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번역. 정식번역판이 나오면 삭제합니다.

 

  https://note.com/towubukata/n/n6b11a438e708

 

이쪽은 뉴타입 지의 부독본 『Newtype Library』가 간행될 때 새로 쓴 것입니다.

당시는 극장판 『창궁의 파프너 HEAVEN&EARTH』의 공개 전후였기 때문에 작품 세계나 인물 소개를 주로 하는 의도로 쓰였습니다.

또한 이야기상 큰 기복이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천하려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 부메랑 구조를 취함으로써 작중에서 주제가 완결되는 구조인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Preface of 창궁의 파프너 “HEAVEN AND EARTH”

 

우부카타 토우

 

 

 

17세, 여름――전쟁의 재래.

우리는 모두, 거기 있었다.

없어진 이들까지.

그러기를 계속 선택했다.

그 생명을 써서까지도――

 

 

 

1

 

 

“왜 그걸 선택해!”

 

카즈키의 입에서 솟구치는 세찬 외침이 기체의 크로싱을 통해 상대에게 내던져진다.

그 순간, 카즈키의 목구멍에서 오른쪽 가슴 속에 걸쳐서 아픔이 솟았다.

수많은 유리 파편을 삼켜서 안쪽에서부터 살이 찢기는 듯한, 갖은 날카로운 아픔이다.

목구멍 안쪽이――오른쪽 폐가 결정화하고 있었다.

아픔은 금세 사라지고, 또 다른 곳에 같은 아픔이 생긴다. 일단 통증을 느낀 부분은 두 번 다시 아프지 않다. 그렇긴커녕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어버린다.

적과의 싸움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증상이――육체적인 동화현상이――급격하게 진행하고 있는 증거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카즈키는 한층 기체와의 일체화에 집중하면서 분노를 있는 힘껏 담아 소리쳤다.

 

“아픔만 늘리는 신을 왜 거스르지 않아! ――쿠루스!”

 

동시에, 땅을 박차고 날았다.

뛴 것이 아니다. 비상했다. 어두운 하늘을 불러온 두꺼운 먹구름을 향해서. 타츠미야 섬의 하늘을 덮고 전 환경을 고사로 이끄는, 말 그대로 암운――적이 구축한 필드로.

그 암운 아래서 떠돌며 이쪽을 노려보는 거대한 적을 향해 똑바로 돌진해 갔다.

허공으로 뛰어올랐을 때, 몸속에서 우지직, 하고 뭔가가 파열하는 소리가 났다.

카즈키의 옆구리에서, 살을 뚫고 결정화한 내장의 일부가 튀어나온 것이다.

결정은 팔과 다리에도 생겨나 있다. 몸을 안쪽에서부터 찢기는 아찔한 격통에 휩싸이면서도, 카즈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전의로 가득 찬 외침뿐이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만큼 동화현상이 진행한 상태로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지금 눈앞에 닥쳐온 적이 그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결코 타서는 안 되는 기체에 카즈키가 탔기 때문이다.

잘바토르 모델에.

타츠미야 섬의 수호신으로 배치된 12기의 노퉁 모델의 중요한 설계 사상을 계승하면서, 완전히 이질적이고 여전히 미지의 현상을 초래하는 공전절후의 기체다.

일찍이 카즈키가 자기 전용 기체로 집착한 그 마크 엘프(11번기)가 해체되어 제조된 것으로, 당시의 기체 색이었던 칠흑의 몸체는 지금 은색에 가까운 순백의 반짝임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잘 보면, 흰 반짝임 속에 어렴풋이 아름다운 황금색과 무지갯빛을 띠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적의 색――페스툼의 반짝임을.

원래 노퉁 모델은 기체의 중추에 적과 동종의 코어를――‘미르의 조각’이라 불리는 것을――내장하고 있다. 그 정체 모를 물건을 심장부에 품은 덕에 적의 초 물리현상에 견디는 힘을 기체의 성능으로써 발휘하는 게 가능하다.

다만, 생명을 무로 되돌리는 힘이 충만한 기체에 타면서 인체가 영향을 받지 않을 리가 없다. 많은 파일럿이 적이 아니라, 다름 아닌 파프너가 초래하는 동화현상에 희생되었다. 카즈키는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말기증상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파일럿의 결정화한 육체가 안쪽에서부터 파열해서 산산이 조각나는 것이다.

남는 것은 약간의 결정물과 그 녀석이 있었다는 기억뿐.

지금은 기체와 파일럿 양쪽 면에서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도가 몇 개나 준비되어 있다. 개량이 거듭된 콕핏 블록이나 파일럿의 육체 유지를 위한 투약 같은 것이 인간을 아름다운 보석 파편으로 바꿔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잘바토르 모델을 제외하고.

이 괴물은 ‘미르의 조각’을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심장으로 삼고 있다.

적의 힘을 막는 게 주안이 아니라, 가능한 한 적 그 자체가 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의지를 가진 채로 어디까지 페스툼과 같은 존재가――아니, 그 이상의 힘을 가진 괴물이 될 수 있는가.

그런 기체였다.

주변에 있는 물질을――공기에 포함된 미세한 먼지까지 동화해서 폭발적인 에너지로 바꿔버리는 탐욕스럽고 흉포하고 분별없는 기체다.

이 기체 설계의 프로젝트 리더였던 남자를 카즈키는 섬 밖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남자는, 일찍이 타츠미야 섬의 일원이자 뛰어난 기술 주임으로, 게다가 토오미 마야의 부친이었다.

