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번역. 정식번역판이 나오면 삭제합니다.

 

 

 

Preface of 창궁의 파프너 “HEAVEN AND EARTH”

우부카타 토우

 

 

 

3

 

 

완전히 몸단장을 마쳤을 때, 불현듯, 산에 가보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빨리 준비해봤자 어차피 후미히코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에 식어버리리라.

카즈키는 냉장고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거의 눈을 감은 채 식칼로 껍질을 깎았다. 말끔하게 8조각으로 썰어 심을 뺀다. 조식까지 잠깐 때우는 것이다.

주방에 선 채 두 개 정도 먹고, 반을 후미히코가 일찍 일어났을 때를 위해 접시에 담아두었다. 그렇게 해서 남은 두 개를 손에 든 채 신발을 신고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늘 있던 곳에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양동이 안에는 삽이 들어있다. 후미히코가 산에서 흙을 파오기 위한 것이다. 그걸 비어 있는 쪽 손에 들고 사과를 우물대며 뒤뜰을 나와 성큼성큼 돌계단을 올라갔다.

생각보다 날씨가 좋은지, 어렴풋한 흑백의 시야라도 상당히 경치가 잘 보였다. 눈을 감아도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의식해서 지형을 기억하려 하면서, 시력이 나쁜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빠른 걸음으로 뒷산에 들어가 버렸다.

원래부터 신체감각이 터무니없이 발달한 탓에, 넘어지는 법이 전혀 없다. 지면의 요철도, 단차도,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감각만을 의지해서 스르르 넘어가 버린다.

산길로 들어가면, 나뭇가지가 몸에 닿는 것으로 대강 발치의 상황도 알아챌 수 있었다.

가지가 있다는 것은 지면에 뿌리가 있다는 뜻이다. 자연히 다리가 반응해서 걸려 넘어질 것 같은 곳을 휙휙 피해버린다. 원래부터 유전학적으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췄다고는 해도, 그 몸을 구사하는 것은 틀림없이 카즈키의 특성이다.

그렇더라도 물론, 혼자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산에 들어가면 카즈키의 시력이 쇠약해진 걸 아는 이는 크게 걱정하리라. 치즈루와 마야에게는 혼날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 제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두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눈에 의지하지 않고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가, 라는 것에 크게 흥미가 솟기도 했다.

일단 멈춰서서 방향을 감지했다. 등 뒤에 있을 자택을 향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사면의 기울기를 대강 알 수 있었다. 아침의 냉기를 피부로 느낌으로써, 조만간 공기의 느낌만으로 시각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잎이 흔들리는 소리로 주변 경치를 상상할 수 있었다.

마치 쇼코와 처음 파프너 탑승 훈련을 했을 때 같다, 고 생각했다.

그때는 몸이 약한 쇼코에 맞춰서 천천히 이동함으로써 그때까지 눈에 담지 않고 지나쳤던 경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그리움과 슬픈 기억이 가슴에 닥쳤을 때――

전방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방향으로 봐서 산길은 아니다. 나무들 사이를 통과해 잡초를 가만히 밟으면서 걸어온다.

이런 시간에 산에 있는 인간은 없다.

오늘 아침에 꾼 꿈 탓에 투명한 푸르름이 갑자기 뇌리에 되살아났다.

어쩐지, 생명이 넘치는 바다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 심상의 소유주가 바로 지금 다가오고 있다는, 이론을 넘어선 실감이 어디서인지 모르게 솟아왔다.

두근, 하고 가슴속이 고동쳤다.

평소에는 너무 괴로워지는 탓에, 가만히 마음속에 갈무리해두고 있는 기대의 마음이 갑자기 부풀어온다. 이성으로는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역시 마음은 기대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기대에 휘둘리다 보면 조만간 마음이 어떻게 돼버릴걸, 하고 이성이 충고하는 것도 무시하고――

그만, 입을 열었다.

 

“――소우시?”

“츠바키?”

 

절묘하게 자신과 상대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카즈키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기보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풀숲에서 나타난 상대를 보았다.

흑백의 어렴풋한 시야에 깜짝 놀라서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애의 모습이 있었다.

