차 더럽다는 듯이 계속 노려본다. 필요 이상으로 반듯하게 생긴 만큼 요기가 떠도는 듯한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산시로는 그런 것에 기죽을만한 섬세함을 갖지 못했다.

 

“그럼 왜 당신이랑 내가……?”

 

청년의 차가운 분노의 표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말하던 산시로가 문득 말을 끊고 귀를 기울였다. 그걸 눈치챈 청년도 그를 따른다.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청각을 할퀴는 듯한 희미한 소리의 정체를 두 사람이 인식한 동시에 배가 격하게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고 순시에 행동했다.

앞다투듯이 복도로 뛰쳐나가 브릿지로 향한다.

그들을 정신 차리게 한 것――그것은, 배의 이상을 알리는 경계경보였다.

 

 

“무슨 일이야?!”

 

뛰어든 동시에 외친 산시로는 가까운 콘솔에 달려든 뒤 급히 표시를 읽기 시작했다. 군복을 몸에 걸친 빨간 머리 여성이 격한 흔들림에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하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이온 폭풍이야! 실수했어. 계기 체크 때문에 실드를 전부 내려뒀어!”

“실드가 안 올라가! 서브 엔진의 피해 상황을 조사해줘!”

 

메인 스크린 앞에서 조종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격투하고 있는 몸집 큰 남자가 들어온 두 사람에게 흘긋 시선을 던지고, 자기 옆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산시로와 동시에 뛰어 들어온 청년이 그 자리에 몸을 스르르 밀어 넣는다. 깜박이는 램프 몇 개를 보더니, 눈썹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폭풍에 정면으로 파고든 모양이야. 센서에 부하가 심하게 걸려서 제대로 된 수치를 보내오지 않아…….”

 

그 말을 들은 산시로는 읽어낸 표시 중 하나에 날카롭게 혀를 차고 빨간머리 여성이 조작하고 있는 콘솔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무렇게나 여성을 밀어내고 벽면에 늘어선 복잡한 모양을 한 공구 같은 것을 잡고는 서서히 콘솔 패널을 벗겨낸다.

 

“뭘 하려고?!”

 

눈썹을 곤두세운 군복 차림의 여성에 개의치 않고 재빨리 패널을 벗긴 뒤,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진동하고 있는 기계 속으로 한쪽 팔을 밀어 넣었다. 다른 한손으로 콘솔 테두리를 단단히 잡고 비틀대려는 몸을 버티면서 손으로 더듬어 기계 내부를 살핀다. 목적한 것을 찾아내자, 잘 보지도 않고 기세 좋게 뽑아냈다.

 

“――!”

 

군복의 여성이 소리가 나지 않는 비명을 지른다. 녹색 불꽃이 요란하게 흩어지고 브릿지의 조명이 일순 어두워졌다. 의미 불명의 숫자를 나열하던 서브 스크린과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던 디스플레이 유닛 중 몇 개가 갑자기 꺼졌다.

 

“센서를 확인해줘!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을 거야!”

 

의자에 매달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여성의 어깨너머로 산시로가 외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돌아본 청년과 몸집 큰 남자는 그 목소리에 자기 앞의 패널에 시선을 떨구고, 그의 말대로 센서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 것을 알자 바로 자기가 할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실드 올라왔습니다.”

 

청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계속 울리던 경계경보가 멎고 깜박이던 비상용 경계등이 적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다. 그들을 휘두르고 있던 흔들림이 없어지고 희미한 진동만을 남긴다. 쥘 베른은 평소의 조용함을 되찾은 모양이다.

 

“후.”

 

이마에서 땀을 닦고, 몸집 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서서 산시로와 자기 옆에 앉은 청년을 교대로 바라본다.

 

“덕분에 살았어. 갑작스러워서 대처에 애먹고 있었거든.”

 

장신의 산시로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듯하다. 높이도 있고 폭도 있는 근육이 울퉁불퉁한 거한은 깊이가 있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뒤 듣기 좋은 목소리로 웃었다.

 

“내 이름은 로드. 체격은 이렇지만 일단 문관이야. 부디 착각하지 말아줘.”

“나 참. 이온 폭풍은 항상 예측불능이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건 처음이었어. 내 이름은 산드라. 잘 부탁해, 또 한쌍의 세컨드 크루 씨.”

 

남자에 이어 빨간 머리의 여성이 두 사람에게 생긋 웃었다. 타오르는 듯한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긴 속눈썹으로 둘린 회색 눈동자가 아름답다. 3차원적인 몸이 군복의 가슴과 엉덩이 부분을 한계까지 채우고 있는, 대단히 글래머러스한 미녀였다.