그리고 광기 일보 직전 같은 마음을 담아 기체를 ‘잘바토르(구세주)’ 모델이라 이름 짓고 적과의 싸움으로 없어졌다.

이후에는 기체만이 남겨졌다.

카즈키의 기체, 마크 자인이.

그 한 체만이――그럴 것이었다.

절대적인 힘을 초래하는 대신 올라탄 이를 먹어 치우려 호시탐탐 노리는 마크 자인에게 제 피와 살을 1초마다 바치면서, 카즈키는 접적의 일순에 마음을 집중했다.

암흑의 적을 향해 손에 든 무기를 휘둘렀다.

마크 자인의 오른손은 장대한 루거 랜스(전격창)를 완전히 동화시켜, 이미 본래의 장비와는 동떨어진 물건으로 변모시켰다. 그건 마크 자인의 일부이자, ‘미르의 조각’의 연장물이자, 격렬한 초 물리현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의 창이다.

그 창의 날 끝을 맹연히 휘둘렀다.

 

――돌아가지 못해도 상관없어.

 

통렬한 의지가 칼끝에 넘치는 것을 느꼈다.

 

――네가 돌아올 곳을 지킬 수만 있다면.

 

너무나도 특수해서 기수가 한 명밖에 없는, 특번기이자 ‘날뛰는 말’인 마크 자인이 카즈키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해서 그 탐욕스러운 힘을 적을 향해 마음껏 발휘했다.

적은 바로 정면에서 마크 자인의 창을 받아내려 했다.

반짝임이 있었다.

카즈키의 눈은 과거의 동화현상 후유증으로 이미 색채를 인식하지 못한다. 파프너의 시각 기능을 통해 간신히 뇌 내의 기억을 근거로 색채를 인식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복수의 초 물리현상이 동시에 발휘되어 격돌함으로써 생기는 황금색과 무지갯빛의 반짝임.

이 정도의 아름다움이 비극을 초래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기분이 스친다.

마음 대부분은 눈앞에 있는 적을 물리치는 데에 집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조각 희망이 솟는 것을 느꼈다.

마크 자인과 지금도 크로싱을 유지하고 있을 이 암흑의 적과의 사이에도, 아직 뭔가 이어질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늘과 바다가 융합하는 일선처럼――본래 전혀 다른 이들끼리라도, 아득히 먼 미래의 지평에서 다가서서 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통절한 희망.

그 덧없는 희망을 느끼면서도, 카즈키는 그저 상대의 존재를 먹어 치우기 위해 힘을 쥐어짜다, 갑자기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동화현상의 말기 증상이다.

 

끝을 의미하는 그 말을 마음 어딘가가 읊조렸다.

 

――소우시.

 

제 피와 살이 순식간에 생명의 열기를 잃는 것을 느꼈다.

육체 전부가 결정 덩어리로 변해 파열하기 직전, 거대한 암흑에 삼켜지는 감각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탐욕스럽지도 흉포하지도 않은 온화하고 따스한 어둠이다.

그리고 그 어둠 저편에 푸르고 맑은 반짝임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마치 꿈속처럼, 색채감각을 잃었을 카즈키의 시각 능력에 그것이 또렷이 인식되었다.

바다――

아니, 하늘이다.

모든 게 한데 녹아 있다.

제 존재가 마치 부드러운 요람 속에서 소중히 지켜지는 듯한 감각.

의식을 상실시키고 잠든 채 기체를 자동조종으로 돌릴 때 같은 안온함을 느꼈다.

아픔이 사라지고, 슬픔도 사라졌다.

서로 상처 입히기만 하는 날들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한 분노도, 그 날들을 맞이했으면서 동화현상의 후유증으로 제대로 싸울 수도 없었던 자신에 대한 분노도――깨끗이 사라져 간다.

모든 게 사라지고――그저 기억이 남았다.

잃어버린 동료들.

돌아오겠다고 한 친구.

그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평화로운 한때――언젠가 깨질 것을 겁내면서, 바로 그렇기에 모두가 가능한 한 온화하게 향유하려 한 소중한 평화.

언제 제 목숨을 써야 할지,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없어져야 할 순간인지, 그런 것을 적과의 대화 중에 계속 살피지 않아도 되는 안온함 속에 카즈키는 있었다.

믿어야 할 것은 친구의 귀환이지, 적의 재래가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타일렀던 시절의 자신이 거기 있다가――사라졌다.

 

 

 

2

 

 

꿈을 꾸고 있었다.

눈앞에 든 제 손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바다에, 철썩철썩 하고 파도 소리가 울린다.

카즈키는 혼자서 손발이 마비될 것 같은 차가운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헤엄치면서

 

‘이 꿈인가――.’

 

마음은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오랜만에 명상 훈련을 해서――.’

 

보더라인의 비전이 정신에 반향을 일으킨 모양이다.

파프너와 일체화하기 위한 마음의 훈련――자기 마음의 진상을 알기 위한 것이다.

‘보더라인(경계선)’이라 이름 지어진, 그야말로 현실과 정신의 경계에 나타나는 심상을 자기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알린다. 그럼으로써, 크로싱이라는 특수한 통신수단을 혼란하지 않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심상은 어느 것이나 바다의 이미지로 치환된다. 어떤 바다를 마음속에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인간이 현실과 어떻게 접하는지 안다, 는 것이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카테고리는 대개 5종류 정도로 나뉘는데, 육지나 배가 있어서 ‘바다 위’에 서 있거나, 아니면 ‘바다 표면’을 헤엄치고 있거나, 혹은 ‘바닷속’에서 수면을 올려다보고 있는 3종류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남은 두 가지는 좀 특수한데, 아득한 ‘바다의 상공’을 날고 있거나, 혹은 무시무시하게 깊은 ‘해저’에 잠겨 있는 구별이 있다.