줄곧 눈을 감고 있었던 것과 나무 그림자 탓에 얼굴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카즈키 선배?”

 

기겁한 듯한, 타테가미 세리의 목소리다.

 

“타테가미구나.”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왜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 있지? 산에 사는 건가? 같은 생각을 해버렸지만, 상대가 발한 이름 쪽이 더 뜻밖이었다.

 

“츠바키라니…….”

“어? 어째서? 소우시 선배라고――.”

 

또 두 사람 동시에 말했다. 어쩐지 서로 묘하게 얼굴을 붉히고

 

“아니, 그냥…….”

“아, 저기, 그냥――.”

 

이번에는 두 사람 동시에 침묵했다.

아무래도 타이밍이란 타이밍이 다 겹치는 것 같다. 카즈키는 일부러 한 박자 쉬기 위해 세리가 양손에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몇 개나 되는 상자――라고 판단한 뒤 아, 벌레통인가, 하고 대충 상대가 왜 여기 있는가 하는 이유까지 알아챘다.

 

“이런 시간부터 곤충채집이야?”

“이렇게 아침 일찍, 흙 파는 거예요?”

 

또 겹쳤다. 아무래도, 상대도 굳이 한 박자를 쉬면서 카즈키의 소지품으로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 완전히 정면충돌이다. 사고회로가 비슷한 건지 어쨌는지, 대화를 이어가는 게 힘들기 짝이 없다.

그런가 했더니

 

“앗, 카즈키 선배도 참!”

 

이번엔 제 차례니까요, 라고 양해를 구하는 듯한 큰소리로 세리가 말했다.

 

“눈이 안 좋은데 위험하잖아요! 혼자서, 이런 시간에!”

 

갑자기 나무라기 시작했다. 상대가 토오미 선생이나 마야였다면 카즈키도 여기서 좀 기가 죽어서 상대 페이스가 될 참이었지만

 

“아니, 괜찮아.”

 

손쉽게 되받았다.

 

“타테가미야말로 위험하잖아. 어두울 때 온 거야?”

“괜찮아요. 저는 이게 있으니까.”

 

약간 발끈해서 세리가 말한다. 끌어안은 상자 아래서 딸깍딸깍 뭔가를 울리며 불을 켰다 껐다 해 보인다. 회중전등이다.

 

“필수 아이템이잖아요, 카즈키 선배?”

 

왜 그런 것도 안 가져온 거예요, 라는 캠프에 익숙한 아이 특유의 자신만만한 반 질문 어조로 말했다.

 

“내가 가져와봤자 의미가 없으니까.”

 

또 손쉽게 되받는다.

 

“아, 그런가. 어……그럼 역시 안 보이는 거잖아요!”

 

세리는 사고 과정을 그대로 입 밖에 내면서 외치고, 뒤이어 마이동풍으로 넘어가게 두지 않으려고

 

“토오미 선배한테 일러버릴 거예요.”

 

절대적인 효과를 확신한 태도로 나직이 공언했다.

 

“아니, 잠깐만.”

 

과연 그건 곤란한 기분이 든다. 딱히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은 없지만, 돌고 돌아서 대단히 거북한 상황을 불러올 확신이 있었다.

가령,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집 뒷문으로 나가 보면, 어떻게 안 건지 묻고 싶어질 만한 타이밍에 마야가 거기 있다거나. 게다가 양동이와 삽을 들고. 말로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 솔선해서 도우러 오는 것이다. 그러는 편이 카즈키가 마음이 불편해져서 결과적으로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어쩌다 오늘만 이런 거야.”

 

사실이지만, 제가 생각해도 굉장히 거짓말 같았다.

 

“과연 그럴까요.”

 

역시 세리는 전면적으로 의심하고 있다. 벌레통을 잔뜩 든 채 다가와서 한쪽 손으로 카즈키의 비어있는 쪽 손을 잡았다.

 

“어쩔 수 없다니까. 자, 오늘만 도와줄게요. 어디로 갈지 알려주세요.”

 

이쪽도 말해봤자 소용없는 걸 알았는지, 대신 손을 이끌어주려는 것 같다.

