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번역. 정식번역판이 나오면 삭제합니다.

 

 


『창궁의 파프너』 코믹스 9권 수록 신작 단편소설

After All Alone

우부카타 토우



꿈과 현실――애매한 경계선 위를 둥실둥실 떠도는 듯한 기분으로, 카즈키는 가로누운 채 그것을 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비치는 빛과 그 앞에 응어리진 어둠 사이에 있는 어렴풋한 ‘희미함’을.
돌아보면, 커튼 틈새로 흘러나오는 아침의 빛이 보이리라.
하지만 카즈키는 빛을 등지고 어둑한 곳을 바라보는 지금의 자신에게, 신선한 놀라움을 품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꿨던 꿈 탓이다.
어두운 밤바다 속을 헤매면서 헤엄친다는, 몇 년이나 전부터 때때로 꾸는 꿈이었다.
아니, 그럴 터였다.

――바다를 보고 있었어.

카즈키는 꿈의 광경을 떠올리면서 그 점에 틀림이 없는 것을 거듭해서 확인했다.

――나는 더 이상, 헤엄치고 있지 않았어.

캄캄한 밤바다를――밤하늘과 바다가 다 칠흑으로 뒤섞여서 온통 구별이 가지 않는 어둠을 목표로 헤엄치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 육지에 서 있었다.
수많은 건물이 늘어서 있고, 창문에서는 따스한 빛이나 즐거워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 등을 돌리는 점은 과거의 꿈과 같았다.
다른 것은, 바다에서 그 빛나는 육지를 올려다보기만 했었는데, 왠지 그 육지에 서서 그때까지 있던 어두운 곳으로 눈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칠흑의 저편에서 밀려올 무언가를 요격하려는 것처럼.
등진 불빛을 이번에야말로 지키려는 것처럼.
게다가, 과거에 꾼 꿈은 예외 없이 저 혼자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었다.
자기 혼자가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막연했다. 알 듯 말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 이외의 누군가와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꾼 제게 카즈키는 깜짝 놀랐다.
고작 꿈인데.
아니――이 섬에서는 어떤 바다의 비전을 보는지가 큰 의미를 가진다.
그것을 잘 알기에 느끼는 놀람이었다.

――이제 바닷속에 있지 않아.

마음이 지금까지와 다른 곳에 있다.

――정말로?

순간적으로, 믿어도 될지 알 수 없어서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이내 등 뒤에서 닿는 빛이 더해져서 어두운 ‘희미함’을 밀어냈다. 그때까지 구별이 가지 않았던 다다미와 바닥이 어두운 곳에서 천천히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른 자신으로 변했어.

카즈키는 아무래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고 깨달았다.


카즈키가 옷을 갈아입고 2층의 제 방에서 1층으로 내려가자, 벌써 부친인 후미히코가 일어나 거실 바로 옆에 있는 작업장에서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울퉁불퉁하니 거칠어 보이는 부친의 두 손은, 항상 그렇지만 매끄러운 손놀림으로 진흙덩이를 대단히 말끔한 형태로 다듬고 있다. 늘씬하지만 근육질이라 투박한 인상인 부친의 손에서 용케 저렇게 섬세한 게 생겨난다고 카즈키는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안녕, 아빠.”

카즈키는 거리낌 없이 말을 걸었다.
후미히코는 아마 대단히 집중했을 테지만, 말을 건 것만으로 작업이 흐트러진 적은 적어도 카즈키가 아는 한 한 번도 없다.

“잘 잤니. 오늘부터 새 학기구나.”

그렇긴커녕, 얇게 다듬어진 그릇에 양손을 가만히 댄 채 흘긋 이쪽을 보고 눈부신 듯이 미소짓기까지 해 보이는 것이다.
카즈키가 점점 더 감탄해서 웃음으로 답하는 것을 제쳐두고, 더 거리낌 없는 목소리가 주방에서 날아왔다.

“후미히코 군, 슬슬 손 씻어줘. 밥이야.”