구별은 알겠지만 대체 어떤 이론으로 뭘 알 수 있는지, 사실 카즈키는 아직 잘 모른다. 과거의 위대한 예술가들이나 작가들이 남겼다는, 보더라인 카테고리라 불리는 작품을 보고 읽으면서 특히 공감하는 것을 선택하시오, 같은 심리 테스트를 파일럿 선발 초기에 받은 적도 있었다.

작품은 전부 바다에 관한 것으로, 기분상으로는 『백경』이 꽤 재미있었다. 너덜너덜해져서 고래를 죽이려 하는 남자 이야기. 어쩌면 페스툼이라는 우주 저편에서 온 적을 쓰러뜨리려 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빗대면서 읽어서일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거의 알몸인 여신이 거대한 조개에서 나타난 그림이나, 대 해원을 헤매는 배 이야기나, 미쳐 날뛰는 바다를 이미지로 했다는 몹시 장대한 클래식 음악 같은 것을 감상 당하기도 했다. 어느 것이나 참 잘 만들어졌구나,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들었을까, 같은 감상만 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카즈키의 보더라인 분석 테마로 설정되었다.

카즈키 본인은 좀처럼 와 닿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먼 옛날의 일본인 소설가가 남긴 작품을 읽게 되었다. 공감할 수 있는 점도 있었고 할 수 없는 점도 있었다. ‘자신은 인간으로서 불합격’이라는 걸 끝없이 주장하는 작품도 읽었지만, 읽는 동안 줄곧 우울해져서 고생했다. 게다가 그 소설가가 엉망진창으로 생활하다 마지막에는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어쩐지 모르게 충격 받은 걸 기억하고 있다.

결과로, 카즈키의 보더라인은 외교적․탐구형․“방황하는 네덜란드인”적 카테고리, 운운에 속한다고 진단받았다.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다. 진단한 것은 아직 아이를 얻기 전인, 파일럿들의 다정한 카운슬러 같은 존재이기도 한 유미코 선생――마야의 언니다.

 

“별일이네. 이런 기질인 사람은 보통 바다 위에 있거든. 배나 무인도 같은.”

 

유미코 선생은 약간 생각에 잠긴 느낌으로 카즈키의 눈 안쪽을 살피듯이 들여다보다

 

“분명히 후천적인 거겠지. 처음엔 바다 위 어딘가에 있었지만, 거기서 한 번 추락한 걸지도 몰라, 카즈키 군은.”

 

라고 말했다.

 

“추락이요?”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사람 마음을 읽는 점에서는 쇼콜라보다도 뒤떨어진다고 자부하는 카즈키지만, 발군의 운동신경만은 넘쳐난다. 태어난 이후 여태, 실수로 어딘가에서 굴러 떨어진 경험은 전무라고 해도 좋았다.

덧붙여서 쇼콜라는 일찍이 쇼코와 코요가 섬에서 발견한 개다.

두 사람이 없어진 뒤 자칫 켄지 어머니의 실험동물이 될 뻔도 했지만, 결국 섬에 온 빨간 머리 소녀――카논의 ‘파트너’가 되었다. 단순히 키우는 게 아니라 ‘파트너’로서, 엄청난 훈련에 훈련을 거듭 시행했다.

 

“개는, 훈련해야 비로소 개가 돼.”

 

라는 것이 카논의 주장이다. 전쟁 전에 카논이 살던 나라의 상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쇼콜라는 카즈키로선 어떤 이론인지 모를 온갖 훈련을 받고 단련 당하게 되었다. 앉아, 같은 건 카논으로서는 재주도 아니다. 카논의 지시 하나로 재빨리 움직이고, 확실히 대기하고, 제대로 돌아온다. 니시오 상점 할머니와 부호를 정해서 장보기까지 할 수 있다. 목에 시장바구니를 걸고 짖는 소리의 회수로 카논에게 지시받은 상품을 사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너무 엄한 게 아닐까, 쇼콜라가 지쳐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내 카논의 휘파람 한번, 호령 한 번에 인간처럼 기민하게 행동하는 쇼콜라를 보고 크게 감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카논은 조건 없이 쇼콜라를 사랑해줬다. 그것이 모두에게 안도가 되는 것이다. 없어져 버린 쇼코와 코요의 존재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서.

 

“――추락하다니, 어디에서 추락한 건데요?”

 

쇼콜라와 카논의 분투는 제쳐두고, 자기에 관해서 카즈키는 물었다.

유미코 선생은 가뿐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까진 알 리가 없잖아, 라는 뜻이다.

일방적으로 남을 굴러 떨어진 사람 취급해놓고 너무한다 싶지만, 이런 마이페이스인 인물이 아니면 여러 파일럿의 마음과 계속 마주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품은 괴로움에 휘말려서 선생 쪽이 지쳐버린다.

 

“이 경우, 애초에 무엇 위에 올라가 있었는지는 흥미로운 소재지만 중요하진 않아. 문제는 왜 추락했는가. 그리고 왜 추락한 채로 있으려 하는가, 지.”

 

마치 행복의 비결이라도 알려주는 것 같은 태도로 유미코 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윙크해 보였다. 어디까지나 마음 편한 태도를 가장함으로써, 아이들이 안심하고 자기 마음과 마주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카즈키에게 있어 답은 간단했다.