 

“아니, 괜찮아.”

 

그다지 감사도 하지 않고, 붙잡힌 손을 붕붕 흔들어서 필요 없다는 것을 어필하지만

 

“무슨 소리예요, 위험할 게 뻔하잖아요.”

 

말 안 듣는 개의 목줄을 힘으로 잡아당겨서 길들이려는 것처럼 억지스럽게, 카즈키의 손을 힘차게 이끌며 산길을 오르려 한다. 갑자기 뿌리치면 오히려 상대가 넘어질 것 같아서 몇 걸음 정도 맞춰 나아가는데, 갑자기 시야 위쪽으로 가지 같은 그림자가 보였다. 가지가 있다는 것은 뿌리가 있다는 뜻이고, 어쩌면 지면 밖으로 뿌리가 나와 있을지도 몰라서

 

“발밑 조심해――.”

 

카즈키 쪽이 경고한 바로 그때, 세리가 넘어졌다. 한쪽 팔로 벌레통을 안고 발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완전히 나무뿌리에 발이 걸렸다.

 

“응……아――앗?”

 

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멀어지는 세리의 손을 순간적으로 급히 고쳐 잡았다.

그 손을 잡아당기면서 잽싸게 앞으로 나와 양동이를 든 쪽 팔을 상대 정면으로 돌리고 가뿐히 받아내 준다. 세리의 팔에서 떨어진 벌레통이 지면에 도달하기도 전인, 세리 입장에서는 뭐가 뭔지 모를 재빠른 솜씨다.

뒤늦게 벌레통이 우당탕 지면에 굴렀다. 회중전등을 든 세리의 오른손이 지면에 닿기 직전에 허공에 멈췄다. 왼손은 뒤로 잡아당겨져 있고, 배는 카즈키에게 받쳐져서 아이스 스케이트 선수의 스타트 대시처럼 앞으로 숙이고 다리를 뻗은 채 엉덩이를 내민다는, 몹시 참신한 포즈로 피니시한 같은 꼴이었다.

 

――어째,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아득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번츠벡 안이었던가. 급발진하는 해중 열차에서 넘어질 뻔한 쇼코의 크게 당황한 얼굴이 되살아나 조금 슬퍼졌다.

하지만 물론 세리 쪽은 그런 카즈키의 마음은 알 바 아니고

 

“어, 잠깐……내려줘요, 내려줘요! 항복, 항복!”

 

거미줄에 걸린 메뚜기처럼 가느다란 팔다리를 버둥대고 있다. 깨닫고 보니, 힘이 지나쳐서 세리의 몸을 완전히 공중에 띄워버렸다. 그렇달까, 잡아당긴 쪽 팔이 관절기를 당한 것처럼 돼 있었다.

영차, 하고 상대의 상체를 들어 올리면서 놓아준 뒤

 

“괜찮아?”

 

충분히 염려하는 의도로 물었다.

하지만 세리는 아무래도 울상을 지은 채 얼굴이 새빨개진 듯

 

“거, 거봐요, 제가 그랬죠? 위험하잖아요?”

 

몹시 진지하게 자기가 도리어 화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 벌레통을 주워주고 있자니

 

“보이는 거예요?”

 

세리가 의표를 찔린 듯이 물어왔다.

지면에 흩어진 벌레통에 카즈키가 정확히 손을 뻗어서 놀란 모양이다.

 

“어렴풋하지만.”

 

사실은 벌레통이 떨어졌을 때 난 소리를 토대로 대충 이 근처겠지 짐작할 뿐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주는 게 편했다.

 

“그래도, 위험하다는 건 변함없으니까요.”

 

푹 하고, 카즈키의 속마음을 알아챈 듯이 못을 박으며 벌레통을 다 주운 뒤, 안에 있는 사슴벌레와 투구풍뎅이를 향해

 

“괜찮아? 아프지 않았어?”

 

라고 말을 걸고는

 

“그럼, 갈까요.”

 

다시 카즈키에게 동행할 것을 선언했다.

마야에게 고자질 당했을 때, 세리가 동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틀림없이 크게 반응이 다르리라고 예상되었으므로 카즈키도 거스르지 않았다.