그러자 후미히코는 카즈키를 향해 먼저 가라는 듯이 턱을 살짝 움직이고

“네, 아카네 씨.”

라고 큰 소리로 답한 뒤 만들기 시작한 것의 마무리에 들어갔다.
카즈키는 아버지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주방에 가서 모친의 곁에 섰다.

“안녕, 엄마. 나도 도울게.”
“잘 잤니. 그쪽에 있는 국 좀 저어줘.”
“응.”

카즈키가 된장국을 젓는 사이에도, 모친인 아카네는 재빨리 밥과 반찬을 준비해버린다. 후미히코와는 다른 의미로 재주가 좋다. 후미히코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서 주변을 신경 쓸 수 있는 것에 비해, 아카네는 뭐든 동시에 병행해서 처리해버린다. 세 개 있는 가스레인지는 항상 풀가동이고, 주방은 식기와 조미료로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다. 아침을 위해 몇 가지나 준비하면서 점심으로 먹을 카레를 만들 뿐만 아니라, 소금겨 절임이나 자잘한 과자를 만들 준비까지 하고 있다.
섬에 하나뿐인 레스토랑이랄까 카페의 셰프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한번은 그렇게 요리를 하는 도중에 주방에 다리미판을 놓고 가족 전원의 제복 주름까지 펴줬다.
후미히코는 도저히 아카네를 따라갈 수 없다고, 쓰레기 버리기나 바닥 걸레질 같은 자신의 분담이라고 할지, 역할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아카네가 해버리기 때문이다.
카즈키는 자기도 아카네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때때로 시도하지만, 지금까지는 3분의 1도 해내지 못했다. 모친이 실은 세 명 정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런 아카네의 엄청난 가사처리를 보다 보니, 섬 방공대의 대장이자 에이스라는 것도 자꾸 잊게 된다. 저도 모르게, 방공대원에게 엄격하게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도시락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상상해버린다.
그런 까닭에 카즈키가 된장국을 담은 대접과 고작 절임 접시를 식탁에 늘어놓는 사이에 아카네가 다른 준비를 전부 끝내버렸다.
일을 일단락 짓고 손을 씻고 온 후미히코가 예의바르게 앉아 말했다.

“잘 먹을게요, 아카네 씨.”
“네. 맛있게 드세요, 후미히코 군, 카즈키.”

아침 의례라고 해도 좋을 인사이지만, 아무래도 카즈키로선 해마다 낯간지러워져서 견딜 수 없다. 하여간 부모가 지금도 씨, 군을 붙여서 부르니까. 두 사람이 대단히 사이좋은 것은 환영하지만, 친한 사이에도 예의가 있다기보다 젊은 남녀가 이제 막 상대에게 이끌리는 모습 같다. 덕분에 보면서 곧잘 민망해지기도 했다.
덧붙여서 이 집에서 사용하는 식기는 전부 후미히코의 수제다. 이쪽은 아카네가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어느 그릇이나 근사한 만듦새였다. 부친이 그릇을 만들고 모친이 거기에 식사를 담고 아들이 먹는다.
너무 빈틈없어서, 도리어 가끔 가출이라도 할까 싶을 때도 있다. 정말로 그러고 싶다는 건 아니고, 만약 카즈키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면 후미히코와 아카네는 섬의 전 시스템을 써서 수색하리라. 그게 아니라, 요컨대 자신이 없음으로써 부모의 시간을 늘려주고 싶다는 대단히 복 받은 의미로 무료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 부모의 금실을 오늘도 크게 목도하면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정리한 뒤 등교 준비를 했다. 현관에 나와 신발을 신고 돌아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후미히코와 아카네가 복도에 서서 서로 기대고, 마치 이제 아들이 긴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절절한 기쁨에 찬 눈빛으로 카즈키를 배웅하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새 학기 때마다 부모는 이렇게 된다. 고작 학년이 바뀌는 것만으로, 보통 이렇게까지 축복의 눈빛을 향하는 법일까.
기쁘기는 하지만, 어쩐지 철이 듦에 따라 부끄러워져버린다.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하고 어린애의 입장으로 말할 뻔 하게 된다.
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카즈키는 고분고분 말했다.