어릴 때 남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다.

소우시의 왼쪽 눈에서 빛을 빼앗은 것이다.

게다가 그 일로 아무에게도 책망받지 않았다. 소우시 본인이 카즈키에게 당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틀림없이, 하다못해 자신을 벌하기 위해 캄캄한 바다로 본인이 추락한 것이리라.

그리고 불빛이 밝혀진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스스로 금지한 것이다.

소우시와 함께 싸우게 된 뒤로도 줄곧.

적을 계속 상처 입히는 것에도, 동료가 상처 입는 것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려고.

누군가가 없어지고 자신들만 살아남은 죄악감을 견디기 위해서.

소우시가 사라진 뒤로도.

카즈키는 꿈속에서 캄캄한 바다를 계속 헤엄쳤다. 어딘가에 불빛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튼튼한 바위 위에 지어진, 흔들림 없는 생활의 장소. 활기차고 따스한 곳이. 그곳이 자기가 원래 있던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로 갈 생각은 없다.

대신, 다른 바다를 찾았다.

일체화한 기체를 통해 서로 알게 된 동료들의 바다를.

그건 싸움의 기억과 함께 언제까지나 카즈키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다. 캄캄한 바다가 파랗고 맑은 해면이 되고, 여울에 산호초가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카즈키는 거기에 발을 딛고 올랐다.

따스한 햇볕이 차가워진 몸을 덥혀준다.

켄지의 바다――산호초 섬이다.

카즈키가 본래 갖고 있던 바위 위, 라고 할 정도로 튼튼하진 않고 오히려 타인이 걷기만 해도 부서지기 쉬운 산호초지만, 다정하고, 온화하고, 느긋한 쾌활함이 가득하다.

가혹한 싸움이 이어지던 시절에는 이 산호초도 태반이 시커멓게 썩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원래의 쾌활함을 되찾았다. 그것이 켄지의 강함이다.

산호초를 걸어가자, 다시 해면을 맞닥뜨렸다.

거울처럼 맑은 수면이다.

그것이 다리처럼 바다를 똑바로 뻗어나가고 있다.

마야의 바다다.

파문 하나 일지 않고, 파도는 멀리서 출렁일 뿐 여기에는 닿지 않는다. 무섭도록 강인한 의지――바위나 산호 같은 고정화된 이미지가 없어도, 불안정한 파도를 단단히 누르고 그 위에 서버릴 수 있는 마음.

대신 주위에는 안개가 떠돌고, 고독을 안고 있다. 오만한 부친의 격렬한 의지의 파도와도, 온화하지만 끝없이 잠겨버릴 것 같은 모친의 사명감에 가득 찬 물밑과도 거리를 둔 탓에 키워진 마음이다.

이전엔 차갑고 불안을 부추기는 안개였지만, 지금은 상쾌한 투명감에 차 있다. 위엄 있는 고상함 같은 것도 느껴진다. 안개가 부드럽게 주변을 덮음으로써, 다른 아무것에도 간섭받지 않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남도 그렇게 하게 해줄 수 있다.

소우시와는 다른 의미로, 카즈키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마음이었다.

투명한 수면 위를 마법사라도 된 기분으로 걷고 있으면, 반쯤 예상한 대로 안개 저편에서 돛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대한 배가 나타났다.

카논의 바다――대 해원을 계속 나아가는 배다.

카즈키가 진단받은, ‘방황하는’ 어쩌고 그대로의 심상이었다.

이전에는 썩어버린 배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돛도 선체도 새롭고 번쩍번쩍하다.

새로이 손에 넣은 생활을 카논만의 성실함으로 갈고닦고 있는 증거였다.

배의 창문은 어느 것이나 불빛이 켜져 있고, 가까이 가면 활기찬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하자마 선생이나 쇼콜라와의 생활만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카논은 학생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고, 후배들을 ‘단련시킨다’고 칭하며 항상 친하게 지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러운 기분도 있지만, 카논의 배 주변을 떠도는 것을 보면 그런 마음은 날아가 버린다.

예전과 다름없이, 허공에 뜬 작은 불꽃 무리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사자의 기억을――불꽃 하나하나가 카논이 아는 사자들의 혼 그 자체였다.

 

“‘세인트 엘모의 불’이야.”

 

라고 카논이 스스로 고한 영혼들.

바다에서 죽은 이의 영혼이 항해하는 이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인생의 바다에서 죽은 뒤에도 줄곧 카논을 지켜주는 불꽃들――처음엔 자신을 죽음의 세계로 이끌려는 듯이 생각되었다고 카논은 말했다. 그래도 불꽃들을 겁내거나 싫어하진 않았다. 카논은 마야와 같은 만큼 소중하게, 마야와는 다른 방식으로 과거의 기억을 계속 지키고 있다.

그래서이리라. 지금은 카논의 배가 불꽃 무리를 통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즈키는 눈앞을 가로질러 가는 배와 불꽃 무리를 지켜보면서 누가 있을까 생각했다.

미치오 씨의 불꽃은 어느 것일까.

마모루의 불꽃은.

마모루의 어머니와 켄지의 어머니.

혹은, 쇼코와 코요의 불꽃도 있을까.

카즈키는 다시 바다를 찾았다. 맑은 수면 끝으로 와서 바다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새까만 어둠에 감싸이고, 제 바다가 돌아왔다.

그러면서 사라진 이들의 기억을 그리워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마도 쇼코의 바다가 보이리라. 끝없는 하늘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이 쇼코의 명상 훈련 때의 심상이었다.