대신 손을 이끌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바로 앞이야.”

 

성큼성큼, 넘어지지 않고 걸어 보인다.

 

“넘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넘어지는 법이에요―.”

 

좀 전에 제 몸으로 실현한 세리가 진지하게 말한다.

 

“넘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괜찮아.”

 

카즈키도 진지하게 답해줬다. 금세, 후미히코가 언제나 흙을 캐오는 곳 중 한 곳을 발견했다. 절벽 아래로 점토질 지층이 드러나 있어서 파기 쉬웠다. 손으로 흙의 감촉을 확인하고 삽으로 흙덩이를 척척 양동이에 던져넣으며

 

“왜, 미나시로 츠바키라고 생각했어?”

 

당초의 질문을 입 밖에 냈다.

 

“음…….”

 

세리는 조금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입을 떼면 올바르게 전해질지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한 태도로

 

“이 산에서 제가, 처음 만났거든요……츠바키를.”

 

라고 말했다.

 

“그렇구나.”

 

몸을 굽히고 상대에게 등을 향한 채 대강 이해해, 라는 느낌으로 수긍했다.

 

“카즈키 선배는……왜, 소우시 선배라고 생각했어요?”

 

세리가 약간 조심스레 되묻는다.

찰나, 카즈키의 뇌리에 맑은 파란색 이미지와 생명의 바다의 광경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글쎄, 왜일까.”

 

이론을 알 수 없는 부분은 그대로 내던지고, 솔직하게 답했다.

마야였다면, 여기서 소우시의 의지를 느끼는 거냐 든지, 미나시로 군이 보고 싶구나, 같은 말을 해주지만

 

“소우시 선배도 이 산에 왔었어요?”

 

세리의 주안은 어디까지나 행동에 있지, 심정이나 내면 같은 화제로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에 약간 안심하면서

 

“그 녀석은 거의 알비스에 있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줄곧 섬 안에서 지냈어.”

“그랬나요……. 힘들겠네요. 저였다면 그런 건 괴로울지도…….”

 

알비스 내부, 라는 이미지는 세리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얼마나 편리한지 세세하게 가르쳐주던걸.”

 

카즈키는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언제였던가, 소우시의 거처에 초대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대단히 살풍경한 방이면서, 소우시 본인은 한껏 생활감을 드러낸 의도였던 방.

출입구에서 음료수 자판기까지 몇 걸음이었더라.

벽에 사진도 걸려 있잖아, 라고 소우시는 진지하게 주장했다. 언젠가 마야가 찍은 사진으로, 그 안에는 코요도, 쇼코도, 마모루도, 소우시 본인도 있다.

소우시가 없어진 뒤 아무도 그 방을 쓰거나 정리해버리려 하지 않았다. 지금도 소우시가 있었던 때 그대로다. 언제 방 주인이 돌아와도 괜찮도록.

 

“……돌아오겠죠, 분명히.”

 

무심코 입 밖에 내면 카즈키에게 혼나는 게 아닐까 조심하는 듯한 태도로 세리가 말한다.

 

“꼭 그럴 거야.”

 

굳이 가벼운 태도로 답했다. 양동이 가득 흙을 채운 뒤

 

“미나시로 츠바키가 보고 싶어?”

 

일어서면서 같은 태도로 물었다.

기척으로, 세리가 약간 슬픈 얼굴을 하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돌아온 목소리는 몹시 밝고 씩씩하다.

 

“저, 항상 만나고 있어요. 츠바키를.”

“――코어를?”

 

섬의 중추에 잠든, 아직 어린, 도민들의 작은 신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리는 고개를 저으며

 

“그 애도 물론 그렇지만……하지만 츠바키 본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 이 섬 전부가 츠바키니까. 여기 있는 한, 저는 언제든 츠바키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슬픔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기쁨을 담아 전했다.

 

“그렇구나.”

 

카즈키도 약간 미소 지었다. 그 말 그대로라고 납득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런 기분이 들어.”

 

손에서 흙을 털어내며 동의했다.

 

“그쵸, 그쵸. 거봐요, 역시.”

 

세리는 진심으로 기쁜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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