 

“난 산시로. 잘 부탁해.”

 

옆에 선 미녀를 보고 웃으며 자기소개를 한 산시로는, 그러고 보니 하는 얼굴로, 훤칠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청년 쪽을 보았다. 자신의 버디가 남자였던 경악과 거기에 이어진 경보 소동에 쫓겨 청년의 이름조차 듣지 못한 것을 간신히 깨달은 것이다.

 

“정식 명은 기니까, 부디 카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입가의 예의 고상한 미소를 띠고 가볍게 인사한 뒤, 카이라고 소개한 청년은 금세 자기가 앉아있는 콘솔로 몸을 돌리고 시선을 패널 표시에 둔 채 로드에게 말했다.

 

“실드를 내리고 계기 체크를 했다고 했죠. 왜 그런 위험한 짓을? 게다가 남은 크루가 일어나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었거든.”

“이봐.”

 

카이를 따라 시선을 패널로 향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한 로드의 얘기에 산시로가 끼어들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라면?”

 

산시로를 무시하고 카이는 로드에게 설명을 구한다. 산시로에게 시선을 흘긋 보낸 로드가 난처한 듯한 미소를 띠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다.

 

“입력한 좌표에서 미묘하게 궤도가 어긋나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자신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 카이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져, 약간 떨어진 곳에 산드라와 나란히 서 있던 산시로가 목소리에 험악한 기색을 띠고 상체를 쑥 내민다.

 

“이봐, 당신.”

“카이입니다.”

 

간신히 산시로의 목소리에 돌아본 청년은 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만 말하고 다시 로드에게 몸을 돌렸다.

 

“궤도가 어긋나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카이!”

 

눈을 부릅뜬 산시로가 격한 어조로 카이의 말을 가로막는다.

 

“잠깐만, 산시로. 당신한테 맡기면 일을 복잡하게 만들 것 같으니까 내가 대신 말할게. 당신이 묻고 싶은 건 이거지?”

 

추궁하려 한 산시로를 가볍게 제지하고 산드라가 카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카이, 왜 바이저를 안 벗어?”

 

그렇다. 어느새 쓴 건지, 카이라고 소개한 청년은 얼굴의 반을 가리는 불투명한 바이저로 자신의 표정을 전혀 읽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산드라 말이 맞아. 왜 얼굴을 감추지?”

 

안광이 날카로운 눈에 짜증을 더해가며 산시로가 말을 잇는다.

 

“그건 제 맘이죠.”

 

카이가 돌려준 말은 말투도 의미도 완전히 쌀쌀맞다.

 

“이 자식…….”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번뜩인 산시로의 기세를 제지하고 로드가 카이에게 물었다.

 

“혹시 눈이 나빠?”

“아뇨.”

“그럼 종교나 관습상의 이유?”

“아니요.”

 

언짢아하는 산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로드와 산드라의 물음을 둘 다 부정한 카이를 산시로는 말없이 보고 있었다.

왜 그가 그렇게나 카이의 바이저에 짜증을 내고 있는가 하면, 카이가 얼굴을 감추려 하는 이유를 민감하게 느낀 탓이다. 그것은 로드나 산드라가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그들에게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가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시로는 부드러운 말투의 카이의 태도에도 자신들에 대한 완고한 거절을 직감으로 읽어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바이저를 한 번 벗어줄 수 없을까. 이래서는 그쪽 얼굴이 거의 안 보여.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얼굴을 제대로 보고 인사해야지.”

“죄송하지만――”

 

로드의 말에 예의 바르게 인사는 하지만 카이는 바이저를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일로 규칙을 들이대기는 싫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이 얼굴을 계속 감춘다면 당신 태도는 복무규정에 저촉돼. 『승무원의 정보공개의무규정』. 알지? 고작 네 명밖에 안 되는 크루 사이에선 상호불신은 치명적이야.”

 

대신해서 말한 산드라의 이론적인 설득이 간신히 카이의 마음을 움직인 듯하다.

그래도 아직 주저하는 듯이, 카이는 바이저에 손을 댔다.

바이저를 손에 들고 천천히 고개를 든 카이를 보고, 다른 세 명은 일제히 숨을 삼켰다.

 

“어――?”

 

경악으로 눈이 휘둥그레진 채 산드라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만화경 눈동자(kaleidoscope eye)……!”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카이의 얼굴을 들여다본 채 로드가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좀전의 분노도 잊고 카이의 눈을 바라보며 망연히 있던 산시로가 로드와 산드라가 하지 못한 말을 입 밖에 냈다.

 

“당신, 달 출신이야?

 

 

 

→청의 궤적 上 - 2. 컬라이더스코프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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