반대로 바다로 깊이 잠수하면 코요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해면이 두꺼운 얼음에 뒤덮여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어둡게 잠겨 가는 마음――하지만 정말로 깊이 들어가면, 거기에 코요의 진짜 마음이 있다. 따스한 해류가 얼음 밑에서 넘실댄다. 그건 켄지의 산호초 바다와 비슷할 정도로 온화하고, 언제까지나 따스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어질 만한 심상이다.

혹은 이대로 계속 헤엄쳐서 다른 이의 바다와 재회하는 것도 좋다.

지금과는 다른 사쿠라의 바다――분노와 증오로 끓고 있던 지옥 같은 바다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자기 몸과 싸우느라 고생하는 사쿠라가 다시 파일럿 후보생으로 명상 훈련에 참가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마모루의 바다가 가까이 있을까.

‘바다 위에 있는 타입’치고는 마야와 비슷하게 보기 드문, 거대한 파도를 타고 있는 것이 그의 심상이었다. 어떤 파일럿도 이길 수 없는 타고난 용맹 과감함을 간직한 소년. 그 소박한 상냥함을 카즈키는 그립게 여겼다.

어쩌면 마지막 싸움을 살아남아 줬을지도 모를 소년의 상냥함을.

바다로 추락한 자기 대신에 살아있어 주기 바랐다.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유일한 상대.

마지막 싸움에 참여한 마야, 켄지, 카논――모두, 마음이 바다 위에 있었다.

가족과의 추억이나 다른 사람과의 인연, 죽은 이를 향한 애도 같은 것을 심상의 핵으로 삼은 이들만이 살아남았다.

물론, 그건 그저 우연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견딜 수 없이 괴로운 마음을, 한때라도 좋으니까 달래주는 기분이 들어서. 자기가 살아남고 소우시가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지금도 계속 찾아서, 카즈키는 캄캄한 바다를 계속 헤엄치고 있다.

헤엄치면서, 무의식중에 바닷속으로 잠수했다.

소우시의 바다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게 어떤 것인지 카즈키는 실제로는 모른다. 소우시와 함께 파일럿으로서의 명상 훈련을 진행한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소우시 본인이 얘기해준 적이 있었고, 전투 중에는 지크프리드 시스템을 통해서 크로싱을 몇 번이나 해왔다.

제 마음 어딘가에 그게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타츠미야 섬에서 가까운 낙도를 향해 고속으로 이동하는 알비스의 번츠벡처럼――그걸 세로로 만든 거대한 탑 같은 것 안에 내가 있어――라고 일찍이 소우시는 말했다.

해저에서 하늘까지 가로지르는, 거대한 유리로 된 탑이다.

그 안을 자유롭게 이동해서 하늘도, 바닷속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늘로도 바다로도 나갈 수 없다. 출구가 없는 탑 안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자신이 탑에서 나가버리면 틀림없이 탑이 무너져 바다에 잠겨버리리라――그것이 파일럿들을 사지로 보내고도 냉정하게 있어야만 했던 소우시의 심상이다.

또, 그 탑 아래층에서는――소중한 기억이 바다에 잠겨 있는 곳에서는――종종 눈이 보인다고 소우시는 말했다.

마린 스노우――본래는 캄캄한 바닷속에 내려 쌓이는 미생물의 시체다.

소우시의 심상에서 그 해저의 눈은 그야말로 사자들의 기억 그 자체였다.

카즈키 일행이 실전 배치되기 전에 남몰래 섬을 위해 싸운 이들. 그 마지막 생존자는 해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그렇게, 소우시는 이야기해주었다. 자신들이 귀환함으로써 적에게 섬의 위치를 들켜버리지 않도록 적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고.

그 절망의 어둠을 소우시는 계속 짊어지고 있었다. 카즈키 일행의 싸움만이 아니라. 카즈키가 몰랐던 과거의 싸움까지 짊어졌던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어둠에 비하면, 제가 품은 캄캄한 바다 따위는 사소한 것이다――그렇게 생각될 정도의 공포와 계속 싸운 이들의 기억을.

그러한 소우시의 마음의 모양이 제 바다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찾기 위해 어둠을 응시했을 때――

빛나는 것이 몇 개나 보였다.

순간, 소우시가 가르쳐준 마린 스노우인가 했다.

하지만 아니다. 마치 별 같았다. 갑자기 무수한 작은 빛 입자가 솟아오른 것이다. 그중 하나가 엄청난 기세로 다가왔다.

불현듯, 하나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수많은 어떤 무리라는 것을 알았다.

 

――뭐야?!

 

마음이 놀라서 소리 지른 순간 그것이 왔다.

수많은 물고기 떼다. 그 너머로 색색의 물고기의 모습이 보였다. 혹은 해파리들이. 바다뱀이 유유히 헤엄치고, 고래 같은 거대한 그림자가 멀리서 이동하고 있다. 바다의 생물들――개중에는 본 적도 없는, 먼 옛날에 절멸한 생물의 모습도 있었다.

어느샌가 주변이 밝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파랗고 맑은 바닷속 한가운데에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생명이 넘쳐나고 있었다.

 

――누구의 바다지?

 

이런 심상은 들은 적도 없었다. 물론 제가 이런 이미지를 품을 리가 없다. 소우시의 것으로도 생각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미나시로 츠바키.

 

순간적으로, 그 이름을 연상했다.

생명의 순환이라는 현상을――그 현상에 관련된 온갖 개념을 이 섬과 적 양쪽에 가르쳐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친 소녀의 이름.