“저기,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오렴.”

짧은 인사에 만감을 담아 배웅하는 부모를 두고 카즈키는 현관을 나섰다.
집 앞의 가파른 돌계단을 건강한 다리와 허리의 도움으로 척척 올랐다. 금세 완만한 길로 나와서 학교로 향하는 길을 나아간다. 이윽고 샛길로 접어들면, 대충 지금쯤 오겠지 하고 예상한 대로

“타이밍 딱 맞네.”

웃음을 품은 달콤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안녕, 토오미.”

카즈키는 놀라지도 않고, 어째선지 대개 여기서 맞닥뜨리는 토오미 마야에게 마주 미소 지었다.

“안녕, 카즈키 군. 오늘도 아마 여기서 만나겠지 했더니, 역시 맞았어.”
“나 알기 쉽나 보네.”
“아니. 새 학기니까, 약간 평소랑 다른 느낌으로 아버지 어머니한테 배웅받지 않았을까 하고. 우리 집도 그랬으니까.”
“토오미네 아버지는 다정하니까.”
“정말 과보호야.”

마야가 한숨을 섞어 말하며 웃었다. 마야의 부친은 금발 벽안의 댄디한 모습과 더불어, 전에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딸을 걱정한 나머지 자전거로 학교 주변을 얼쩡대다가 아동으로부터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신고당한 일로도 유명하다. 마야 때도, 마야의 언니 때도 그런 소동을 일으켜서 어머니가 학교까지 사과하러 왔었다.

“오늘도 있지, 같이 학교까지 가겠다기에 언니랑 엄마가 말려줬어. 유치원생도 아니고, 이런 작은 섬에서 무슨 일이 생길 리 없다고.”
“상상이 가.”

카즈키는 웃으며 답하고, 그 뒤에 이렇게 물었다.

“토오미, 혹시 오늘 거울 같은 거 봤어?”
“에헤헤……나도 모르게. 역시 이상한가.”

머리를 긁적이는 마야에게 카즈키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새 학기가 될 때마다 온 세상의 모든 게 변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들어. 거울을 보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내가 거기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봤는데, 틀림없이 평소의 내가 있어서……좀 아쉽고, 꽤 안심했어.”
“그 얘기, 몇 번 들어도 토오미 답다고 생각해.”
“아이참―. 아직 덜 컸다는 소리 같아.”
“아니야. 난, 반대로 뭔가 달라진 기분이 들어서 바로 못 일어났어.”
“달라져? 뭐가?”
“마음속의 뭔가가. 아마, 앞으로 1년 남아서가 아닐까.”
“응…….”

마야가 수긍했다. 타츠미야 섬에는 현재 중학교까지밖에 없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섬이나 주변 군도에서 일하게 된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평화가 이어지고 있으니 고등학교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모양이지만, 카즈키 세대로서는 어른들처럼 일이――임무가 주어지는 것을 슬슬 각오해야 할 시기였다.

“카즈키 군은 어떡할 거야?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일을 하려나.”
“글쎄……. 그치만 적어도 이 섬에 있을 거야.”

그렇게 답하자 마야가 기쁜 듯이――그야말로 약간 안심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다행이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날아왔다.

“마야! 카즈키 군! 안녕―!”

세련된 단독주택 앞에서 숏커트 소녀가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있다. 카즈키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상당히 거리가 있었지만,

“안녕!”
“안녕, 쇼코!”

상대에게 질세라, 카즈키와 마야가 큰 소리로 인사를 돌려주었다.
쇼코가 손을 붕붕 흔들며 이쪽으로 달려오기에, 카즈키와 마야도 저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좁혔다.

“안녕!”

달려온 쇼코가 마야에게 안겨들면서 인사를 거듭했다.

“잠깐, 쇼코, 그렇게 급하게 뛰어도 괜찮아? 어디 아프진 않아?”