하지만 그녀의 심상치고는 좁은 기분이 들었다.

훨씬 더 광대한 심상을――섬 전토를, 거기 사는 사람들째로 손쉽게 감싸버릴 수 있을 정도인 마음의 소유주였다.

이 생명의 바다조차 그녀를 나타내기에는 작은 것이다.

이건 누군가 다른 이의 바다인 게 틀림없다――하지만, 대체 누구지?

어쩐지 묘한 전율을 느끼면서도, 카즈키는 한층 깊이 잠수했다. 그렇게 해서 생명이 넘쳐 나오고 있는 곳을 찾아내려다――

갑자기, 휙 뒤집혔다.

생명의 무리가 사라지고 별안간 파란색이 가득 펼쳐졌다.

 

――하늘?

 

말도 안 돼, 라고 마음이 외쳤다. 해저가 하늘과 이어져 있다. 아니, 상하조차 없다.

거의 ‘무(無)’에 가까웠다. 무서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세계에 가득한 푸르름만이 있었다. 터무니없는 아름다움――생명의 별의 반짝임. 대기와 바다가 뒤죽박죽이다.

이미 바다조차 아니었다. 중력 방향까지 엉망진창이라, 너무 이상했다. 그 심상에서는 ‘저는 대기와 바다가 존재하는 혹성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인식이 전해온다.

 

――그런 인간이 있나?

 

그렇다기보다, 점점 그 바다가 누군가의 심상으로 생각되지 않게 되었다.

미나시로 츠바키라는 존재를 연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건, 마음인가?

 

명상 훈련 때 사용하는 컴퓨터 내부에서 생긴 버그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기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전투 후에도 머릿속에 기체의 노이즈가 남아있을 때가 있다. 때로 그것은 플래시백이 되어 환상통이나, 열기나, 오한 등을 야기한다.

이건 요컨대, 명상 훈련에서 밝혀진 자신이나 누군가의 심상이 엉망진창으로 겹쳐진 물건인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또 약을 산더미처럼 받겠네.

 

잠에서 깨어나려는 카즈키의 마음이 그런 읊조림을 흘렸다.

토오미 선생은――마야의 모친은――아이들이 감사하는 이상으로, 약간 질려버릴 정도로 동화현상의 치료 약 개발에 마음을 쏟았다. 기대한 것보다 약효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토오미 의원 진찰실에서 남몰래 울어버린다고 한다. 남몰래라기보다, 그야말로 치료 와중인 사쿠라가 딱 한 번, 무심코 그 모습을 훔쳐봐 버렸다고――.

 

“그 사람……손녀가 있잖아.”

 

함께 진찰을 받게 됐을 때, 사쿠라는 진지한 얼굴로 카즈키에게 말했다.

손녀라는 건 유미코 선생과 미치오 씨 사이의 딸이다. 지금은 벌써 2살로, 이름은 미와. 누구나 그 아이를 예뻐했다. 마야는 아이를 돌보는 유미코 선생을 돕느라 녹초가 될 때도 꽤 빈번히 있지만, 카논은 그 애와 놀 때마다 반드시 귀갓길에서 눈물을 머금어버린다. 틀림없이 미치오 씨를 떠올렸으리라, 고 카즈키는 생각한다.

토오미 선생에게 있어 유미코 선생은 딸이고, 또 그 딸은 결국 손녀지만,

 

“그런데 어쩐지……마야보다 소녀 같아 보였어, 울고 있는 토오미 선생님이.”

 

사쿠라는 ‘이’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몹시 강조했다.

신뢰해야 할 어른들의 약한 모습을 봐버리는 것은 꽤 충격적인 일이다. 그렇긴 해도 사쿠라가 하는 말은, 그것과는 좀 달랐다.

 

“설마……그 사람, 회춘하는 약을 만들어서 자기가 쓰는 건 아니겠지. 우리로 실험 같은 걸 해서.”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카즈키도 단정할 수 있었다. 토오미 선생 쪽이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엄청나게 충격 받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사람 마음을 알아채는 점에서는 점점 쇼콜라 쪽이 능숙해져 가는 카즈키지만, 왠지 모르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특히 부친 후미히코와 함께 있을 때의 토오미 선생을 보고 있으면, 마야는 아니지만 ‘자연히 전해오는’ 것이다.

토오미 선생은 실은 젊어 보이거나 동안으로 보이는 것을 꽤 의식하고 있어서, 사쿠라와 함께 있을 때의 켄지만큼, 어른스러워지려 하는 듯했다. 이미 어른이니까 이상한 얘기지만, 그렇게밖에 말할 도리가 없는 모습이다.

그건 결국, 혹시 회춘하는 약 같은 걸 토오미 선생이 개발하는 날에는 주변 사람들 전원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자기는 절대로 쓰지 않으리라, 는 뜻이었다.

카즈키는 실제로 그 약을 먹는 자신을 상상했다――기보다 다음 순간, 꿈속에서 사쿠라와 함께 그 약을 먹고 있었다. 지난 2년간 동화현상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길항(拮抗) 약이나 치료 약과 동행해온 기억 탓이다. 애초에 꿈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그렇게 일관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약의 쓴맛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좀 전에 경험한 뒤범벅된 하늘과 바다의 심상 따윈 완전히 잊어버릴 뻔했을 때, 갑자기 끌어 당겨졌다.

약의 꿈이 지워지고, 다시 터무니없이 아름답고 황당한 푸르름 속에 삼켜져 있었다.

마치 이리로 와, 라고 억지로 끌려온 것 같다.