마야가 황급히 쇼코를 떼어내면서 물었지만, 카즈키가 보기에 쇼코는 건강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때는 몸이 약해서 학교에서 제대로 오지 못했지만, 중학교로 진급한 즈음부터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져서 지금은 운동부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을 꺼낼 정도다.
실제로, 이전 학기가 시작됐을 때는 계속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서 숏커트를 하고, 그때까지 결석하는 게 당연했던 체육 수업에도 나오게 되었다.
쇼코가 달려왔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그 집 앞을 지나가면, 현관 앞에서 쇼코의 어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다녀오렴.”
“다녀올게요, 엄마!”

쇼코가 활기차게 답하고, 카즈키와 마야도 각자 인사했다. 쇼코 어머니의 눈가에서 눈물이 빛나는 것을 카즈키도 마야도 놓치지 않았다. 몸이 약했던 딸이 이런 식으로 건강하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됐으니,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셋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아가는 사이, 이번에는 소년이 용수로 울타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등하굣길을 함께하는 멤버 중 네 명 째에게 카즈키는 손을 흔들었다.

“코요.”

소년이 일어나 세 명에게 손을 흔들었다. 호의적인 얼굴이라는 것의 견본 같은, 섬 아이들이 코요 스마일이라 이름붙인, 한방에 모두를 안심시키는 웃는 얼굴이다.

“집에서 일찍 나왔어?”

카즈키가 뜻밖이라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언제나, 코요는 부모와의 아침식사 시간을 중요시하기에 합류가 늦는 경우가 잦았다.

“부모님이 아침부터 올해 준비를 하고 있어서.”

코요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코요의 생일 축하를 부모가 몰래 준비하려다, 결국은 코요에게 들켰다는 것이다. 코요로서는 계속 모르는 척해야만 해서, 그게 한계에 이르기 전에 집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넷이서 아침 인사를 나누며 코요가 상냥하게, 지극히 자연스럽게 쇼코 옆에 나란히 서는 것을 카즈키도 마야도 이 또한 놓치지 않았다.
코요나 쇼코나 섬 아이들 사이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두뇌파로, 학교에서 남녀 각각 표시되는 성적 1위는 거의 확실하게 두 사람이 획득한다.
더불어 코요의 경우, 성의 넘치는 마음과 웃는 얼굴과 언변 때문에 셀 수 없는 여자들의 인기를 독점하지만, 그것을 으스대는 일도 없다. 친절하고 정중한 박애에 찬 몸가짐과 천재적이라고 해도 좋을 기억력으로 어느 여자와도 균등하게 거리를 유지한다는 묘기를 해치우는 것이 코요였다.
그리고 그 코요의 낌새를 바꾼 것이, 건강해진 쇼코의 존재다. 처음에는 그때까지 별로 학교에 오지 않았던 쇼코를 코요가 배려한다는, 평소의 박애정신에서 나오는 행동이리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쇼코가 누구의 도움도 빌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건강해짐에 따라, 점점, 코요 쪽이 어떻게든 쇼코 곁에 있을 이유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을 제일 먼저 간파한 것은 마야로, 카즈키도 지금은 코요가 간직한 마음이 누구를 향하는지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쇼코 쪽은 의외로 둔감하다기보다, 여태까지와 다른 자신의 건강을 기뻐하는 데에 바빠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카즈키가 보기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봐도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라 흐뭇하게 지켜보고 싶은 기분이지만, 마야 쪽은 코요와 쇼코의 화제가 나오면 어쩐지 어두운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폭풍이 일어날지도.”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마야가 엄숙하게 중얼거린 예언 같은 말을 카즈키는 떠올렸다. 코요가 좋아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표명하게 됐을 때 어떻게 될까. 코요가 쌓아온 박애의 평화가 무너지고, 여자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땅을 적시고 질투의 폭풍이 몰아치지는 않을까――.
그러나 폭풍의 중심이 될 쇼코를, 그야말로 당연히 코요가 지키리라고 카즈키는 낙관적이다.
하지만 마야는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폭풍은 몇 단계로 나뉘어 일어나리라 예측하고 있었다.
당연히 첫 폭풍은 코요가 고백했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만약 쇼코에게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코요에게 실연을 초래한 존재로서 제2의 폭풍의 중심이 된다. 게다가 쇼코가 그 속내의 사람의 이름을 입 밖에 내면 제3의 폭풍이 발발하리라――.
그 마야의 생각을 들었을 때 카즈키는 깜짝 놀라버렸다. 하여간 상대는 그 코요다. 쇼코가 얼마나 특수한 연애관을 가졌든, 이 섬에 코요에게 필적할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가 카즈키는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마야는 바로 지금 불안이 확신으로 변했다는 듯이, 넷이서 사이좋게 등교하면서 흘긋흘긋 카즈키에게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다.
카즈키는 마야가 말하는 폭풍이 일어나리라고는 믿기지 않고, 다름 아닌 자신이 휘말리리라고도 생각지 않기에,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 라는 미소를 마야에게 돌려줄 뿐이었다.
그리하여 넷이서 학교로 향하는 사이 또 다른 길에서 다섯 명 째가 나타났다. 그런가 싶더니, 그 녀석이 책을 한손에 들고 뭔가 중얼대면서 카즈키 일행을 알아채지 못하고 척척 걸어가려 하기에,

“야―, 소우시.”

카즈키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우시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책을 탁 덮어서 가방에 넣더니 빠릿빠릿한 태도로 네 명을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카즈키, 코요, 토오미, 하자마. 무슨 볼일이라도?”

소우시가 너무나도 곧이곧대로 묻기에 순간적으로 다들 걸음을 멈추긴 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어조는 정중하지만, 까딱하면 왜 말 걸고 그래, 라는 것처럼 들려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건 딱히, 소우시라는 소년이 섬에서 가장 잘난 부모를 두고, ‘상처 하나 없는’ 반듯한 얼굴에 세련된 기품을 띠고 귀족적이라 해도 좋을 남을 내려다보는 태도가 몸에 배 있으니까――라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그저 오로지, 진지하다. 코요와는 전부 극과 극의 의미로.
어떤 일에 대해서도 성실하고, 타협은 일절 하지 않고 아무리 시시한 농담이라도 한줌의 진리가 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는――그런, 편하게 접하기에는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마주했을 경우 이만큼 성가신 상대는 없다. 부모의 지위도 있어서, 실로 다가가기 힘들다고 생각되기 쉬운 게 소우시이지만, 본인은 박애주의라기보다 전 인류는 동등하게 동포이자 누구의 의사도 존중해야 한다고 믿기에, 자신이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조차 와 닿지 않는 구석이 있다.
 부모끼리 친하기도 해서 그런 소우시와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도 마주해왔던 카즈키는

“뭐 읽고 있었어?”

상대가 이후로 가장 대화를 이어가기 쉬울 화제를 건네면서 소우시에게 다가갔다.

“여름축제를 대비해서 그 풍습이 어떤 식으로 생겨난 건지 알아두려고.”

소우시가 말했다. 카즈키에게 맞춰 전원이 다시 학교를 향해 걸어나가고 있었다.

“봄이야, 지금.”

카즈키가 지적하자

“그 다음에 여름이 와.”

대단히 진지하게 소우시가 말했다.

“넌 이제 학생회장이 아니잖아.”
“켄지가 순조롭게 규정 표수에 도달해줬으니까. 나도 꽤 협력했지.”

켄지는 여태까지 때때로 카즈키에게 ‘대결’을 신청했지만, 무사히 학생회장 자리를 획득하고 친우인 마모루를 부회장으로 앉힌 뒤, 더불어 줄곧 좋아했던 사쿠라에게 고백함으로써 그야말로 전성시대를 누린다고 할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아마 두 번 다시 대결을 신청해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면, 카즈키로서는 약간 아쉬운 기분이기도 하다. 켄지가 대결을 신청할 때마다 소우시는 단지 자기가 붙어야 할 쪽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카즈키에게 걸었다.