대체 이건 뭐지? ――의문으로 여기는 동시에, 목소리가 왔다.

귀로 인식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크로싱에 의해 뇌리에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혹은, 그 자체였다.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 네가 있어.’

 

천진한 목소리.

카즈키가 있는 것을 인식하고 기뻐하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이렇게도 말했다.

 

‘빨리 널 만나고 싶어.’

 

카즈키는 과거의 전투에서 소우시가 크로싱을 통해 강제로 기체를 정지시키거나 조작한 것을 떠올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목소리에는――맑게 갠 파란색 심상에는, 억지로 이쪽의 행동이나 의식 같은 것에 간섭하려는 기척이 있는 것이다.

 

――누구야!

 

이어져 있지도 않을 텐데, 어째서 이쪽의 마음에 간섭할 수 있는가.

찰나, 지금 상황에 대한 미심쩍은 느낌이 분노로 변할 뻔했다. 바로 그때, 제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어디선지 모르게 내려오고 솟았다.

 

――이어져 있어.

 

크로싱, 이라는 말이 겪어본 적 없을 만큼 가슴에 와닿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이어져 있다는 감각――.

그것도 지금 이때뿐만 아니라.

줄곧 그랬다는 생각이 솟았다.

 

‘쿠루스 미사오.’

 

갑자기 또 목소리가 들렸다.

꿈속의 애매한 의식으로는 도저히 기억하고 있을 수 없을 만한, 희미한 목소리다.

 

‘이제 곧 만날 수 있어.’

 

그걸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사라졌다.

푸르름이 사라지고――내던져졌다.

상하 구별도 없는, 몹시 이상하면서도 어딘가에서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할만한,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바다와 하늘의 인식이 카즈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어떻게든 본래의 꿈인 제 바다의 심상으로 돌아가려고 팔다리에 힘을 주어 버둥대다――

 

카즈키는 모포를 날려버렸다.

 

“응……?”

 

왠지 상하 감각이 이상한데, 라는 이변을 고하는 목소리가 잠에 취한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엄청난 수의 물고기가 있어서 깜짝 놀라서 하늘에서 떨어졌던가――

아니, 물고기가 하늘에 왜 있어.

바다 꿈을 꿨던 기분도 들지만, 너무 막연해서 떠올릴 수 없었다.

감각이 이상한 이유는 금세 알았다. 머리 위로 방 입구가 어렴풋이 보이는 탓이다. 어젯밤 이불에 파고들었을 때는 발 쪽에 있었던 그것이 눈을 떠보니 180도 이동해 있었다.

굉장하네. 집이 이동한 건가.

아직 반쯤 잠든 머리가 위장경면을 해제하는 자기 방을 공상했다.

섬을 투명화하는 필드로, 그것이 해제되면 동서남북이 전부 반전한다.

처음 그걸 봤을 때는 태양의 위치가 반대인 것만으로, 오래 살아 정든 마을이 낯선 토지로 느껴졌다.

아니――우리 집엔 그런 엄청난 기능이 없잖아.

요컨대 카즈키 본인이 잠든 사이에 반 회전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의 장절한 잠버릇을 피로한 것을 간신히 인식했다. 시계 방향으로 이불 위를 꾸물꾸물 기어가듯이 이동해서, 도중에 손어림으로 베개와 모포를 끌어당겨 원래 위치로 귀환한다.

다시 베개 위에 머리를 올렸을 때,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불린 것을 떠올렸다.

크로싱이 어쨌다던가.

토오미 선생이 이상한 약을 먹이는 꿈이었던 기분도 든다. 주 2회의 통원 일이 오늘이었나? 아니――토오미 의원에는 어제 막 다녀왔다.

무슨 용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고 기억을 뒤지다 아, 종업식이다――하고 금세 판명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업식 후에 고교 학생회 모임에 얼굴을 내밀도록, 켄지와 카논이 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학생회라기보다, 파일럿끼리의 모임에.

딱히 파일럿이 아니면 학교 학생회 임원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카즈키는 학생회의 일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학생회는 파일럿이나 그 후보생의 집합소처럼 되었다. 파일럿이 잘나서라든가, 반대로 성가신 일을 뭐든 떠맡게 되는 손해 보는 역할이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파일럿들 대다수가 대수롭지 않은 ‘평화로운 행사’에 대단히 열심일 때가 많다는 이유로.

고교 학생회장인 켄지는 지금은 여하튼 남을 돌봐주기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유미코 선생이 딸을 키우기 위해 휴직해서 카운슬링 담당이 없어져 버린 뒤, 후배들의 고민 상담을 종종 떠맡고 있는 모양이었다.

부회장인 카논은 어떤 귀찮은 행사라도 스스로 준비를――이라기보다 지휘를――자청한다. 사쿠라는 일단 서기라고 돼 있지만, 몸 탓에 학교에는 뜻대로 올 수 없다. 오히려 학교에 오지 못하는 사쿠라를 위해 전교생의 동의로 직함을 준비해서 언제든 맞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둔 느낌이었다.

중학 학생회장인 히로토는 하여간 눈에 띄는 것과 노래하는 것과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부회장인 세리는 생물부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생물 레크리에이션을 사사건건 주장한다는 것 같다. 어느 쪽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행사로 삼으려 기를 쓰고 있다.

두 명의 서기인 리나와 아키라는――쌍둥이 니시오 남매는――반대로, 주어진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걸 좋아해서 사쿠라 몫까지 일해준다고 한다.