“그럼 축제 일은 켄지한테 맡기면 되잖아.”
“서기를 해주지 않겠냐고 켄지가 부탁했거든. 어쨌든 축제라는 이름의 의식 진행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섬에서도 몇 안 되니까.”

몇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너뿐이겠지 하고 카즈키는 말하려다 말았다.

“기대되네, 축제.”

대신 그렇게 말해주자

“그래. 성공을 약속할게.”

철저하게 진지한 소우시를 보고 다들 약간 어이없어하면서도 미소 지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아이들이 모이는 교문을 지나 학교 건물 현관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카즈키는, 어떤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타이밍엔가 그것이――온 섬에 퍼지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순간이 찾아오리라.
하지만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학교 건물로 들어가자 그곳은 이미 평범한 공간이 아니었다.
금속 벽으로 덮인 통로가 복잡하게 분기된――섬의 내부였다.
몇 갈래로 나뉜 길 앞에서 다섯 명이 멈춰 섰다. 깨닫고 보니 다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앞으로 뭘 손에 넣게 될지는 통로에 따라 다르리라고 카즈키는 생각했다.
그런가 싶더니, 코요와 쇼코가 각자 카즈키의 손을 잡듯이 하고 고했다.

“나 갈게, 카즈키 군.”
“나도. 또 봐, 카즈키. 저편에서 만나자.”

두 사람이 카즈키의 손을 놓았다.

――어디로 가는 건데. 저편이 어딘데.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코요와 쇼코가 미소 지으며 통로 중 하나로 나아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카즈키와 마야와 소우시 셋이서 말없이 배웅했다.
이윽고 소우시가 통로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이쪽이야. 토오미, 넌?”
“난 아직 좀 더 여기 있을지도. 그 뒤에 아마, 저쪽으로 갈 것 같아――.”

마야가 또 다른 통로로 얼굴을 향했다.
소우시가 그렇겠지, 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는 네 역할이 있어, 토오미.”

카즈키로서는 어느 통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듯 말듯했다.

“저기, 돌아갈 수 없을까? 우리……여기서 되돌아가서 원래 있던 곳으로――.”

저도 모르게 묻자, 마야도 소우시도 말없이 카즈키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두 사람 다 말없이 고하고 있었다.

“난 네가 올 거라 믿어.”

소우시가 여태까지 이상으로 진지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돌려 자신이 가리킨 통로를 똑바로 떠나갔다.
카즈키는 그 등을 뒤쫓으려다――말았다. 제가 소우시와 같은 길을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도리어 소우시를 방해하게 돼 버린다. 그보다도, 코요가 말했듯이 저편에서 만나야 했다. 정말로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시 해후할 것이라 믿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나도 가야 해.”

그렇게 입 밖에 냈을 때, 통로는 똑바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긴 통로 이편과 저편이 자신과 마야가 각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걸 깨달았다.

“응. 다녀와, 카즈키 군.”

마야가 쓸쓸한 듯이 말했다.

“나, 저편에서 기다릴게. 카즈키 군이 언젠가 돌아올 곳에서.”

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야가 반드시 그리 해주리라는 안심 덕분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하지만,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녀올게.”

카즈키는 마야에게 등을 돌렸다.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면서――마야의 시선이 줄곧 향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이건 요컨대 기체의 블랭크 모드 중에 꾸는 꿈일까, 하고 생각했다.
모든 게 유리한, 너무 잘 만들어진 꿈.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서 걸음이 흐트러졌다.
아니, 다르다.
틀림없이 유리한 꿈일지도 모른다. 있기 바랐던 모든 것을 긁어모은, 거짓으로 찬 평화로운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꿈이 생겨났는가 하면, 제 마음이 한 번 조각났기 때문이다.
예전에 쇼코가 말했듯이.

그렇게 해서 올바른 형태로 잘 태어나지 못한 내가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다음에는 바른 형태로 태어나길 기도하면서. 내가 뿔뿔이 흩어진 작은 낱알이 되어 사라져가는 걸 상상하면, 굉장히 안도하게 돼――.

마음이 세계와 함께 정말로 뿔뿔이 조각남으로써, 도리어 올바른 형태를――진심으로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형태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령, 그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더라도――올바른 형태를 모르면 뭐가 일그러졌는지도, 뭘 잃었는지도, 이내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섬을 만든 것이다.
카즈키는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어른들이 거짓으로 찬 낙원을 만든 이유――그것은 결코 기만이 아니다.
도피도 아니다. 자기들만 평화로우면 됐다고, 아무데도 없는 섬을 만들어내서 그 안에 틀어박힌 게 아니었다.
뭐가 슬픈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뭘 잃었는지를, 모두가 계속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뭐가 아름답고 뭐가 추한지 모르게 되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옳다고 생각되는 뭔가가 아무데도 없으면 뭐가 틀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평화라는, 그들이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섬에 모아서 계속 지켜주었다. 그리고 파프너를 만들었다. 보물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용의 화신인 기체를.
카즈키는 제 마음의 낱알이 모여서, 간신히 그래야 할 형태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직 뭔가가 크게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이내 그것을 알아채고 시간을 들여 조금씩 고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형태를.
자연히 눈물이 배어났다.
전혀 흐르지 않아서 그만큼 괴로웠는데,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난 불빛 쪽에 설 거야.

예전에 쇼코의 등 뒤로 어렴풋이 빛나는 불빛 무리가 펼쳐지는 것을 봤을 때는, 평화라 불리는 뭔가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쪽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는 불빛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제 등 뒤에서 항상 올바른 형태로 빛나면서, 자신이 어둠에 맞서려면 어쩌면 좋을지 가르쳐주고 있었다.

――난 여기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을 때, 통로가 끝나고 그 너머의 공간에 우뚝 솟은 것이 보였다.

――스스로, 그렇게 정했어.

여태까지의 새까맸던 기체와는 완전히 다른, 백은의 기체.
마치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형태가 응축된 듯한 그것을 올려다봤을 때, 누군가의 손이 어깨에 닿는 것을 느끼고――꿈이, 끝났다.


“어서 와, 카즈키 군.”

옆에 앉은 마야였다. 카즈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형 수송기의 객석 스페이스다. 곧, 자신이 섬으로 돌아가는 도중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도착했어?”
“이제 곧 도착한대.”

마야가 창문을 가리켰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대는 해가 진 뒤라고 한다. 하지만 카즈키는 마야가 가리키는 방향을――자신이 대치해야 할 어둠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토오미……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마야가 빤히 제 옆모습을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떠오르는 것을 마야라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알아채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토오미 덕분에 섬에 돌아갈 수 있어.”

물론 그것은, 그저 데려간다는 것이 아니다. 뭐가 옳은지도 모르게 되어버린 마음이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으응. 고마워. 돌아와줘서――.”

달콤한 목소리로, 약간 목이 멘 듯이 마야가 말했다.
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으면서, 눈 아래의 어둠에 뿔뿔이 흩어진 조그만 입자가 무수히 떠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목숨이나 마음 같은 것들이, 영원히 불멸하고 계속 해후할 수 있다고, 지금이라면 소박하게 믿을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조금 무서웠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에게밖에 없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갔을 때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지만, 변한 자신을 적극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특히,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소우시에게 전하고 싶었다. 소우시가 본 걸 자기도 봤다는 것을.
그런 마음을 품다니, 하고 놀라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고양되어 있다. 모든 것이 처음인 것 같으면서도, 옳다고 믿을 수 있었다.

――난, 여기 있을 거야.

꿈속에서 생각한 것을, 조용한 용기를 담아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스스로, 그저, 그렇게 정했어.


15살, 여름――전쟁 한가운데.
우리는 모두, 거기 있었다.



『창궁의 파프너 After All Alon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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