여하튼 고교라고 해봤자, 아직 2학년까지밖에 없고, 학급도 두 학년 합쳐서 4개밖에 없다. 건물도 학교 일부를 ‘고교’로 구분했을 뿐, 중학 때와 다름없었다. 고교와 중학 학생회는 대개 함께 행사에 전념하고 있다.

여태까지는 ‘졸업’해서 어른들과 함께 일하기를 택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고교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대부분 알비스에서도 익힐 수 있었다.

그래서 ‘고교’라는 것 자체가 섬에는 없었다.

하지만 3년 전에 섬이 전시체제가 되고, 전교생이 뭐가 됐든 알비스 근무를 경험한 뒤로는 아이들 모두 학교에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게 자신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평화’를 실감할 수 있는 장소라는 걸 알았으니까.

 

――여름방학, 이라.

 

1학기가 끝나기 전에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 탓에 사쿠라가 맹렬한 대항 의식을 품고 무리할 것 같아서 무서워, 라고 켄지가 불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쿠라와 달리,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것이 카즈키에게는 있었다.

꿈속에서 봤던 푸르름이 떠올라서 커튼을 걷어둔 창밖 어딘가로 그 색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흑백의 경치밖에 없었다. 하늘과 유리창을 구별할 수 없다.

눈에서 색채라는 것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긴커녕, 창문 윤곽도 어렴풋하다. 요즘 카즈키의 시력은 약해지기만 했다. 그야말로 토오미 선생이 열심히 치료 방법을 연구해주고 있었지만, 언젠가 빛을 잃을 것을 각오해야 하리라고 카즈키 본인이 깨닫고 있었다. 몸을 지탱하는 지팡이가 필요 없어진 대신, 어디에 물건이 있는지 눈 대신 찾는 지팡이가 필요해지리라, 고.

 

――눈이 나빠져도 꿈속에서는 색이 보이네.

 

그런 걸 생각하는 사이에 잠이 완전히 깨버렸다.

바깥 공기나 소리의 느낌으로 봐서 이른 아침인 것 같다. 알람시계로 손을 뻗어 플라스틱 커버를 벗긴 그것을 살짝 만져서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의 위치를 확인했다.

손끝으로 시각을 살피는 것이다. 가만히 눈여겨보면 시곗바늘 정도는 아직 보이지만, 늦기 전에 손끝을 눈 대신으로 삼는 데에 익숙해지려는 마음이 있었다.

시각은 5시 40분――아니, 42분 정도인가.

카즈키는 알람시계가 울리기 1시간 이상 전에 스위치를 끄고 일어났다.

이불을 척척 정리한 뒤 거의 눈을 감은 채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간다.

제집이라면, 보지 않아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요리도 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도록 물건 배치를 정해두게 되었고, 후미히코도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카즈키의 시력을 배려해 가구를 놔주고 있다.

카페 <낙원>에서도 점주인 미조구치나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점원 일을 하는 마야가 마찬가지로 해주고 있었다. 카즈키가 일하는 장소로 불편함이 없도록.

어느샌가 그렇게 되었다. 일손이 부족하다고 탄식하는 미조구치에게 도움을 자청한 것이 마야고, 요리가 서툰 것을 탄식하는 마야에게 도움을 자청한 것이 카즈키라는 구도다. 어쩐지 전부 미조구치가 노린 대로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하여간, 카즈키가 가게를 도운 첫날에 이미 미조구치의 손으로 새 메뉴와 식재가 듬뿍 준비돼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카페 주인이라는 역할을 미조구치는 크게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알비스에서 진행하는 회의도 내 가게에서 하면 돼, 라고 해서 후미히코가 떨떠름한 얼굴을 할 정도다.

마야와 카즈키의 아르바이트 장소. 방과 후의 거처――일찍이, 코요와 그 부모가 있었던 곳.

그 카페가 제 두 번째 집 같은 것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슬픈 기억만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기우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오후부터 그 가게에 가는 거였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으며 거울에 비치고 있을 제 얼굴을――양쪽 눈을 바라보았다.

마야의 말로는, 지금 제 눈은 붉은색이라고 한다.

눈동자의 색소를 잃은 탓에 그런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안경을 써봤자 시력이 보정되지 않는 건 그 탓인 것 같았다. 눈동자 안쪽에서 로돕신인가 레티날인가 하는 단백질이니 뭐니 하는 게 서서히 어떻게 돼버려서 빛을 느끼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오미 선생이 한번 자세히 해설해줬지만, 이론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알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겨우 어렴풋이 제 얼굴이 보였다. 마치 낡아빠진 흑백사진 같다. 그래도 아직 보이는 건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안경을 써도 소용없다는 사실은 비교적 금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신도 약간 의외였지만, 생각해보면 줄곧 그랬다.

받아들이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싸움이 시작된 것도. 생활이 격변한 것도. 한 사람 또 한 사람 누군가가 없어지는 것조차 받아들여 왔다.

양치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을 덮으며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건 무리한 일이 아니구나, 하고 실감했다. 자기 한 사람이 빛을 잃게 되는 건.

누군가가 사라져버리는 것에 비하면 훨씬 평온하게 그럴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어디에도 갈 필요가 없으니까.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머나먼 바다 저편으로 떠날 필요도 없다. 이전에는 계속 받아들이는 데에 지쳐서, 태연히 있으려는 게 슬퍼져서 섬을 나가려 한 적도 있었지만――지금은 아니다.

이 섬에서 계속 기다리기로 맹세했다.

돌아온다고 말한 이의 귀환을.

줄곧,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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